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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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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문화가 경쟁력이다


스티브잡스가 신개념 스마트폰을 만들어내면서 우리나라의 휴대폰 강국 지위가 일거에 흔들리고 있다. 스티브잡스는 기존의 스마트폰이 사용자(user)의 니즈를 스마트하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스마트폰을 개발하게 되었다고 한다. 애플의 폐쇄적 운용체계를 고집하다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완패를 당한 바 있던 스티브잡스가 관점을 확 바꾸어 소비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개방체계를 구축한 것은 패배의 교훈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사물의 모습은 각자 다르게 볼 수 있지만 관점을 바꾸어야 할 때 그렇게 하지 못하면 낙오된다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근로문화도 관점의 변화가 매우 중요한 시점에 와 있다. ‘근로문화’를 ‘사람들이 일하는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노동에 관련된 경제사회 여건의 변화는 새로운 근로문화를 요구한다. 우리나라의 글로벌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근로문화는 전혀 글로벌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제품의 고객이 전 세계로 확대되고 국외에서 생산도 많아졌으며 기업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의 해외 견문도 늘었지만 근로문화는 별로 변화하지 않았다. 노사관계 불안 때문인지 근로문화의 문제도 노사대립의 관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이 새로운 관점에서 근로문화를 위한 상생의 개선방안을 찾지 못한다면 글로벌 기업으로서 한계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근로자들의 성실함이 우리나라의 근로문화를 대변한다면 업무시간 중에 몰입하고 여가생활을 즐기는 모습이 선진국의 근로문화라고 할 수 있다. 성실함이 우리나라가 짧은 시간에 빈곤에서 탈출하게 하였지만 이것만으로는 선진국 문턱을 넘기 어렵다는 점은 지난 10여년의 경험을 통해서 알 수 있다. 투쟁적인 노동운동과 노동조합과의 갈등 때문에 현장의 근로자들이 가지고 있는 인적자원의 가치를 키우고 활용하는 과제에 대해서 소홀하였다. 그러나 지금처럼 시간 투입은 많이 하지만 성과는 적은 고비용저효율 근로문화를 바꾸지 않고는 기업의 경쟁력은 물론 근로자들의 행복지수를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는 데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근로문화를 바꾸는 문제는 노사정이 마음먹고 합심하지 못하면 해결하기 어렵다. 근로시간이나 생산성 문제는 경영자와 근로자들의 의식과 직결되고 가정생활에도 크게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더욱이 지난 10여 년간 근로시간 단축 문제는 노동계에는 임금소득 보전의 문제가 된 반면에, 경영계에는 인건비 증가의 문제가 되면서 노사 상생의 관점에서 해법을 찾는 것이 쉽지 않은 해묵은 논쟁거리가 되어버렸다. 새로운 근무형태를 개발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노동계는 고용불안의 유발로 보는 반면, 경영계는 노동시장의 규제를 늘리는 문제로 보면서 말만 무성한 이슈가 되었다.


이러한 식의 근로시간이나 근무형태를 둘러싼 논쟁이 진행되는 동안 고용사정은 악화되고 소중한 인적자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해 경제사회 발전의 잠재력은 저하되어 왔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전 노사정은 근로시간ㆍ임금제도개선위원회에서 근로시간을 향후 10년 이내에 선진국 수준으로 단축하고, 일자리를 만드는 데 도움이 되는 새로운 근무형태를 개발하며, 생산성을 높이고 고용을 안정시키는 데 기여하는 임금제도의 개선에 합의하였다. 이번 합의는 근로문화 선진화의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여기에는 노사정이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인적자원을 적극적으로 개발ㆍ활용하여 급격히 진행되는 경제사회구조 변화를 수용해야 한다는 자각과 이에 따른 관점의 변화가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서비스업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커지면서 사무나 영업, 연구개발 등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비해 기존의 근로시간제도는 제조업과 생산직의 근로형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이러다 보니 업무의 특성에 맞는 새로운 근무관행을 만들기 어려웠고 이것은 서비스업과 화이트칼라 직무의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장시간 근무관행은 가사 부담이 큰 여성에게 노동시장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하여왔고, 고령화된 노동력에게는 신체부담으로 작용해 일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부작용을 일으키는 등 국가 차원의 노동력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노사정 합의가 선언에 그치지 않고 실천에 옮겨지도록 하기 위해서는 노사정 모두 발상을 전환하고 일상의 직장생활부터 작은 변화를 일으킬 필요가 있다. 노동계는 새로운 근무관행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이분법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근로자들의 인적 속성에 맞게 근무여건을 조정함으로써 일할 수 있는 기회를 확대한다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근로시간 단축 문제에 대해서도 생산직 근로자들은 근무시간에 따라 결정되지만 화이트칼라 근로자들은 고정급을 받기 때문에 근로시간의 단축이 급여의 감소로 이어진다고 할 수 없다는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노동운동이 근로자들의 행복지수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삼고 근로자들이 휴일휴가를 취지대로 사용하면서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을 늘려 노동력의 충전을 도와주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경영계 또한 기업의 경쟁력에 대한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 직원들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 등 투입하는 노동력의 양보다 업무에 실제로 투입하는 인적자원의 질적 가치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는 점을 중시할 필요가 있다. 먼저 결제단계의 축소, 부서간의 협조 등 업무혁신을 통해서 불필요한 일거리를 줄이고 동시에 상사 눈치 보기 등의 이유로 타성적으로 야근하거나 휴가를 반납하는 관행을 개선해 직장에서 보내는 시간과 업무에 투입하는 시간이 일치하도록 사무실의 분위기를 바꾸는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기업의 경영혁신이 시간의 낭비요인을 줄이고 근로자들의 창의성과 생산성을 높이는 데 주안점을 두게 된다면 기업의 경쟁력과 근로자의 삶의 질이 동시에 향상되는 상생의 노사문화도 저절로 자리 잡게 된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정부도 새로운 근로문화 형성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금년 11월의 G20 정상회의를 근로문화를 선진화시키는 계기로 삼을 필요가 있다. 인적자원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근로시간의 양보다는 질적 가치를 더 중시해야 선진국이 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적 재앙이 되는 저출산 문제가 노동시장의 문제와 깊이 관련되어 있다는 점, 그리고 저출산 문제에 따른 노동력 부족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여성이나 고령자 등 지금까지 활용도가 낮았던 계층의 고용기회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가정과 직장생활의 양립을 가능하게 만드는 근무형태를 활성화하는 것이 핵심이라는 점에 눈을 돌려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관점에서 근로문화 선진화 정책을 총력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노사가 사업의 특성과 근로자들의 인적 속성에 맞는 다양한 근무형태를 도입할 수 있도록 직무 중심의 채용 및 급여 관행 확립 등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또한 근로문화 선진화에 관련된 근로시간 및 고용 관련 통계를 대폭 보강해 과학적인 정책을 만들고 지속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지표를 개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withkim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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