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각 정당들은 대선을 앞두고 득표를 위해 ‘경제민주화’라는 정치상품을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경제민주화’라는 기치 아래 구체적으로 어떤 목표를 추구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어떤 이들에게는 경제민주화가 소득재분배를 통한 복지제도 확충을 뜻하는 반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골목상권과 중소기업의 보호를,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재벌체제의 해체를 뜻한다. 또 다른 이에게는 공정한 시장경제의 규칙의 엄격한 적용을 의미한다.
이처럼 ‘경제민주화’는 “당신들이 원하는 곳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겠다.”는 것보다 더 불명확한 목표이다. 이런 구체성을 상실한 목표들을 다수결의 민주주의 정치로 추구할 때 어떤 결과가 발생할까? 하이에크의 명저, 『노예의 길』 중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를 따라가 보자.1)
결론부터 말하자면, 경제민주화로 포장된 정책들은 여러 개인들의 자유를 억압하게 될 가능성이 높고, 경제민주화라는 구호로부터 일반 대중들이 기대하는 것이 다양한 만큼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추진한 정책들이 일반대중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개인들의 일치된 목적으로서의 ‘사회적’ 목적
독립적 주체로서의 개인, 즉 개인주의에 기초한 민주주의에서 ‘사회적 목적’이란 많은 개인들의 동일한 목적에 다름 아니다. 동일한 목적을 가진 사람들은 공동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공동행위를 할 수 있다. 이것을 이들의 사회적 목적이라고 이름을 붙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을 국가의 여러 기능에 적용해 보면, 이론적으로 볼 때 국가는 기본적으로 시민들이 만장일치를 한 분야에 한해 그 역할과 기능을 인정받을 수 있다. 물론 현실적으로는 예컨대 국방과 치안의 경우처럼 시민들이 실질적으로 만장일치를 해준 것으로 간주될 수 있는 국가의 기능도 있고 또 어떤 기능은 절대적 다수가 동의했을 것이다.
만약 국가가 그런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서도 직접적 통제를 행사하게 되면, 국가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게 된다. 그래서 개인의 자유의 확보를 위해서는 국가의 권력이 행사되는 영역을 그런 합의가 존재하는 영역 안으로 제한하는 규칙들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그런 민주주의가 ‘제한적 민주주의’(limited democracy), 자유민주주의이다.
합의된 구체적 목표들은 없는 상태에서의 수단에 대한 합의
다수의 사람들이 ‘국민들의 복지를 증대시키기 위해’2) 국가개입(중앙집권적 계획)이 필요하다고 믿을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그들은 ‘국민들의 복지 증진’이라는 추상적 목적에 대해 동의했을지 모르지만, 구체적 목표들에 대해 동의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따라서 그들은 구체적 목표에 대한 진정한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국가개입이라는 수단에 대한 합의만 이룬 셈이다. 사실 무엇이 각자의 복지에 가장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은 각자 다르다. 당연히 타인의 복지에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한 생각은 개인들의 수만큼 다양할 수 있다.
이처럼 목표들에 대한 동의가 없는 상태에서 수단을 합의하는 것은 마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디로 갈지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막연히 좋은 곳으로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합의한 것과 같다. 함께 여행하기로 한 약속 때문에 결과적으로 특정한 곳으로 여행을 떠나지 않을 수 없을지 모르지만 아마도 그 특정한 곳으로의 여행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했던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무능한 말-가게로 낙인찍히는 의회
목표에 대한 합의가 없는 상태에서 수단만 합의한 상태는 분쟁의 씨앗이 된다.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거나 이루어질 수 없는 분야일 때 특히 더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회에는 구체적 계획의 합의를 만들어내라는 주문이 주어진다. 그렇게 되면 의회는 논란만 무성한, 그러나 구체적 계획을 만들어내지 못하는 무능한 말-가게(talk-shop)가 되고 만다. 이에 따라 계획의 입안을 의회가 아닌 관료와 전문가 그룹에 의존하게 되고 심지어 경제독재자의 필요성까지 거론된다.3)
하이에크는 이렇게 말한다. “민주주의 다수결로 군사작전을 만들어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를 전문가인 장군에게 맡기기로 의회가 합의할 수 있다. 그러나 구체적 경제계획을 민주주의 다수결로 그려내는 것은 다수결 군사작전보다 더 불가능하다.”4) 의회가 경제전문가에게 경제계획의 수립을 맡기기로 합의하더라도 그는 앞에서의 장군과는 처지가 다르다. 그는 자신의 가치관이 반영된 경제계획을 다수의 사람들에게 부과할 수 있을 뿐, 의회에서의 분쟁이 필요 없는 경제계획을 만들어낼 수 없다. 경제독재자의 필요성이 거론되는 것은 바로 이 대목이다.5)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
현재 경제민주화는 좋은 곳으로의 여행보다 더 막연하고 다양한 목표들을 가지고 있다. 만약 경제민주화가 현행의 방식대로 추진된다면, 아무튼 몇 가지는 확실해 보인다. 첫째, 의회의 무능이 부각되는 과정에서 정치적 혼란을 겪을 수 있다. 둘째, 이에 따라 구체적 계획을 짜는 데 최종적 영향력을 행사할 대통령의 권력은 막강해지고, 행정부와 전문가로 대접받는 관료들이 더 득세할 것이다. 셋째, 그 결과 개인들의 경제적 자유는 더 제한될 것이다. 넷째, 경제민주화로 극소수의 부자나 재벌을 제외한 대다수 사람들의 삶이 좋아질 것처럼 대다수 사람들에게 비쳐지고 있기에 일부의 기대가 충족되더라도 실망한 다수의 대중들을 만들어낼 것이다.
현재 대선후보들은 하나같이 경제민주화와 함께 일자리 창출도 내세우고 있다. 일자리 창출은 기업가적 기민성을 발휘하여 투자가 이루어질 때 파생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기업가정신은 자유로운 경제에서 가장 활발해진다. 이에 반해, 어떤 구체적 목표를 추구하는 것으로 최종적으로 귀결되든 경제민주화는 필연적으로 경제를 특정 방향으로 규제하고 경제적 자유를 억압한다. 그렇다면, 경제민주화와 일자리 창출을 동시에 약속하는 것은 마치 산과 바다로 동시에 여행을 떠나자고 하는 것과 별로 다를 것이 없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부소장, kimyiso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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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책의 핵심 메시지 중 하나는 권력이 자의적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권력의 원천이 아니라 권력에 대한 제한이라는 점이다. 민주적 절차에 의해 다수의 지지로 대통령을 선출했다고 하더라도 그의 권력이 고정된 규칙들에 의해 제한을 받지 않는다면, 그는 얼마든지 자의적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
2) ‘국민들의 복지를 증대시키기 위해’ 대신 ‘경제를 민주화시키기 위해’라고 대입해 생각해보면 된다.
3) 이런 하이에크의 논점은 국민의 대표들이 겉으로는 국민들의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 같지만, 실은 자기들의 잇속을 챙기기 때문에 의회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공공선택이론(Public Choice)의 시각과는 다른 각도에서 의회의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4) 군대의 장군에게는 전쟁에서의 승리라는 하나의 목표가 주어지고 모든 통제 가능한 수단들을 배타적으로 그 목적에 사용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진다. 경제계획을 그려내는 일을 의회가 아니라 경제전문가에게 맡기더라도 그에게 동일한 하나의 목표가 주어지지도 않으며 장군에게와 같은 가용자원들에 대한 배타적 통제권도 주어지지 않는다. 그 장군은 서로 다른 독립적인 목표들에 대해 저울질할 필요도 없고 하나의 지고한 목표만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국민들의 복지증진이라는 경제문제는 항상 서로 충돌하고 경쟁하는 목표들 사이에서 저울질하여 선택하는 행위를 반드시 동반한다. 예를 들어 주어진 예산 안에서 학교 무상급식을 늘리는 것은 학교 시설투자를 줄이는 것을 의미하며, 더 나아가 무상급식의 증대는 교육 예산을 늘리므로 국민 건강의 증진에 투입될 재원을 줄이는 것을 의미한다.
5) 히틀러 집권 당시 의회의 무능을 질타하는 분위기 속에서 민주주의가 개인의 자유를 보호하는 기능을 잃고 쇠락하는 상태에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는 경제독재자가 되기 위해 민주주의를 파괴할 필요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히틀러를 혐오했지만 오직 히틀러만이 무능한 의회와는 달리 일을 실행해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하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히틀러는 ‘민주적’지지 아래에서 경제독재자가 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