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원 의원을 대표로 지난 6월 22일 국민연금법 일부 개정안이 국회에서 발의되었다. 동 법안의 취지를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국민연금공단에 대해 사외이사 추천권과 대표소송제기권 등을 의무화함으로써 기업(주식)가치를 제고하고 국민연금의 재정안정에 기여하겠다는 것이다. 이 법안은 표면적으로는 주식가치 극대화를 내세우고 있지만, 정치권에서 소위 ‘경제민주화’ 구호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발의된 것이어서 정치권의 시장에 대한 통제를 위한 수단으로 보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연금법 일부 개정안: 기업가치 극대화 주장은 어불성설
우선 그 의도 자체를 논의하기에 앞서 동 법안이 입법취지에서 밝힌 기업가치의 극대화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결론적으로 말해 동 법안은 기업 가치를 제고하기보다는 하락시킬 가능성이 높고 기업들로 하여금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노력을 강화시킬 위험이 다분하다.1) 정치가들은 기업가에 비해 현장의 구체적 정보의 획득과 판단 면에서 크게 뒤질 뿐 아니라 이윤을 획득하고 손실을 회피하고자 하는 이윤극대화 동기가 아니라 득표 극대화 동기에 따라 움직인다. 그에게는 정권의 획득과 유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법률적으로 보면, 국민연금으로 하여금 상법에 따라 주어진 주주의 권리를 정당한 사유가 없는 한 행사하도록 하는 동 법률안은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정당한 사유가 있으므로 주주의 권리 행사 의무화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선 국민연금은 강제연금이고, 국민들은 국민연금공단의 기금운영 결과와 상관없이 법정 연금을 받게 될 뿐이므로 국민연금공단이 제대로 투자했는지 감시할 유인이 없다. 국민연금상품이 정치적으로 매력적이기 위해서 보통 시중의 연금 상품에 비해 유리하게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운용팀이 시장의 민간투자운용회사에 비해 미래를 더 잘 예측하는 것도 아니므로 더 높은 수익률을 내기 어렵고 오히려 더 낮은 수익률을 내는 것이 일반적이다.2) 그래서 보통 국민연금의 적자는 국채 발행 등을 통해 보전된다.
국민연금 의결권 강화는 결국 국민과 기업에게 구조적 문제점을 안겨
국민연금에 강제 가입한 국민들의 무관심 속에 국민연금공단의 경영진은 자신들의 임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정치인들을 쳐다보게 된다. 그래서 국민연금이 사외이사 추천권 등 주주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면 주식가치가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에 가깝다. 그럴 능력도 동기도 내재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현재 국민연금은 주식 수로 볼 때, 어느 대기업집단의 오너 못지않게 높은 주식을 보유하고 있어 많은 경우 최대주주의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하게 될 때, 아마도 기업들은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에게, 그리고 여기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정치권에게 잘 보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밉보인 기업들은 국민연금의 적대적인 의사결정에 직면하게 될 수 있다. 소비자들의 수요와 더 저렴한 생산방법을 모색하는 기업 활동과는 관계없는 일들에 기업들은 상당한 비용을 지출하지 않을 수 없게 될 것이다. 기업들은 소비자들이라는 시어머니에 더해 정치인이라는 시어머니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동 법안이 입법화될 때, 연금기여금을 내고 연금을 받는 동시에, 연금재정의 적자를 메우는 국채를 갚아야 할 주체인 국민들과 기업들은 그 처지가 악화된다. 다만 국민연금공단의 경영진과 이들을 임면할 권한을 가진 정치권은 막강한 권력을 누리게 될 것이다. 정치권의 이권을 창출하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을 위해 동 법안이 발의되었다면, 당연히 동 법안은 재검토되어야할 것이다.
김이석 (시장경제제도연구소 부소장 , kimyisok@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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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홀콤(Holcomb)은 조세의 ‘정치적 비용’이라는 용어를 쓰고 있는데, 비유해서 말하자면,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
사가 종전에는 존재하지 않던 이런 의결권 행사에 의해 경영권을 위협받거나 여타 불이익을 받지 않으려는
정치적 노력을 하게 만든다는 의미에서 일종의 정치적 비용을 발생시킨다고 할 수 있다. Holcomb, Public
Sector Economics, Prentice Hall, 2006., p. 219.
2) 강성원,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구조적 문제점, 한국경제연구원,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