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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노조법, 어찌 해야 하나?


복수노조 및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를 다룬 노조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이 2010년 1월 1일 국회를 통과했다. 복수노조는 1년6개월 유예하고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는 오는 7월부터 적용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으로 되어 있다. 하지만 이 법은 그동안 수차례의 논의를 거치면서 뭐가 뭔지 모를 정도로 누더기가 된 법안으로 앞으로 많은 문제점을 노정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우선 개정되기 전의 노조법에 따르면 지난 13년간이나 유예되어 왔던 복수노조 허용과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가 2010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도록 되어 있었다. 법 제정 시 이러저러한 이유로 시행을 유예하는 경우는 있지만, 세 차례에 걸쳐 총 13년 동안이나 유예된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더 이상의 유예는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는 부분이고, 그렇다면 지난 정부 혹은 이번 정부 출범과 더불어 초기에 보완책을 서둘러 마련했어야 했다. 하지만 중대한 사안에 대해 책임을 지지는 않고 눈치 보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상대방에게 전가하기 좋아하는 정치권은 차일피일 시간만 보냈다. 이들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보완해야 할 것들은 너무나 자명하다. 우선 복수노조 허용과 관련하여 복수노조의 등장으로 인해 이중삼중의 교섭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고, 이는 기업과 사회 전체에 엄청난 혼란과 비용을 가중시킬 수 있는 위험요소이다. 이 위험요소를 어떻게 제거 내지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인지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그 해법이 곧 창구단일화다. 창구단일화를 어떻게 이룰 것인지는 부차적인 문제이다. 비례대표로 할 수도 있고 과반수를 차지하는 노조가 대표할 수도 있다. 이 문제는 노조들 사이의 자율적 협상에 맡겨도 된다. 창구단일화와 함께 꼭 짚어야 할 중요한 것은 창구단일화가 되지 않았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인가를 명문화하는 일이다. 창구단일화가 되지 않을 경우 사측이 교섭을 거부할 권한이 있고 일정 기간 내에 창구단일화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사측이 교섭대상 노조를 지명할 수 있는 권한 등을 사측에 부여하면 된다. 이로써 복수노조와 사측의 힘의 균형이 이루어질 수 있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와 관련해서는 특별히 보완할 내용이 없다. 그런데 일부 정치권과 노조에서는 대기업 노조와는 달리 중소기업의 노조들이 재정이 빈약하여 전임자 임금을 지급할 여력이 없기 때문에 이들에게는 앞으로도 사측이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이는 무언가 모순된 주장이다. 대기업이 노조전임자에게 임금을 지급하는 것은 물론 문제지만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으로 인해 큰 부담을 갖게 되는 것은 대기업보다는 중소기업이 더하다. 그렇다면 정작 시급하게 금지해야 할 것은 중소기업에서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다. 그런데 대기업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은 금지하자고 하면서도 중소기업에게는 노조전임자 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엉뚱한 소리들이 나왔다.


중소기업 노조의 재정문제와 관련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이는 노조들이 자율적으로 협의하고 결정할 일이다. 즉 재정이 풍부한 대기업 노조들이 재정이 빈약한 중소기업 노조에게 지원을 함으로써 자신들이 강조하는 ‘단결’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좋다.


그렇게 눈치만 보면서 시간만 보내던 정부와 정치권은 막바지에 몰리면서 지난 12월 4일 어렵사리 소위 노사정 합의에 도달했다. 어렵게 합의를 이뤘음에도 불구하고 12ㆍ4 노사정 합의가 갖고 있었던 큰 문제점은 노조전임자가 노사 공동의 이해관계와 관련된 활동을 하는 시간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하여 회사가 임금을 지급하는 근로시간 면제(time-off)제도를 도입한다는 것이었다. 즉 노조가 회사로부터 노조전임자의 임금을 받아낼 수 있는 합법적인 근거를 마련해 주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었다. 또한 앞으로 어떤 활동이 또 어느 정도의 시간까지가 이 타임오프 제도의 적용대상이 될 것인지를 놓고 노사가 현장에서 첨예하게 대립될 불씨를 남겨 놓았다.


12ㆍ4 노사정 합의안을 기초로 했다는 한나라당의 개정안은 사실은 노사정 합의안보다도 더 이상한 방향으로 나갔다. 한나라당은 한 술 더 떠서 자신들의 노조법 개정안에 ‘노사 공동의 문제’는 물론 ‘통상적인 노조관리업무’를 근로시간 면제제도의 적용대상으로 은근슬쩍 집어넣었다. 이렇게 되면 노조전임자 임금을 회사가 지급하는 현 상황과 다를 것이 전혀 없다.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규정 자체를 유명무실화시키는 내용의 문구를 삽입한 한나라당은 크게 반성해야 한다. 뒤에서 보겠지만 이 문구는 변형된 형태로 개정된 노조법에 그대로 남게 된다.


한나라당의 개정안은 물론 12ㆍ4 합의안도 받아들이지 않던 추미애 환경노동위 위원장은 뒤늦게 6자회담을 제안하고 절충을 시도한 후 자신의 소속 정당인 민주당으로부터 ‘배신자’ 소리를 들어가면서 자신의 노조법 개정안을 한나라당을 통해 통과되도록 했다. 추 위원장의 소신과 결단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통과된 개정안의 내용은 여전히 문제가 많다.


개정된 노조법에는 한나라당이 근로시간 면제제도의 적용대상으로 슬쩍 집어넣었던 ‘통상적 노조관리 업무’가 ‘건전한 노사관계 발전을 위한 노동조합의 유지 및 관리업무’로 문구만 바뀌었을 뿐 사실상 그대로 유지되어 있다. 이로써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조항이 유명무실해진 것은 물론, 앞으로 이 문제를 둘러싸고 노사가 격한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이 매우 커졌다. 노동부에 ‘근로시간 면제 심의위원회’를 설치하여 3년마다 근로시간 면제의 적정성 여부를 결정한다고 하지만 여기서 과연 원칙에 따른 결정이 나올지 의문이다. 다분히 정치적 계산에 따라 상한선이 지속적으로 확대되는 이상한 결정이 나올 가능성이 크다.


복수노조의 경우에도 현재 조직된 산별노조는 향후 2년6개월 간 창구단일화 대상에서 제외토록 되어 있다. 이들에게만 이런 특혜를 줄 이유가 전혀 없을 뿐더러 이렇게 함으로써 회사는 이중삼중의 교섭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결국 개정된 노조법은 가장 우려하던 부분이었던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문제와 복수노조 허용에 따른 혼란과 비용 상승 배제의 문제를 전혀 해결하지 못했다. 오히려 복수노조의 허용시기를 기존 안보다 1년을 앞당겨 기업들이 대비할 수 있는 기간을 줄여 버렸고, 기존 산별노조에는 특혜를 주었으며, 근로시간 면제제도의 적용범위를 확대하고 모호하게 만들어 노사 간 커다란 갈등의 여지를 남겨놓았다. 아무 것도 해결하지 못하고 시간에 쫓겨 얼버무린 채 ‘후속조치’라는 쪽으로 넘겨버린 셈이다.


“이렇게 고칠 것이었으면 왜 개정한다고 그 난리를 쳤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을 수밖에 없다. 앞으로 세부방안과 후속조치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하지만 애초에 잘못 들어선 길이라면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다 현명한 판단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모두를 만족시키는 법을 만들기는 어렵다”고 불평하지만 그럴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 노사관계 선진화라는 큰 흐름에 역행하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권혁철 (자유기업원 법경제실장, kwonhc@cf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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