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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원칙과 한계


최근 국민연금 기금과 관련 한 자문위원회에서는 국민연금이 주식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하도록 권고 했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주식의결권 행사는 주식회사를 근간으로 하는 우리나라 자본주의 시스템을 뿌리 채 흔들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신중함이 요구된다. 400조원의 현재의 기금규모에서도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최대주주로 부상하는 상황이다. 적립기금이 현재 보다 몇 배 규모로 늘어나고 주식에 대한 투자 비중을 높일 것으로 전망되는 미래에는 국민연금의 금융시장 지배력은 한층 더 강화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국민연금 주식의결권 행사의 원칙과 한계를 분명하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사회보장의 중심축으로서 미래 초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기 위하여 1988년부터 시행된 이해 적립기금이 지속적으로 증가하여 2040년경에는 2500조원 규모로 늘어날 전망이다. 국민연금은 재정안정성 측면에서 연금보험료를 인상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 향후에는 적립기금이 더 빠르게 증가될 가능성이 높다.


그동안 국민연금 기금의 운용과 관련된 주요 정책과제는 기금운용 수익률을 제고하는 것이었고 안정성과 유동성 그리고 공익성 등이 자산운용의 원칙으로 제시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우리나라 자본시장이 협소한 상황에서 국민연금 기금이 거대기금으로 성장하면서 보다 근본적인 새로운 문제에 봉착하고 있다. 즉, 국민연금 기금이 증대됨에 따라 국민연금이 경제와 자본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절대적으로 커지게 되는 문제이다. 우리나라 대기업의 지배구조가 취약한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대기업 지분의 확대는 국민연금에 의한 기업지배 더 나아가 국민연금에 의한 시장경제의 지배가 현실화되고 있다.


의결권 행사의 강화가 기업의 지배구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방향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국민연금이 보유주식에 대하여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은 주주로서의 당연한 권리로 볼 수 있다. 실제로 미국의 일부 연기금의 경우에는 의결권 행사를 통하여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국의 기관투자가의 다수는 주식 투자된 기업에 의사표시를 의결권 행사를 통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월 스트리트 룰이라고 하는 ‘중이 절이 싫으면 절을 떠나면 된다’ 식의 주식의 매각이라는 행동으로 의사를 표시한다.


그렇지만 현재의 정치적 여건으로는 국민연금으로 하여금 월 스트리트 룰만을 준수하도록 요구하기는 어려운 국면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지배구조의 특수성은 국민연금의 주식 의결권 행사를 자제해야 한다는 주장과 동시에 국민연금의 주식 의결권 행사를 적극적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이 대립하도록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의 국민연금의 주식의결권 행사는 소극적이었지만 앞으로는 어떠한 형태로든 의결권행사를 강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지만 의결권 행사의 강화가 기업의 지배구조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방향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업 운영은 기업가의 몫이지 투자자의 몫은 아니기 때문이다.


향후 본격적으로 국민연금이 주식의결권을 행사하게 되면 국민연금은 우리나라 대부분의 중견기업의 경영권을 장악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자유시장경제의 도전이고 한국 자본주의 체제 자체가 붕괴될 수 있는 상황으로 전개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장래에 대한 우려 이전에 현재의 국민연금 보유 주식만으로도 기업에 대하여 지배력을 행사할 수 있으나 행사되고 있지 않을 따름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국민연금 기금운용 준칙이 금융시장이 발전된 선진국과는 또 다른 차원에서 새롭게 정립되지 않으면 국민연금에 의한 기업지배의 부작용은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은 궁극적으로 투자자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기금이 펀드 오브 펀드(fund of fund)가 되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주식투자의 경우에는 전부 하위 fund에서 독립적으로 투자하도록 하고, 개별 fund가 투자자의 입장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따라서 국민연금이 획일적으로 하위 fund의 의결권 행사를 좌지우지하는 것은 법적으로 제한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별 fund가 준수해야할 의결권 행사지침은 필요하겠지만 fund의 성격에 따라 차별적으로 행사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


한국 자본주의는 국민연금이라는 예상하지 못했던 존재의 부각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법적으로 국민연금의 기업 영향력을 제한하는 것은 한계가 분명하다. 법은 국민의 대의기구인 국회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국민의 대기업관이 국민연금에 의한 기업압박 강도를 결정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이 경영의 독립성을 지키는 길은 기업이 보다 더 투명한 경영을 하는 길 외에는 선택대안이 없다.


김용하 (순천향대학교 금융보험학과 교수, yongha01@sch.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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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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