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칼럼
오바마의 대북정책과 우리의 대응방안
09.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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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호
오바마 정부의 외교정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스마트파워(Smart Power) 전략이다. 스마트파워는 하드파워(Hard Power)와 소프트파워(Soft Power)가 이상적으로 조합된 것이다. 경제력이나 군사력과 같은 한 국가의 전통적인 국력인 하드파워에 가치의 공유, 외교력 등과 같은 설득과 공조의 소프트파워를 가미한 것이 스마트파워이고, 오바마 정부가 이를 전략적으로 구사한다는 것이다.
오바마 정부의 대북정책도 스마트파워 외교정책의 틀 안에서 짜여진다. 오바마 대통령이 대선후보 당시 북한 핵문제에 대해 기존 6자회담의 체제 내에서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의 원칙을 유지하되 북한과의 직접적인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둔 강력하고 직접적인 외교(tough and direct diplomacy)를 강조했던 것에서 잘 알 수 있다.
미국은 지난 4월 5일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대응하여 유엔이 안보리 결의 1718호의 위반을 규탄하고 국제사회의 단호한 대처를 주문한 의장성명을 채택할 때 그 의사를 분명히 했다. 북한의 핵개발은 용인할 수 없다는 명백한 의사표명이다. 동시에 6자회담을 통한 해결책의 모색을 끊임없이 보여주고 있다. 최근에는 클린턴 국무장관이 상원청문회에서 지금이라도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하고 핵폐기를 재개한다면 경제적 지원을 개시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보즈워스 대북정책 특별대사의 이번 6자회담 참여국 순방도 그 일환이다. 직접적이면서도 공조와 설득을 취한 외교정책의 표출인 셈이다. 이번에 성사는 되지 않았지만 보즈워스 대사의 한국 체류 일정이 3박4일로 상대적으로 길었던 것이 북한과의 깜짝 회담을 염두에 둔 것임을 볼 때 미국의 대화 노력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우리 정부의 대북정책 또한 태생적으로 스마트파워를 기반으로 할 수밖에 없다. 보수정부든 진보정부든, 이명박 현 정부 혹은 그 이전 정부 모두 마찬가지이다. 남북관계는 태생적으로 전쟁을 치른, 여전히 전쟁이 끝나지 않고 휴전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군사력을 내세운 하드파워의 외교를 구사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또한 지난 20여 년 남북경협은 경제력의 격차를 내세운 일종의 하드파워 외교 관계를 유지한 것과 다름 아니다. 동시에 남북관계는 여전히 양 지역에 이산가족을 두고 있는 동일 민족을 배경으로 하고 지역적·환경적으로도 거의 동일한 배경을 갖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가치를 공유하며 설득과 대화를 중심으로 하는 소프트파워 외교를 동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스마트파워를 기반으로 하는 스마트외교는 하드파워와 소프트파워를 적시에 적절한 방법으로 조화를 이룰 때 그 효과가 극대화된다. 이상적인 조합을 어떻게 찾느냐가 핵심이다. 지난 두 정부가 남북경협을 최대한 확대하려 한 것은 하드파워 외교의 기반을 잘 닦아 놓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산가족의 상봉, 금강산 관광을 통한 왕래, 인도주의 지원 사업 시행 등의 소프트파워가 남북관계에 큰 역할을 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합의의 이행, 인류 보편적 가치와 같은 원칙적인 하드파워의 역할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던 것은 스마트외교의 기반을 잘 닦아 놓고 잘 활용하지 못한 대북정책의 실패로 봐야 할 것이다. 즉 소프트파워가 지나치게 강조되고 하드파워의 적절한 구사가 제대로 이행되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의 지난 1년 남짓 대북정책도 경제력의 격차를 최대한 활용하고 원칙을 강조하는 하드파워외교는 강하게 추진하면서 가치외교, 신뢰외교, 설득과 공조와 같은 소프트파워의 역량을 아직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고 있어 스마트외교를 구사하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비핵·개방·3000 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것에는 국제공조가 있다. 비핵을 우리 정부 단독으로 추진해서 달성할 수 없고 북한의 개방 또한 남북 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소프트파워를 구사하지 않고는 결코 추진될 수 없는 정책들이다. 즉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미 스마트파워를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프레임워크가 형성되어 있다.
대세는 우리 정부가 단독으로 이 지역 정세를 주도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는 점이다. 공조가 중요한 시점이다. 우리의 최대 동맹국인 미국이 외교정책으로 스마트파워를 구사할 것을 천명했고 대북정책 또한 스마트파워 외교정책을 근간으로 추진하고 있다. 다행히 미국도 북한의 핵보유만큼은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을 확고히 견지하고 있고 대북관계에 있어서 우리 정부와 최대한 공조한다는 기본적인 원칙을 갖고 있다. 우리 정부가 소프트파워를 좀 더 지혜롭게 보태는 전략을 구사하고 북한도 이에 호응할 때 남북관계는 일거에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수 있다. 미국과 한국을 위시한 주변 당사국들이 최대한 우호적 제스처를 취할 때가 다시 올 수 없는 기회임을 북한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정연호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yhchung@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