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슈 논평
법인세율 인하 유보 유감
08.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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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이명박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경제회복을 국정운영의 가장 큰 목표로 천명했다. 친기업 정책(business friendly policy)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밝힌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법인세율 인하는 이와 같은 정부의 친기업적 의지를 담은 구체적인 정책표현이었다. 지금까지 법인세율은 과세표준 1억 원을 기준으로 그 이상인 경우에는 25%, 그 이하인 경우에는 13%의 세율이 적용되었지만, 개편방안에서는 과세표준을 2억 원으로 상향조정하고 적용되는 세율도 각각 22%와 11%로 인하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이다. 아울러 어려운 경제상황을 감안하여 당장 올해부터 시행한다는 뜻도 밝혔다.
이러한 정책은 직접적 수혜대상인 기업은 물론 경기활성화를 기대하는 많은 국민으로부터 환영을 받았다. 세부담이 줄어드는 만큼 기업들의 투자여력은 늘어나게 되므로 고용, 소비 등 침체된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라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또 법인세율 인하방침에 대해 국민들이 환영의 뜻을 내보인 것은 세금을 덜 내게 된다는 직접적인 효과보다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새 정부의 강한 의지들이 본격적으로 실천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이러한 정책은 반쪽만 시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두 개의 적용세율 가운데 하나만 인하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즉 중소기업에 적용되는 최고한계세율은 당초의 계획대로 인하하되, 대기업들에 적용되는 한계세율은 내년부터 인하하기로 한 것이다.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정책 후퇴에 대해 취약계층 보조를 위한 재원마련 등을 이유로 그 불가피성을 역설하고는 있지만, 야심차게 밝힌 정책의지를 불과 몇 달 사이에 반쯤 접어버린 것은 안타깝고 실망스럽다는 평가를 모면하기 어려워 보인다.
먼저 이와 같은 정책변화는 우리 경제 전반에 그리 긍정적이지 못한 영향을 주게 될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세부담 완화는 기업의 투자여력을 제고시켜 경제 활력을 회복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는 감세효과가 더 큰 대기업에서 더욱 뚜렷이 나타날 것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감세혜택을 보게 될 것이므로, 이에 따른 투자여력 또한 더 커질 것이기 때문이다. 세율인하가 경제 활력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것은 이미 다수의 연구결과를 통해 검증된 이론이다. 법인세율이 높은 국가보다 낮은 국가의 경제성장률이 높았다는 연구결과(Lee & Gordon, 2005)와 상대적으로 낮은 세율을 적용받는 산업의 성장률이 높았다는 실증분석결과(Lee et. al., 2008)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경기회복이나 경제성장이라는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서 세율인하는 분명 긍정적인 효과를 가지고 있는 정책이다. 물론 중소기업에 대한 법인세율 인하조치는 당초 계획대로 추진될 것이므로 세율인하에 따른 정책효과는 부분적으로나마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자 및 고용창출 효과가 훨씬 큰 대기업의 적용세율을 인하하지 않은 것은 정책효과의 크기 면에서 결코 바람직하지 않을 것이다.
두 번째로는 세계적인 세제개편의 흐름에서 우리나라가 뒤처질 수 있다는 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세계 각국은 경쟁적으로 세제개편을 추진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법인세율의 인하이다. 실제로 법인세율은 대부분의 국가에서 지속적으로, 그리고 빠르게 하향조정되고 있는 추세이다. 당초 우리 정부가 세율 인하방침을 밝힌 이유 가운데 하나도 선진적인 세제구축을 위한 것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물론 과거 정부에서도 법인세율 인하는 추진된 바 있다. 하지만 올해 초 발표되었던 세율 인하 방침이 더 환영받은 이유는 세율인하를 도모함에 있어서 상당히 적극적인 자세를 취했다는 점이었다.
우리나라는 과거 세율 인하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서 다른 나라들의 정책변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인상이 짙었다. 즉 다른 나라들의 세율 인하 움직임에 마지못해 따라가는 수동적인 방식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법인세율 인하가 세계적인 흐름이고, 우리가 이 같은 흐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적극적이고도 선제적인 움직임이 훨씬 효과적일 수 있다. 어차피 내려야 할 세율이라면 남보다 먼저 내리는 편이 낫다는 뜻이다. 왜냐하면 세율 인하를 선도한다는 것은 단지 세율 자체가 낮아 기업 활동에 유리하다는 의미 외에도 정부가 시장경제 및 경제 활성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강력한 신호를 국제시장에 전달한다는 매우 긍정적인 의미까지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경제활동의 국제화가 지속적으로 강화되는 점을 고려할 때 절대 간과해서는 안 되는 부분이다.
현대경제에서 국가 간 생산요소의 이동은 나날이 자유로워지고 있다. 법인세율이 경쟁국에 비해 조금이라도 낮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국제적 생산요소의 유치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기업 활동하기 좋은 나라’라는 인식을 강하게 심어줄 수 있다. 아일랜드가 좋은 사례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아일랜드는 정체된 경제성장을 해소하기 위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법인세율 인하를 단행한 바 있다. 이를 통해 세계 유수의 다국적 기업의 지역본부를 성공적으로 유치하였으며, 그 결과 아일랜드는 고소득 국가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있다. 이번 정책 변경으로 이와 같은 긍정적 효과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게 된 것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다.
세 번째는 정책신뢰도 저하의 측면에서 찾을 수 있다. 강력한 의지를 보였던 정책이 몇 달 사이에 후퇴하는 것은 정책에 대한 신뢰뿐만 아니라 정부 자체에 대한 신뢰도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물론 경제적 취약계층을 돕는 것, 그리고 세제상의 형평성을 제고하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을 취함에 있어서 또 다른 중요 정책목표를 쉽게 포기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세율인하 방안은 궁극적으로 경제 활성화를 위해 도모했던 정책이기 때문이다.
또한 취약계층을 돕기 위한 재원을 반드시 (대기업이 내는) 법인세를 통해서만 조달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해마다 계획보다 초과 징수되는 세수를 생각해 보면 재원 마련을 위해 반드시 법인세율 인하를 철회해야만 했는지에 대한 의문은 더욱 강해진다. 진정 재원부족 문제가 심각했다면 재정지출을 줄이려는 노력이 선행되었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돈이 부족하면 덜 쓰는 것이 합리적인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해마다 몇 곱절 더 큰 돈이 소요되는 부실 공기업의 정비는 등한시하면서 세금 낮춰주는 데는 미온적이라는 비판을 모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보자면 이번 정책 변경이 ‘대중영합적’이라는 목소리도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고만 치부하기 어렵다. ‘감세는 부자들만을 위한 것’이라는 비판을 의식한 정책후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옳은 정책은 반대 의견도 설득해 나가면서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감세안이 설령 부자들에게 더 큰 혜택을 주는 정책이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국가경제 전체에 도움이 되는 정책임을 의지를 가지고 설득했어야 한다. ‘나누는 것’을 등한시해서는 안 되겠지만 ‘나눌 것을 더 많이 만들어내는 것’은 더욱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김상겸 (단국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iamskkim@dankoo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