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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 시리즈 9] 공동체의 기본원리에 반하는 경제적 민주화


민주는 정치원리의 하나다. 공적(public) 영역을 다루는 정치에서 민주원칙이 강조된 것은 다수의 뜻에 따른 통치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에서의 민주원칙도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만 적용된다. 다수가 믿는 것도 틀릴 수 있고, 다수 의지일지라도 곧 다시 변할 수 있는 것이며, 다수 의지에 의한 결정이 결과적으로 지속가능한 것이 아닌 예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명백한 다수가 지지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제도적 기반을 갖추어 법치에 근거하도록 했고, 법의 합목적성과 법 적용의 적절성에 대한 판단도 제3자인 사법부가 양심과 사실관계에 기반을 두어 판단하도록 되어있다.


공적 영역에서 민주가 기본원칙의 하나가 된 것은 공동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에 대한 결정과 그 결정을 집행하는데 따른 공동의 비용부담이라는 명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도로나 철도를 건설한다든지 의무교육을 실시한다든지, 아니면 치안유지나 안보국방의 문제 등은 공동체 대다수의 이해가 걸려있는 사안일 뿐만 아니라 함께 비용을 부담해야 할 사안들이다. 공동결정에는 항상 공동부담을 전제로 하는 것이다. 따라서 공동의 비용부담과 공동의 이해가 걸려있는 정부와 같은 공적기구의 운용은 민주원칙이 강조될 수밖에 없고 당연한 것이다. 마치 친구들 간에 공동 회비를 모아 공동목적으로 집행하는 모임이 있다면 그 운영이 민주적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듯, 국민 부담으로 만든 정부예산 345조원의 지출은 당연히 민주적 원리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맞다.


최근 문제가 되는 것은 공적 영역 밖의 사적(private) 혹은 시장(market) 영역의 운용 원리의 문제다. 당사자들 간에 이루어지는 사적 영역에서도 민주원칙을 관철해야 하느냐 하는 정당성의 문제이고, 설사 관철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바람직하거나 효율적이냐의 문제가 있다. ‘경제 민주화’와 관련된 수많은 논의도 대부분 사적 영역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골목 상권을 보호하기 위해 기업형 슈퍼마켓의 진출을 제한한다든지, 재래시장 보호를 취지로 대형쇼핑몰에 휴업일을 강제하는 것이 그것이다. 과거에 백화점의 셔틀버스의 운행을 중단시킨 것이나, 중소기업 고유 업종을 지정하여 대기업의 진출을 제한한 것도 마찬가지다. 나아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을 대상으로 한 이익 공유제나 지배구조 변경 혹은 대기업 해체 등이 논의되기도 한다. 모두가 다수를 보호하거나 혜택을 주기 위해 소수를 규제하거나 희생시킬 수 있다는 경제에서의 민주통제론에 근거한 것이다.


과거에도 지방중소업체인 소주업체를 보호한다고 진로와 같은 대기업 소주의 매출을 제한시킨 바 있었지만, 결국 소비자의 선택만 제한시켰을 뿐 지방소재 소주업체의 존속과 경쟁력을 제고시키진 못했다. 결국 소비자를 포함한 모두를 희생시켰을 뿐이다. 초기 영국의 산업화 시대에 농장의 대형화를 막겠다고 엔클로저(Enclosure) 반대투쟁도 있었고 기계가 일자리를 빼앗는다며 러다이트(Ruddite)라는 기계파괴투쟁도 있었다. 하지만 보호된 사람은 없었고 모두가 희생되었다. 마찬가지로 골목상권과 재래시장은 물론 기업과 상품은 보호받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변화해가야 하는 것이다. 재래시장의 아주머니는 보호받고 그 아들이 근무하는 E-마트는 규제받아야 한다는 논리만큼 허구적인 것도 없다. 다수에게 이익이 돌아가기는 커녕 거꾸로 소수의 사업자를 위해 다수의 일반 소비자를 희생시키는 것일 뿐이다.


자유선택에 따라 이익을 함께 나누고 증진시키기 위한 자유거래와 계약을 규제할 목적에 따른 ‘경제 민주화’란 곧 경제에 대한 경제 외적 통제이며 사적 영역에 대한 불필요한 공적 통제다. 시장개척과 기술개발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춰 나가며 일자리를 만들어야 할 대기업에게 ‘경제민주’란 칼날을 겨눠 규제하고 떠나게 만든다면 그것만큼 사회전체의 희생을 초래하는 일은 없다. 뼈 빠지게 일하는 어머니에게 세금을 더 거둬 그 아들의 등록금을 할인해주겠다는 것이나 아버지의 주머니를 털어 놀고 있는 아들의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것도 마찬가지로 모두 불필요한 통제이자 과도한 개입이다. 특히 정치적 통제인 경제 외적 통제는 그 통제주체들이 직접적인 이해당사자가 아니기에 경제주체들이 선택하고 거래하는 이유를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것은 물론, 경제외적 통제에 따른 비효율에 책임도 지지 않는다. 결국 아무 비용도 부담하지 않고 결과에 책임 지지 않는 외부의 통제가 ‘민주’란 명분을 붙여 당사자들을 희생자로 몰아가는 격이다.


정부운용과 사업에 민주원칙을 강조하는 것은 조세를 통해 공적 비용을 분담하기 때문이고 공적사업의 결과는 보편 국민에게 직간접적 이해를 발생하기 때문이지만, 경제적인 사적 영역에서의 민주통제는 당사자 간 판단과 자유선택을 외적으로 강요하는 것이기에 그 자체로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경제에서의 민주통제란 자유롭게 배분되어야 할 국민의 재화를 정치인들이 자의적으로 요리할 수 있는 정치적 배분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과 다름없다. 그것은 법과 규제와 같은 공적 제도를 소수의 특정 이해당사자를 위해 남용시켜가며 다수 소비자의 자유를 희생시키는 것이다. 더구나 ‘경제민주화’가 정치적 선동세력이 권력획득이란 정치이익을 얻기 위해 착시현상을 활용하여 국민을 속이고 결과적으로 국민 부담과 희생을 강요하는 짓이라면 그것이 가장 반민주적인 짓이다.


김광동 (나라정책연구원장, kwangdong@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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