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법과 제도이슈
경제위기 극복과 준법정신
09. 3.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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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2008년 하반기부터 몰아친 미국발 세계 금융위기의 현실이 2009년 이 시점에서 점차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나라도 수출이 줄고 실업률이 높아지고 실물경기가 위축되는 등의 경기 한파로 화창한 봄을 제대로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정부대로 기업은 기업대로 국민은 국민 개개인대로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지만 이 한파는 그리 쉽게 물러갈 것 같지는 않다. 더구나 지구촌은 세계화로 인하여 공동운명체처럼 엮여서 한 국가의 위기가 전체의 위기로 변하는 상황이어서 위기극복을 위한 길은 첩첩산중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는 비록 지금과 상황은 다를지라도 외환위기를 극복해낸 소중한 경험을 갖고 있다. 과거의 경험에서 오늘날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에서 벗어나 지난 수십 년간 눈부신 발전을 하였다. 소위 한강의 기적을 이룬 국가로서 제3세계 국가들에 있어서 발전을 위한 모델이 되었고 지금도 우리의 발전과정을 배우려는 국가들이 상당수 있다. 물론 우리의 이런 모습에는 국민의 희생과 노력이 있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 이면에는 발전에 따르는 부작용으로 인한 부정적인 면도 많이 있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공직사회의 비리와 부패로 인하여 부패공화국이란 오명을 쓰고 있으며, 수시로 발생하는 정경유착으로 인하여 경제계 역시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지 못하다. 또한 이런 것들이 원인이 되어 국가의 선진화에 장애가 되고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이번 정부가 내건 슬로건 역시 선진한국이다. 국가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경제발전도 중요하고 정치개혁이나 언론개혁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법과 원칙의 준수이다. 그렇지만 어떻게 준수해야 하는지 방법에 대하여 배우지 못하였다. 단순히 법과 원칙을 준수해야 한다고 요구해서 지켜지는 것이 아니다. 우선 법과 원칙이 지켜질 수 있도록 제도가 적절하게 구축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사회 환경이 조성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공권력의 정당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사회지도층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그렇지만 불행하게도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 사회가 변하는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공무원의 부정과 부패는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연일 방송을 타면서 국민을 우울하게 한다. 이번에도 사회복지담당 공무원들의 횡령사건이 꼬리를 물고 터지더니, 일부 경찰관들의 유흥업소와 유착관계가 드러나서 스스로 공권력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고 있다. 게다가 모 탤런트 자살사건으로 불거진 일부 엔터테인먼트업계의 가려진 추악한 모습은 우리 사회에 환멸을 느끼게 한다.
무엇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하였는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양식을 가진 자들은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원인들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삶의 좌표가 될 만한 것이 없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어느덧 존경받을 만한 이 시대의 스승도 없고, 목표로 삼아야 할 가치도 없는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오로지 돈에 가치를 두고 탐욕스럽게 맹목적으로 이를 추구하는 천민자본주의에 경도된 사회에는 희망이 없다.
자유시장경제체제가 통제된 사회주의적 경제체제를 넘어서 세계를 장악하게 된 것은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의 모순을 변화를 통하여 스스로 고쳐나갔기 때문이다. 빈부격차가 가져온 모순과 갈등을 고치기 위하여 사회복지시스템을 구축하여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이를 극복하였던 것이다. 그렇지만 20세기 말 불어 온 신자유주의의 지나침은 조절기능을 상실하게 만들고 오늘날과 같은 금융위기를 자초하게 만든 것이다. 지나침은 부족함보다도 더 위험한 것이다. 경제의 세계화는 세계를 하나의 거대한 시장으로 만들어 더 많은 기회와 이익을 제공하였지만, 다른 한편에서 시장의 조절 내지 조정기능이 약화되어 경기가 침체되기 시작하면 그 피해가 과거에 비할 바가 아니게 커지게 된다.
위기가 찾아오면 국가와 사회는 그 참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이번 위기에 상당수의 기업들은 과거의 경험으로 체질이 개선된 덕분에 아직은 버티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다수의 기업들은 취약한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흔들리고 곤경에 빠져 있다. 더구나 그동안 엄청나게 외연이 확대되었던 부동산경기로 인하여 거품을 키웠던 건설업계는 정부의 노력 속에서 구조조정에 들어갔다. 금융권 역시 그동안 방만한 경영의 대가를 치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일부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은 일반적 식견을 가진 자라면 누구라도 알 것이다.
지금 세계는 금융위기로부터 발생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전 방위로 대책을 수립하여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 정부 역시 국제사회와 공조하면서 위기극복을 위한 정책을 계속하여 쏟아내고 있다. 이러한 정책들이 가시적인 효과를 보이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또한 정부정책의 시행만으로 경제위기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주체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를 혼신의 노력으로 이행할 때 위기극복의 시점은 빨리 찾아올 것이다. 그러나 경기회복을 위한 각종의 정책과 이를 이행하기 위한 구성원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법을 지키려는 준법정신이다.
준법정신은 단순히 법만 지키겠다는 것이 아니라, 법을 지킴으로써 자신의 이익과 공동체의 이익을 도모하여 그 존재의 의미와 존립의 가치를 확인하겠다는 의지의 발로인 것이다.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의 자의적인 행사를 막고 정당한 법의 지배를 통하여 국민의 기본권과 국가의 존립을 보장하겠다는 것을 말한다. 법을 오·남용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국가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이다. 또한 경제발전의 동력을 감소시키고 국가의 신뢰를 떨어뜨려 국가경쟁력을 약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하여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준법정신을 확립하고 법과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김상겸 (동국대 법과대학 교수, thomas@dongguk.ed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