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개정 상법을 두고 논란이 한창이다. 그 중에서도 이사의 자기거래 범위를 확대한 것을 두고 경영활동을 심각하게 제약하는 독소 조항이라는 비판들이 가해지고 있다. 원래 ‘자기거래’란 회사경영을 담당하는 이사들이 본인 또는 제3자를 위해 회사와 거래하는 것을 말하며, 이는 이사회의 과반 출석에 과반 찬성의 승인을 얻도록 되어 있었다.
국회법사위서 주요주주까지 대상 범위 확대되어
이번 개정에서 문제된 것은 자기거래의 범위가 대폭 확대되었다는 점과 이사회 승인요건이 엄격해졌다는 것이다. 즉 개정 전에는 승인대상이 이사 본인이 회사와 거래할 때로 한정되어 있었는데, 개정을 통해 이사 자신뿐 아니라 그 부인과 친인척, 이들이 경영권을 가진 회사와 거래할 때까지로 확대되었다. 그리고 과거 이사회 승인 시 이사 과반수 출석에 출석이사 과반수가 동의하면 승인할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재적 이사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도록 하였다.
이처럼 법무부가 자기거래의 범위를 확대하고 승인요건을 엄격히 한 데에는 이사진의 경영권 남용을 통제하여 소수주주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데 근본 목적이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법무부의 이번 상법 개정작업은 나름대로 명분은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명분이 국회법사위를 거치는 동안 그 종적을 감추었다. 즉 법무부가 마련한 개정안에서는 적용대상이 종래 이사에서 이사, 이사의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이사 배우자의 직계존비속, 50% 이상 지분을 가진 회사 및 자회사로 한정되어 있었다. 이 법무부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주요주주가 슬쩍 들어가면서 주요주주는 물론이고 주요주주의 배우자 및 직계존비속, 주요주주의 배우자의 직계존비속과의 거래도 이사회 승인대상으로 포함되었다.
이처럼 주요주주가 대상 주체에 포함됨으로써 발생되는 문제는 예상보다 훨씬 더 큰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주요주주란 10% 이상 의결권 주식을 소유하거나 이사ㆍ집행임원ㆍ감사의 선임과 해임 등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 또는 출자자가 이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 주요주주에는 개인주주뿐만 아니라 법인주주도 포함된다는 점이다. 즉 한 기업이 다른 기업의 주식을 10% 이상 소유하고 있으면 주요주주가 되며, 이들 간의 거래는 모두 이사회의 승인을 거쳐야 한다. 따라서 앞으로는 이러한 계열기업들 간에 거래를 하려면 매일 이사회를 개최하여야 한다. 또한 이번 개정을 통해 사후승인도 금지되었기 때문에 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거래행위는 회사에 이익이 되어도 경영진 모두는 회사에 대한 민사책임은 물론이고 특별배임죄 등과 같은 형사처벌도 받게 되었다. 물론 국회 심의과정에서 법무부안에 추가로 주요주주를 포함시킨 이유는 아무래도 대기업의 ‘계열사 간 일감 몰아주기’를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국가경제 손실에 상법 본질마저 왜곡시키는 결과 초래
그러나 이러한 개정법은 근본적으로 큰 오류를 갖고 있다. 첫째, 상법이 본래의 목적인 주주 간 이해충돌 조정이 아닌 중소기업 보호에 목적을 둔 지원법으로 전락하였다는 점이다. 그동안 경제전문가들은 극심한 경제 전쟁 속에서도 우리나라 기업들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은 계열사 간의 협력을 통한 신속한 의사결정과 추진력에서 찾아왔다. 그러나 이번 상법 개정으로 국내 기업들이 이러한 장점들을 활용하지 못함으로써 그 불이익이 주주들에게 전가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둘째, 기존에 존재하는 제도에 중복되는 통제로서 헌법상의 과잉 금지 내지 중복규제 금지 원칙에 반하는 위헌 소지를 안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는 공정거래법과 상법의 상장회사 특례 규정을 통해 대기업의 내부거래나 이해관계자와의 거래를 규제하고 있어서 이사의 자기거래 통제가 충분한 상태이다. 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속하는 회사가 특수관계인을 직접 거래 상대방으로 하거나 특수관계인을 위해 대규모 내부거래를 하는 경우, 이사회 사전 의결을 거쳐야 하고 의결 후 그 내용을 공시토록 되어 있으며,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과징금 부과는 물론 형사소추의 대상도 되도록 규정되어 있다. 또한 상법에서도 자산 2조 원 이상의 상장회사는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을 상대방으로 하는 거래를 하는 경우 이사회 보통결의에 의한 승인을 거쳐 주총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이를 위반한 경우에는 회사에 대한 민사책임은 물론이고 특별배임죄, 과태료 등과 같은 형사처벌도 받게 되어 있다. 따라서 현행 제도로 충분히 통제할 수 있음에도 상법 개정을 통해 추가로 통제하는 것은 향후 끊임없는 위헌 논란을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셋째, 이번 상법 개정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정반대로 진행됨으로써 우리 자본시장을 고립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 국가의 자본시장이든 기업들에 대한 통제가 적절해야 외국 자본의 직접투자가 증가하여 국가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다. 따라서 각국은 회사법을 통한 시장개입을 최소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모범사업회사법은 물론이고 각 주의 회사법도 자기거래를 이사와의 거래로만 한정하고 있다. 그리고 영국의 회사법도 자기거래를 이사와의 거래로만 한정하고, 일정한 규모 이상의 거래에 대하여는 사전승인을 요구하고 있는 정도이다. 우리 상법의 모태가 되었던 독일의 경우는 심지어 이사의 자기거래 제한 규정 자체를 두고 있지 않다. 다만, 감독이사회가 이사와 회사 간 거래를 감독하여 회사에 손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간접통제만 하고 있을 뿐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점을 고려해 볼 때 이번 상법 개정에 따른 자기거래 범위 확대는 국가경제 손실은 물론이고 상법의 본질마저 왜곡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러한 문제점들이 있음에도 굳이 국회가 법무부안을 슬쩍 바꿔 이처럼 무모한 입법권을 남용한 것은 아무래도 또 다른 정치적 목적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즉 포퓰리즘이다. 그러나 법률은 국가의 근본 질서를 유지하는 최후의 보루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법률을 헌법정신과 원칙을 무시하고 인기영합주의의 도구로 사용하는 것은 역사적으로 큰 죄를 짓는 일일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재개정 논의가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전삼현 (숭실대학교 법학과 교수/기업소송연구회 회장, shchun@ss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