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유럽 각국 정부가 재정위기로 국가경쟁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진다. 특히 'PIIGS' 국가인 포르투갈(77.4%), 이탈리아(114.6%), 아일랜드(65.8%), 그리스(112.6%), 스페인(54.3%)의 국가채무에 대해 우려를 많이 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공기업들의 채무를 포함하여 국가채무에 따른 재정건전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조세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이 되면 우리나라의 국가채무 규모가 국민총생산, GDP 대비 116%로 EU 국가와 비슷한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기업의 채무, 우려할만한 수준
공적금융기관의 채무까지 합친 우리나라의 '공적부채'는 700조 원으로 GDP의 70%에 달해 국민 1인당 1,5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공기업을 제외한 우리나라 국가부채가 올해 407조 2,000억 원으로 GDP의 36%에 달하며 공기업의 부채까지 합치면 훨씬 커서 안심할 수준이 아니라는 의견이 많다. 지난 10년 동안 국가채무는 4배 가까운 수준으로 늘었고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두 배로 높아졌다. 국가채무의 통계에도 잡히지 않으면서 국가부채에 못지않을 정도로 비대해진 공기업의 채무까지 감안한다면 재정건전성이 심히 우려된다.
재정건전성, 시장이 배분하는 건전한 채무
정부부채가 많다고 해서 꼭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민간기업의 채무처럼 상환가능성의 여부에 따라 건전성을 판단해야 할 것이다. 따라서 상환가능성이 희박할 정도로 부채가 커지면 정부부채는 우려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의 경우 중국의 높은 경제성장률만을 보자면 중국정부나 금융기관의 부채는 별문제가 아닐 것처럼 보이지만, 상환가능성을 대출기준으로 삼는 시장을 기준으로 본다면 시장을 바탕으로 하여 자본을 할당하지 않고 생겨난 부채이기 때문에 중국정부의 부채는 건전한 부채가 아니라고 평가된다. 중국에서 사업적 가치와는 전혀 관련 없이 혈연이나 지연 그리고 정치적 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대출은 결과적으로 상당 부분 회수가 어려운 ‘부실채무’가 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중국 GDP의 4분의 1 내지 3분의 1이 부실채무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일본의 경우도 인위적으로 형성된 저금리로 경제성 없는 기업에 시장기준에서 벗어난 인맥과 관계에 의해 자금이 흘러 다닌 탓에 수많은 악성부채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일본의 지방정부는 경제성과는 무관한 사업을 정부의 보조와 차입자금으로 경쟁적으로 추진한 결과 빚더미에 앉아 있는 실정이다. 경기후퇴가 다가오자 뼈를 깎는 자구노력으로 부실기업을 퇴출하지 않고 구제수단을 동원해 고통을 연기한 결과 회복은커녕 고질병을 얻게 되었다.
최근 우리나라 정부는 정치권의 요구에 따라 포퓰리즘 정책을 시행 과정에서 국가채무가 증가하고 있고, 지방정부는 과시성 건물의 신축이나 지방공기업의 신설 내지 이벤트성 사업의 추진으로 인해 재정적자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이미 선심성 정책에 길들여진 백성들의 요구로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는 중앙정부의 부채나 재정자립도를 상실한 지방정부의 부채를 두고 상환될 수 있는 건전한 채무라고 인정하기가 어렵다. 더구나 선거로 인해 포퓰리즘 정책이 만연되는 바람에 재정적자는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오는 6월 치러질 지방선거에서 도움을 준 사람들을 챙겨주어야 하는 공인들의 부담으로 말미암아 포퓰리즘의 덫에 빠진 공기업의 개혁은 점점 뒤처질 수밖에 없다.
가의(賈誼)의 논적저소(論積貯疏)
기원전 178년 한(漢)나라 가의(賈誼, BC 200~168년)가 개국공신인 상장군의 호사스런 모친장례를 비난하는 상소를 올리자 한문제(漢文帝, 전한의 제5대 황제로 재위기간 기원전 180~157년)는 조정회의에서 개국공신들의 사치풍조를 힐난한다. “무훈을 세웠으니 후한 상을 내리는 것은 마땅하나 재물을 뿌리며 부를 과시하듯 서로 겨룬다면 백성들이 뭐라고 욕하겠는가”라며 언성을 높인다. 가의는 사치풍조를 없애기 위해 단기적으론 사치를 금하는 청렴단속율령을 제정하는 일뿐만 아니라 동시에 나이가 많아 퇴관한 원로관료들을 장안에서 자기의 봉토로 돌려보내도록 건의한다. 젊었을 때 한 나라를 세우는데 공로를 세워 조정에서 상과 봉록 및 노복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놀고 마시고 허례허식에 빠져 부를 누리기만 하는데 그것이 소수라면 별문제가 없지만 하나의 풍조를 이룬다면 농사를 망치는 메뚜기 떼와 다를 바가 없다고 건의한다.
이런 소식이 전해지자 개국공신들은 겨우 석 달 만에 박사에서 중대부로 승진한 가의에게 불만을 쏟아냈다. 그 이후 가의가 지어올린 ‘논적저소(論積貯疏)’를 읽은 한 문제는 중앙과 지방의 대소 신료들을 모아놓고 “천하에 놀고먹는 자가 너무 많아 나라가 병들고 있다면서 지금 근검 절약하지 않고 계속 누리기만 한다면 한나라의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가의의 뛰어난 재능과 파격적인 승진이 주발(周勃), 장상여(張相如) 등 중신들의 시기와 질투로 모함을 받는다. 결국 한문제로부터 소원해진 가의는 개혁을 이루어보지도 못하고 33세의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하였다고 사기(史記)는 전한다.
가의의 개혁의지는 좋았지만 기존 세력의 벽을 넘지 못하고 결국 실패했다. 우리나라 공기업 개혁을 추진하는데 있어서 이 역사적 사례가 주는 교훈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향후 재정위기에 한몫 차지할 공기업의 개혁을 다시 한 번 촉구한다. 일자리 부족이 사회문제로 대두하자 공기업들이 스스로 나서 청장년층의 일자리를 제공하는 숨통 역할을 자처하니 개혁이 주춤거리는 호기를 맞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일자리는 청장년들 스스로 찾아나서야 하는 대상이다. 정부가 일자리를 찾아 청장년들에게 내어주는 일은 사회주의로 나아가는 길이나 다를 바 없다. 2200년 전에 논적저소를 통해 절약을 강조하였던 가의의 지적을 선심성ㆍ과시성ㆍ연명성 사업에 열중하는 공기업이 한번 되새겨볼 필요는 없을까?
유동운 (부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dwyu@pk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