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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의 경쟁주창 기능 수행에 바란다


공정거래위원회는 흔히 공정거래법에서 부여한 권한에 근거하여 경쟁규제를 행하는 기관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시장대 정부, 경쟁대 규제를 대립되는 개념으로 이해하는 입장에서 볼 때, 공정거래법에서 부여한 공정위의 권한 행사는 시장에서 사업자의 활동을 규율하는 좁은 의미의 규제적 성격보다는 시장에서 경쟁을 통한 자기통제(self-control)의 기능을 존중하는 가운데 그 기능의 원활한 작동을 방해하는 구조나 행태를 시정하는 법 집행적 성격 위주로 행해져야 한다. 따라서 경쟁규제라는 표현은 부적절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점은 공정거래법의 집행을 포함하여 시장에서의 경쟁질서 보호와 관련된 공정위의 여러 활동이 통상적인 규제와는 달라야 하고, 법의 수범자(受範者)인 사업자 입장에서도 그와 다른 것으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함을 일깨워준다.

법 집행을 포함한 공정위의 활동이 통상적인 규제와 달라야 한다는 점은 공정위가 수행하고 있는 또 하나의 기능인 ‘경쟁주창(competition advocacy)’ 기능에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난다. ‘경쟁주창’이라 함은 법 집행이 아닌 다른 수단을 통하여 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을 말한다. 법 집행은 주로 그 수범자인 사업자를 대상으로 법 준수 여부를 감시하고 위반 시 구제수단을 강구하는 것인데 반하여, 경쟁주창은 다른 정부기관과 일반 대중에게 경쟁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경쟁의 혜택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공정위가 경쟁주창 기능을 수행하는 법ㆍ제도적 근거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공정거래법 제3조에 규정된 공정위의 독과점적 시장구조 개선시책 수립ㆍ시행의무 조항이다. 이 규정에 근거하여 공정위는 관계 행정기관의 장에게 필요한 의견을 제시하고 시장구조를 조사하여 공표할 수 있다. 특히 시장구조의 조사ㆍ공표를 위하여 사업자에 대하여 필요한 자료의 제출을 요청할 수 있는 권한을 갖는다.

둘째, 공정거래법 제63조에 규정된 공정위의 경쟁제한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령의 제ㆍ개정에 대해 관계 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는 권한에 관한 조항이다. 이러한 공정위의 권한은 경제 관련 입법과 공정거래법 사이의 가치 충돌 상황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셋째, 행정규제 기본법에 근거한 규제영향분석(Regulatory Impact Analysis)의 일환인 경쟁영향평가제도(competition impact assessment)이다. 2009년부터 국무총리실의 지침에 따라 관계 행정기관의 장이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하는 법령을 만들면서 입법예고를 할 때 공정위에 법안과 규제영향분석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공정위는 이에 대한 경쟁영향평가를 실시한 후 그 결과를 해당 부처와 규제개혁위원회에 제출하게 되었다.

이러한 세 가지 제도는 공통적으로 경쟁제한적 규제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시장구조 개선시책과 관련된 공정위의 경쟁주창 활동이 공정위가 기존의 경쟁제한적 규제를 발굴하여 사후적으로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라고 한다면, 경쟁제한적 법령 제ㆍ개정에 관한 사전협의 제도와 규제 신설ㆍ강화 법령에 대한 경쟁영향평가 제도와 관련된 공정위의 경쟁주창 활동은 경쟁제한적 규제를 사전적으로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두 가지 활동은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한다.

특히 사전예방 활동과 관련하여 사전협의는 관계 행정기관의 장이 경쟁제한적 법령인지를 자체적으로 판단하여 공정위와 협의하도록 하고 있어 사실상 공정위의 심사기능이 형식적이었던 반면에, 경쟁영향평가의 경우 규제의 신설 또는 강화에 해당하면 당연히 이를 거치도록 되어 있어 경쟁제한적 법령에 대한 공정위의 심사기능이 보다 실질적인 것이 되었다. 또한 공정위는 지난 2010년 3월 ‘공정거래법 제63조에 의한 법령 등의 경쟁제한사항 심사지침’을 제정하여 경쟁제한사항을 경쟁에 미치는 효과에 따라 ① 사업자의 수 또는 사업영역의 제한, ② 사업자의 경쟁능력 제한, ③ 사업자의 경쟁유인 저해, ④ 소비자의 선택 및 정보제한으로 나누고 각 유형에 해당하는 사례를 제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기준은 공정위가 행하는 경쟁영향평가에도 원용될 것으로 보인다.

경쟁제한적 규제개선을 위하여 공정위가 경쟁주창 기능을 적극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매우 바람직하고 권장할 일이다.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을 집행하여 위반사업자를 제재하는 것은 이를 통하여 사업자에게 경쟁의 규칙에 따라 행동하는 유인을 제공하기 위한 것이지만, 사업자가 처한 제도적 여건이 경쟁제한적 적응을 부추기는 것이라면 그 제도를 그대로 두고서 그 영향을 받는 사업자만을 제재하는 것은 자기책임의 원리에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경쟁제한적 규제개선은 법 집행과 병행하거나 경우에 따라서는 그에 앞서 이루어져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다만 경쟁제한적 규제의 개선이 반드시 규제의 폐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산업분야에 따라서는 유효경쟁의 기반을 형성하고 공정경쟁을 촉진하기 위한 규제가 여전히 필요한 분야가 있고, 그런 분야에서는 규제의 합리화를 포함한 규제의 질적 개선이 더 시급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장구조 개선을 위한 공정위의 조사권한이 법 위반 혐의를 전제로 한 구체적 위반행위 조사권한과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이와 관련하여 공정위가 사업자를 조사하면서 어떤 법 위반 혐의가 있는지를 알려주지 않고 포괄적인 조사를 행한 후 조사 내용 중 위반행위를 걸러내는 방식의 조사 관행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한다.

홍대식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dshong@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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