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이슈 논평
글로벌 금융위기… 이제는 경기회복으로 이어지나?
09.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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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춘
최근 우리 경제 내부에서는 앞으로 경기와 주가, 채권과 환율의 움직임을 놓고 4대 논쟁이 일고 있다. 당초 끝없이 추락할 것으로 예상됐던 우리 경제가 올 2월 이후 소비 지표를 시발점으로 고개를 들면서 최근에는 재고관련 일부 생산지표로까지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올 2/4분기를 저점으로 우리 경기가 회복국면에 들어가지 않겠느냐는 것이 경기 바닥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시각이다. 물론 반론도 만만치 않다.
올 2/4분기가 경기의 저점이라면 이에 선행하는 주가는 이미 바닥을 쳤고 앞으로 변동성은 있겠지만 추세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신중론자들은 최근 주가가 상승하는 것은 죽은 고양이가 한 번 뛰어오르는 ‘베어마켓랠리(bear market rally, dead cat bounce)’로 보고 있어 대조적이다.
원/달러 환율이 3월초 1,600원을 정점으로 하락국면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특히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양적 완화 정책을 추진한 이후 국채수익률을 비롯한 시중금리가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달러 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있는 점도 ‘환율 정점론’의 힘을 실어주는 요인으로 가세되고 있다.
다른 요인이 결부돼 있지만 지금 인기를 끌고 있는 채권과 채권관련 상품이 조만간 붕괴될 것이라는 시각도 고개를 들고 있어 주목된다. 위기 과정에서 많이 풀린 유동성 때문에 갈수록 높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인플레 기대심리에다, 경기부양 차원에서 계획하고 있는 대규모 국채 발행이 본격화될 경우 채권 값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거론되는 4대 논쟁의 면면을 들어다 보면 궁극적으로는 경기 향방에 달린 문제다. 한 나라의 경기를 파악하는 방법은 수없이 많지만 최근 들어서는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놓는 기업취약지수(CVI: Corporative Vulnerability Index, 레버리지 비율과 기업가치 변동성, 무위험 이자율, 배당률 등의 재무지표를 이용해 산출)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매월 발표하는 복합선행지표(CLI, Composite Leading Indicators)가 정확하고 많이 활용된다.
일반인도 쉽게 구해 접할 수 있는 OECD의 CLI는 성장 사이클 상의 전환점을 6개월 정도 앞서 조기에 신호를 줄 수 있도록 설계된 지수다. 이론적으로 경기순환은 국민소득 통계를 활용하나 이 지수는 국민소득에 선행하는 산업생산지수(IIP) 등을 주로 활용해 산출하는 면에서 크게 구별된다.
OECD의 CLI지수를 활용해 가장 최근에 경험한 경기순환의 정점과 저점 간의 소요기간을 구해 보면 세계 경기는 16~17개월 정도로 추정된다. 또 국가별로는 미국이 19개월, 독일과 프랑스가 30개월 내외로 선진국들은 장기간 소요되나 우리의 경우는 14개월 정도로 비교적 짧게 나온다.
이번 모기지 사태로 세계 경기가 본격적으로 침체되기 시작한 시기를 2007년 4/4분기나 2008년 1/4분기로 잡는다면 경기 하강의 종료시점은 올 2/4분기나 3/4분기로 추정된다. 물론 경기가 저점에 도달했다고 해서 곧바로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저점통과 후 경기가 ‘V‘자형이나 ‘L‘자형으로 갈 것인가는 세계 각국들이 긴밀한 협조 하에 얼마나 경기부양에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냐에 달려 있는 별개의 문제다.
한 가지 주목해야 할 것은 최근 들어 월가를 비롯한 국제금융시장 참가자들 사이에 앞으로 한국에 투자할 때 예상되는 ‘가짜 새벽(false dawn)’ 현상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이 들린다. ‘가짜 새벽’이란 최근 일부 경제지표의 개선과 하반기 이후 예상되는 성장률 회복세는 그동안 지속돼 온 환율상승과 통계기법상 ‘기저 효과(base effect)’에 따른 일종의 ‘착시 현상’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올 2월 이후 일부 지표가 개선되는 것이 나중에 더 큰 화(禍)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한국 기업들은 환율상승에 따라 찾아오는 일시적인 이익으로 현 시점에서 가장 필요한 구조조정과 경쟁력 개선에 속도를 내지 않고 있지만, 일본 등 다른 국가에 속한 경쟁기업들은 뼈를 깎는 노력을 하고 있어 앞으로 원/달러 환율이 제자리를 찾으면 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기 때문이다.
올 하반기 이후에 예상되는 성장률 개선도 단순히 통계기법상 기저 효과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 경제의 분기별 성장률을 보면 2/4분기 4.8%를 기록한 후 3/4분기 3.8%, 4/4분기 -3.4%로 거의 수직으로 떨어졌다. 올해 우리 국민소득이 늘어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지난해 우리 경제 모습을 기준으로 한다면 하반기 이후에는 성장률이 개선되는 쪽으로 나올 수밖에 없다. 만약 이런 상태가 내년에도 지속될 경우 다시 성장률이 떨어져 재둔화(duoble-dip) 국면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충분히 납득할 만한 지적이다. 앞으로 우리 경기의 앞날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지난 2년 동안 끌어왔던 글로벌 금융위기가 어느 정도 진행되었는가를 먼저 살펴볼 필요가 있다. 금융위기를 ‘유동성 위기→금융시스템 위기→실물경기 위기’로 나눈다면 지금은 돈이 부족한 유동성 위기를 마무리하고 부실자산 처리가 주가 되는 금융시스템을 극복하는 단계다.
이 단계도 지난해 9월 이후 투자은행(IB)들의 부실자산을 정리한 데 이어 오바마 정부 출범 이후부터는 시중은행(CB)들의 부실자산을 처리하는 과정 중이다. 우여곡절이 있었긴 하지만 △악성 부실자산은 국가 직접 매입 △처리 가능한 부실자산은 국가 주도로 매각 유도 △소비자 금융지원을 통해 추가 부실 방지 등의 3가지 축으로 처리되고 있다.
앞으로 시중은행의 부실자산이 해결될 경우 금융의 중개기능이 살아나 실물부문에 자금공급이 가능해진다. 벌써부터 미국과 한국, 중국을 중심으로 일부 경제지표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론적으로 3개월 동안 진행된 경제지표를 보고 경기를 판단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이들 국가에서 소비지표가 먼저 살아나고 재고관련 일부 생산지표가 고개를 들고 있는 면에서 공통점이 발견된다.
소비지표가 먼저 살아나는 것은 인력 감축, 임금 삭감 등으로 절대임금은 줄어들어도 세금 감면, 세금 환급, 상품권 제공 등으로 가처분 소득이 크게 줄지 않는 데다 물가하락 등으로 실질구매력이 오히려 증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재고가 준다는 것은 소비증가로 상품구매가 늘어나는 것을 기업들이 먼저 재고로 대처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앞으로 소비 증가세가 지속되면 그 다음 단계에서 기업들은 생산설비를 늘릴 수밖에 없다. 소비가 생산으로 본격적으로 확산되는 과정으로 한 나라 경기가 이 단계에 진입되면 실물경기는 살아나고 주가는 또 한 차례 큰 폭으로 상승한다.
가처분소득과 실질구매력 증가로 고개를 든 소비증가세가 계속 이어지는 과정에서 최근 주가상승은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주가는 이미 지난해 말 저점대비 50% 상승했다. 이로 인해 임금소득에 비해 소비성향이 높은 자산소득이 늘어남에 따라 소비가 늘어나는 ‘부(富)의 효과’를 기대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동안 ‘자취를 감췄다’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최악의 시기를 겪었던 스마트 머니들이 최근 들어 행보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는 점도 앞으로 경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파악하는 데 중요한 변수다.
흔히 ‘똑똑한 돈·현명한 돈’으로 불리는 스마트 머니란 본래 국제금융시장에서는 수익을 좇아 시장 상황에 따라 이리저리 발 빠르게 움직이는 자금을 포괄적으로 부르는 용어다. 대표적으로 사모펀드나 헤지펀드, 벌처펀드 등을 들 수 있다. 또 최근 들어 한국 부동산 시장에 빠르게 유입되고 있는 엔·캐리 자금과 달러·캐리 자금도 이 부류에 속한다.
특히 이번에 달라진 스마트 머니들의 투자패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종전에 스마트 머니들은 제도권에서 자금조달이 막힌 중소기업과 소외계층들에게 자금을 빌려줘 수익을 취하는 대금업에 치중했었다. 하지만 최근에는 금융사 부실자산과 트리플 ‘B‘ 이하의 투기등급 회사채를 매입하거나 무형의 가치가 상실된 채로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오는 저가의 우량회사를 적극 인수하고 있는 점이 다르다.
스마트 머니의 이런 투자패턴은 경기적인 측면에서도 커다란 의미가 있다. 금융사 부실자산이 처리되면 금융의 중개기능이 복원되고 투기등급의 회사채와 저가의 M&A 시장이 활성화되면 위기 과정에서 소외됐던 기업과 계층에 이르기까지 자금공급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모기지 사태에 따라 금융과 실물 간의 격리됐던 ‘이분법 경제(dichotomy)’가 다시 ‘연계된 경제(dis-dichotomy)’로 전환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최근처럼 경기가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스마트 머니의 행보가 빨라짐에 따라 그 어느 시장보다 글로벌 증시, 특히 한국과 같은 이머징 마켓에 속한 증시에 훈풍이 불고 있다. 만기불일치 전략과 레버리지 투자, 위험자산 선호라는 3가지 기본원칙을 지키고 있는 스마트 머니들은 최근과 같은 경기가 막 살아날 조짐을 보일 때를 가장 선호하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단기간에 너무 빨리 올라간 만큼 지금의 장세가 ‘베어 마켓(bear market)’으로 규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기술적 지표상으로 주가 상승폭이 20% 이상 오르면 새로운 강세장인 ‘불 마켓(bull market)‘에 진입한 것으로 간주해 앞으로 주가가 조정을 받는다 하더라도 전 저점 밑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는 시장참여자들이 늘고 있다.
반가운 일은 주가가 상승할 때마다 베어 마켓 랠리라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내놓은 조정 후 하한선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는 점이다. 지난해 말 코스피지수가 저점 통과 후 1000선을 돌파할 때 이들은 500선까지 떨어질 것으로 보았던 하한선(최저수준 기준)이 그 후 1200 돌파 시에는 700선대로, 이번에는 1100선대로 상향 조정됐다.
그렇다면 ‘가짜 새벽‘을 ‘진짜 새벽‘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국내 기업들은 환율상승에 따라 누리는 이익에 종전처럼 심취해 있기보다는 다른 경쟁국 기업보다 빨리 구조조정과 경쟁선 개선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재원으로 활용해야 한다.
또 우리 정부도 지금 추진하고 있는 대대적인 경기부양대책이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해 ‘기저 효과’로 예상되는 하반기 이후의 성장률 회복세를 내년 이후에도 끌고 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정부의 이런 노력이 가능한 한 빠른 시일 안에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국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도 필요하다.
이럴 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우리 경제의 고질병인 ‘카산드라 콤플렉스’다. 카산드라는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각종 위기론을 퍼트려 세상을 어지럽게 하다가 결국은 자살하고 마는 저주의 신이다. 모두가 합심해 ‘가짜 새벽’을 ‘진짜 새벽’으로 바꾸어 놓으면 ‘외자 유입→주가 상승→부의 효과→경기회복’이라는 선순환 구조를 되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sch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