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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의 재정위기와 그 시사점


최근 그리스 재정위기(Greek Financial Crisis)와 관련된 뉴스가 계속 나오고 있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사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2008년 미국발 경제위기로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국가들이 많다 보니 세계적 관심의 초점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역시 국가부채가 증가하고 있는 추세여서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관심을 갖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 사실이다. 위기일발로 치닫던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최근 그리스 정부의 국채발행 성공으로 일단락되는 듯하다. 하지만 문제에 대한 근본적 치유가 가시적으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는 측면에서 완전히 꺼진 불로 간주하기도 어렵다. 여기서는 그리스 재정위기의 원인과 배경 그리고 그 시사점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그리스 재정위기의 원인은 몇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장기간 높은 수준으로 지속되어 왔던 사회복지 지출과 방만한 재정운영을 꼽을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그리스는 민주화가 진행된 1970년대 이후 상당기간 동안 사회주의 정권이 집권하였으며, 분배를 강조하는 적극적 복지정책을 추진한 바 있다. 문제는 이러한 복지정책이 과도하게 강조되다 보니 경제력을 넘어서는 수준이 되어 재정적자의 심화 및 국가부채 규모의 증가로 이어졌다는 점이다. 실제로 그리스의 국가부채 규모는 국가 전체의 1년치 소득(GDP)을 넘어선 지 오래이며, 2010년에는 GDP 대비 125%가량, 2011년에는 13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서는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한 공기업 개혁이나 연금제도의 개혁정책 등이 효과적으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다. 국가 전체가 분배와 복지에 오랜 기간 익숙해진 탓으로 보인다. 이 가운데 사회주의 성향의 국가에서 흔히 나타나는 공공부문의 비대화 현상도 지속되고 있다. 결국 과도한 복지지출은 방만한 재정운영과 맞물려 오늘의 위기상황을 초래한 근본적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는 무리한 유로 단일통화권의 편입 문제를 들 수 있다. 유로 단일통화권, 즉 유로존(Eurozone)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국가부채에 대한 일종의 자격기준을 갖추어야 하는데, 그리스는 인위적으로 국가부채를 낮추는 편법을 사용한 바 있다. 그리스는 2001년 유로존 가입을 위해 세계적 투자은행(IB)인 골드만삭스와의 채권스왑계약을 체결한 바 있는데, 이와 같은 일종의 분식회계를 통해 유로존 편입자격을 얻은 것이다. 이는 채권의 이자상환부담 가중을 가져와 재정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유로존 편입이 가져온 또 다른 문제는 환율정책을 스스로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한 나라의 경제상황이 악화되면 자국화폐의 평가절하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국 산업의 수출경쟁력이 확보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화폐가치의 절하는 수출품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고 구매력의 약화는 수입 감소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90년대 후반 IMF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환율효과의 도움을 받은 것이 좋은 예라 할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의 경우에는 유로존 가입을 선택함으로써 환율조정을 통한 경제회복의 기회를 잃게 된 것이다.


셋째 원인은 특유의 산업구조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그리스는 관광 및 해운업을 경제력의 기반으로 하고 있다. 역사문화 유적을 토대로 한 그리스 관광산업의 국제경쟁력은 세계 최고수준이다. 지중해의 교통요지라는 지정학적 요인 또한 그리스 해운업의 융성을 뒷받침해 왔다. 반면 그 외의 산업, 즉 생산활동의 기초(fundamental)라 할 수 있는 제조업이나 고부가가치 첨단산업의 발전은 눈에 띄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산업구조의 편중현상은 경제위기에 취약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미국발 경제위기는 전 세계적인 소비위축을 가져왔으며, 이는 그리스 관광산업에 큰 타격을 입히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국제 교역량의 급감은 세계 5대 상선보유국이자 GDP의 8%가량을 담당하고 있는 그리스 해운업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이와 같은 주력산업의 부진은 경제성장력 약화와 세수 감소 등을 통해 재정적자 심화문제를 가중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의 재정위기는 이와 같은 여러 요인들의 복합된 결과라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그리스는 현재 국채발행을 통해 시급한 불은 끈 상황이라 하겠지만 재정적자 문제가 완화되지 않는 한 상환이자 가중으로 인한 부담이나 헤지펀드의 국채거래 등으로 인한 잠재적 위기요인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안은 재정적자 완화를 통한 공공부문 건전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재정적자 완화를 위한 다양한 정책들이 좀처럼 추진되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스 정부는 과거에도 다양한 재정건전화 정책들을 추진한 바 있다. 방만하게 운영되는 공기업 개혁이나 13개에 달하는 연금체계의 개혁, 그리고 공공부문의 고용축소 및 임금조정 등의 정책들을 시도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에서는 최근 5년 동안 공무원 수가 5만 명가량 증가하였으며, 공공부문의 임금 역시 해마다 5~7%가량 증가해 왔다. 공기업 개혁이나 연금체계 개편은 노조의 반대에 부딪쳐 제대로 추진되지도 못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이번 위기에도 유사하게 나타난다. 이번에도 그리스 정부는 세수를 늘이고 재정지출을 억제하는 일련의 정책들을 발표한 바 있다. 부가가치세율과 고가품의 소비세율 인상, 공무원의 상여금 삭감, 연금지급액의 감축, 근로자 정년연장 정책들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책들은 노조 등의 즉각적 반대에 부딪치고 있으며, 사회적으로도 별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사실 그리스의 재정악화 문제는 그 뿌리를 역사성에서 찾아야 한다는 견해가 있을 정도로 오래된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상황은 역사적 관행이라는 명분으로 용인되기에는 그 정도가 심각한 듯하다. 이미 이웃 유로존 국가들에 그 피해가 전이되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을 의식한 대중영합적 정책은 자국 경제체계가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의 복지지출을 지속하게 했고, 이는 국가 빚의 증가로 이어졌다. 국가부채 증가를 통한 복지지출의 확대란 결국 남의 나라 돈으로 잘 먹고 잘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보자면 이번 그리스의 경제위기에 대해 “단 한 푼도 도와줄 수 없다”는 이웃 국가들의 냉소적인 태도는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남의 돈을 빚내어서라도 제 밥그릇을 챙기겠다는 이기적인 이웃을 어느 누가 환영하겠는가?


다행히 우리나라의 재정상황은 아직 심각하지 않다고 한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국가부채의 증가 속도나 복지 및 분배에 대한 사회적 요구증가를 고려할 때, 그리스의 일이 마냥 남의 일만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최근 논의되고 있는 무상급식 전면 확대 방안에 대한 논의도 걱정스럽게 흘러가지 않는가?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타산지석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


김상겸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iamskkim@dankook.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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