전문가 칼럼
금융감독체계, 협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개편되어야
09. 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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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규
최근 논란이 되었던 한국은행법 개정안 처리가 9월로 미루어졌다. 국회는 정부가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제출하는 조건으로 한은법 처리를 9월 정기국회까지 미루기로 결정한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한국은행의 금융안정 기능을 강화하자는 논의가 결국 전체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로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한은법 개정의 경우 한국은행과 그 외 공공기관(기획재정부, 금융위원회 및 금감원) 간의 이해대립 구도였지만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의 경우 한국은행 對 금융위원회(기획재정부) 對 금감원 등의 다층적·복합적 대립구도가 형성되기 때문에 양상은 한층 더 복잡해진다. 이 같은 고차방정식의 해법은 각 기관 간의 지루한 공방 끝에 어정쩡한 타협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크다. 이렇게 탄생한 새로운 감독체계는 그 목적 달성을 위해 가장 효율적으로 설계된 체계라기보다는 각 기관들의 이해관계가 조절된 ‘정치적 균형’을 달성한 체계가 되기 십상이다.
이번 한은법 개정 논의 과정은 우리나라 금융감독체계 개편 논의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 주었다. 국회에서는 그동안 한국은행과 금감원 간의 정보공유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각종 사례를 들며 기관 간 고자질이 난무하였고 각 기관의 수장들은 조직의 영향력을 보호하느라 책임을 상대기관에 떠넘기기 바빴다. 각 기관의 이해를 우선시하는 현재의 풍토가 바뀌지 않는 한 생산적 논의보다는 소모적인 힘겨루기 양상이 이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는 새로운 감독체계로의 전환이 이루어진다 하더라도 체계 개편 논쟁은 끊이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는 우리의 과거 경험으로 보더라도 충분히 예상되는 일이다.
어느 나라든지 금융시스템 안정 및 금융감독에는 복수의 공공기관이 관련되어 있다. 우리나라처럼 정부, 중앙은행, 통합금융감독기구, 예금보험기구 등이 관련 기관인 나라도 있고 통합금융감독기구 대신 금융권역별 감독기구가 따로 존재하는 나라들도 있다. 나라마다 현재의 시스템을 가지게 된 역사적·경제적 배경이 있을 것이고 그 시스템의 장단점도 있을 것이다. 이렇게 다양한 형태의 시스템이 그 나름대로 잘 운용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원칙 중의 하나가 ‘협력과 견제’이다. 어떤 나라도 금융안정을 위한 책임과 권한을 어느 기관이 단독으로 떠맡는 경우는 없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지만 관련 기관들은 각자의 전문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고유의 역할을 수행한다. 이 과정에서 다른 기관의 전횡이나 정책적 실패를 견제하기도 하고 다양한 차원의 협력을 통해 정책의 효율성을 제고한다. 이 ‘협력과 견제’ 중 어느 쪽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우리나라의 경우 ‘견제’에 치중한 나머지 ‘협력’은 너무 등한시되고 있다. 설사 이번에 논란이 된 조사권을 한국은행이 확보한다 하더라도 다른 기관과의 협력 없이 통화·금융정책을 효율적으로 수행하기는 어렵다.
향후 금융시스템과 관련하여 단일 기관이 모든 책임과 권한을 떠안는 방식이 아닐 바에는 어떠한 형태의 금융감독체계가 논의되더라도 기관 간 협력은 필수적이다. 각 기관의 역할에 따라 획득하는 정보의 종류, 양, 질 등이 다를 것이고 이것이 효과적으로 공유되어 않는 한 금융안정이라는 정책목표를 달성하기는 쉽지 않다. 그 동안 금융감독체계 개편과 관련해서는 나올만한 아이디어는 거의 다 나온 셈이며 각 기관, 그리고 연구자마다 선호하는 체계가 있다. 필자도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개편안이 있지만 여기서 이를 주장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과 같이 협력보다는 견제, 그리고 각 기관의 이해가 우선시되는 풍토 아래에서는 어떤 체계를 선택하더라도 지금보다 안정적인 금융환경이 보장된다고 단언할 수 없다. 각 기관이 정보공유를 꺼리고 각자의 영향력 확대에만 골몰하는 상황에서 어떤 체계도 효율적으로 운용될 수 없을 것이다. 어떤 금융감독체계 개편안을 염두에 두든지 그것은 개인적 자유이다. 하지만 각자(또는 각 기관)의 개편안에서 ‘협력’을 보다 증진시킬 수 있는 방안을 생각해 보고 이것을 논의의 출발점으로 삼자. 비록 서로 다른 안을 가지고 있지만 협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각자의 안을 발전시키다 보면 어떤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고 이것이 소모적인 논쟁을 피하는 길일 것이다. 금융안정은 국가적 차원에서 매우 중요한 정책목표이다. 이 같은 정책적 과제 앞에서 협력보다는 편협된 이해에 집착하는 것은 말 그대로 ‘애국심 부족’에 다름이 아니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tklee@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