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법과 제도이슈
노동법의 새로운 방향은?
09. 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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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성
노동법은 지금 일대 전환기를 맞고 있다. 20세기형 노동법은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소규모의 수공업사회에서 대규모의 기계공업으로 전환되던 시대에 새로운 사회·경제적인 환경에서 유래한 과제를 해결해야 할 필요성에서 생성되었다. 이러한 노동법의 이념과 구조는 새로운 경제·산업구조의 변화로 인하여 수정될 수밖에 없다.
오늘날과 같은 고도의 산업화·정보화 사회에서 우리나라의 노동법은 국민경제의 역동성과 세계경제 질서 및 기업 경쟁력의 조화 등을 구조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다시 말해 전통적인 근로자 보호이념에만 국한되어 있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변화하는 현실을 직시하여 노동법의 새로운 발전방향을 모색해야만 한다. 근로자의 직장보호와 근로조건 개선은 궁극적으로 생산적·시장적 경쟁력을 갖춘 건전한 기업 경영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노동법에 주어진 당면과제는 경제위기로 고착되기 쉬운 구조적 실업을 극복하는 데 노동법이 어떻게 도움을 주고, 더 나아가 개방된 시장경제체제 하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보를 위해 노동법이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이러한 변화에 따라 종래의 노동법 패러다임 자체에 대한 검토가 요구된다. 즉, 20세기 후반부터 노동법의 토대인 포디스트 모델의 붕괴라는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후기 산업사회 및 복지국가의 위기의 도래는 산업자본주의 사회 및 복지국가 이념에 기초를 두었던 노동법의 기능에 대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지금의 경제상황은 급변하고 있다. 경제학자와 상당수의 노동법학자들은 노동관계법이 변화된 경제 환경에 대한 적응력을 상실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하면 노동법의 많은 규정들이 경제 논리에 모순되어 있으며, 노동시장 질서에서의 혼란과 대외 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하여 경제성장을 저해한다고 논평하기도 한다. 그러면 경제적 변화의 특징은 어떤 것인가? 그리고 이와 같은 변화의 요인들은 노동의 조건에 대하여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그동안 노동법은 이러한 변화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해 왔으며, 앞으로 어떤 대응을 해야 할 것인가?
확실히 경제 내지 노동의 현실은 기존의 노동보호법에 대하여 합리적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또한 기존의 노동법 체계는 사용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고 있는 취업근로자의 보호를 위주로 하면서 그 기득권을 철저히 보호(해고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실업자들은 ▸ 경제적으로 값싸고 질 높은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더라도 ▸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 다시 말해 취업 희망자(실업자)의 보호에 대해서 우리 노동법은 매우 소극적 태도를 취하고 있다. 현행 노동법은 취업 희망자(실업자)에 대해서 폐쇄성을 지니고 있으며, 비정규근로자의 문제가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 것도 이러한 폐쇄성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노동법의 폐쇄성은 노동시장에서의 능력 있고 생산성이 높은 노동력의 이동을 어렵게 하고 있다. 해고의 요건을 엄격하게 하고 있는 근로기준법의 규정은 그런 의미에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기존의 노동법은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노동시장의 운영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특징으로 지적될 수 있는 연공서열제와 정년제는 이른바 취업근로자와 실업자 사이의 벽을 더욱 두껍게 만들어 버렸다. 이와 같은 현실은 국민경제적 관점에서 노동력의 균등한 보호, 그리고 우수한 노동력의 확보에 의한 기업의 생산성 제고와 경쟁력 확보라는 관점에서 마땅히 시정되어야 한다. 노사관계제도의 개선과 노동시장의 정상화 문제는 비단 어느 특정 산업국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이 지구상의 모든 산업국가가 풀어야 할 과제이다. 여기서 노동법의 유연화 및 규제완화라는 새로운 정책방향이 제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노동법은 사용자의 채용의 자유는 인정하지만 해고(해지)는 엄격하게 제한(근기법 제23조, 제24조)하면서, 노동조합의 힘을 바탕으로 체결한 단체협약의 강행적 효력(노조법 제33조)은 엄격하게 보장하고 있다. 이 두 가지의 규정은 현행 노동법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고, 이는 또 기업주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채용된 근로자들에 대한 해고의 유연성은 엄격히 규제하면서 동시에 단체협약에 의한 계속적인 근로조건 개선의 강행을 인정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현행 노동법이 유연해져야 하고 노동시장법칙에 보다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개정되어야 한다는 요청도 이와 직접 관련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현행 노동법은 이와 같이 규제 완화·유연화에 맞추어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물론 노동법의 일차적 목적인 근로자 보호원칙을 부인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근로자 보호원칙은 노동시장에서 종속되어 있는 근로자의 교섭력의 균형을 확보하는 것을 일차적 임무로 하고, 일단 양 당사자 사이에 교섭력이 균형을 이루면 경쟁원리에 따라 근로조건이 형성되어야 한다는 점에 의미를 두어야 한다.
김희성 (강원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heesungk@kangwo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