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또 동결했다. 2009년 2월 12일 2.0%로 인하한 이후 벌써 10개월 이상 유지하고 있다.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는 이유는 금리 인상이 경기회복에 장애가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라 한다. 금리를 올리면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져 가계의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가계 부채가 증가하여 가계 파산 증가와 금융기관 부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걱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준금리를 올리지 않는다고 반드시 시중금리가 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한다고 해도 시중금리는 시장의 압력을 받아 올라가는 법이다.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이고 있다. 12월초 4.05%였던 3년 만기 국채의 금리가 오르기 시작하여 4.3%까지 올랐으며, 지난달까지 2.45%였던 CD금리가 2.85%로 올랐다. CD금리가 오르면 대출금리가 오르게 되어 있다. 대출금리가 오르면 결국 가계의 이자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최근 진동수 금융위원장이 시중은행장들을 만나 대출금리 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권고한 것은 앞으로 시중금리가 오를 것이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금리가 오르는 것은 인플레이션 압력 때문이다.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소비자물가가 2008년 마지막 3개월 동안 떨어졌다가 올해 들어서부터 거의 매월 올랐다. 소비자물가가 연초에 비해 2.4% 올랐으며 상승세가 확대되고 있다.
<표 1> 소비자물가지수 동향
인플레이션 압력이 생긴 것은 저금리정책으로 인해 풀린 과다한 통화량 때문이다. 2008년 9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2009년 10월까지 본원통화가 20.2%, M1이 19.6% 증가하였다. 이것은 2008년 10월 전년 동기대비 본원통화와 M1의 증가율이 각각 7.3%와 4.2%였던 것에 비해 무려 약 3~4배나 증가한 것이다. 이 같은 과다한 유동성은 계속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며, 결국 앞으로 시중금리가 올라가는 요인이 될 것이다.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하여 경기회복을 이루고 가계의 이자 부담을 줄이려는 목적은 낮은 기준금리가 시장금리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때 가능하다. 그러나 기준금리를 낮게 유지한다고 할지라도 시장에서 금리가 오르게 되면 그 목적은 허공의 메아리처럼 사라져 버린다. 이러한 현상은 기준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장기간 유지할 때 발생한다. 기준금리를 낮은 수준으로 장기간 유지할 경우 자산거품이 생기고 가격 인플레이션이 발생하여 시장금리를 올리게 된다. 뿐만 아니라 가계부채의 증가를 촉발하여 장기적으로 가계파산 증가와 금융기관부실을 유발할 수 있다. 그러므로 가계의 이자 부담이 커져 가계의 소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가계부채가 증가하여 가계 파산 증가와 금융기관 부실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기준금리를 억제하려는 정책은 장기적으로 결코 유효하지 않다.
장기간 기준금리를 올리든지 올리지 않든지 경기회복과 가계의 이자 부담에 미치는 부정적인 효과는 비슷하다. 이것을 피하기 위해 진동수 금융위원장의 권고처럼 시장에서의 금리인상을 막으려고 한다면 그것은 저축자와 차입자 간의 소득재분배 문제를 야기한다. 저축자들은 낮은 금리를 원하지 않는다. 차입자는 낮은 금리를 선호할 것이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으면 저축자와 차입자 사이에 저축한 돈의 사용에 대한 가격, 즉 금리에 대해 어떤 합의가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 정부가 여기에 개입하면 이러한 합의가 파괴된다. 저축자는 기꺼이 받으려고 하는 금리보다 낮은 금리를 받게 되고, 차입자는 기꺼이 지불하려고 하는 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게 된다. 이는 정부가 저축자의 이자소득을 차입자에게 이전하는 것과 같다. 달리 말하면 정부가 저축자로부터 세금을 거둬 그것을 차입자에게 주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금리 인상을 억제하는 것은 저축자에 대한 보이지 않는 세금이고, 차입자에게는 보이지 않는 보조금인 셈이다.
한편 저금리를 유지하고 금리를 억제하는 것은 일종의 가격통제다. 따라서 일반재화에 대해 가격통제를 할 경우 재화의 공급이 줄듯이 대부자금의 공급이 준다. 이것은 저금리 정책으로 유동성을 많이 공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표 2>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예금은행 대출금 증가율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에서 확인된다. 은행이 낮은 금리로 자금을 보유하게 되면 그것을 보유하는 직접적인 비용이 크지 않다. 그래서 대출활동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치러야 할 비용이 낮다. 그러므로 경제의 불확실성으로 인해 채무불이행의 위험이 높은 상황에서 은행들은 대출을 잘해 주지 않는다. 정부의 저금리 정책의 의도는 저금리로 대출자금을 늘려 경기를 부양시키려 하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정부가 의도한 만큼 대출자금이 늘지 않는 것이다. 저금리를 통해 늘린 유동성이 실물경제로 투자되기보다는 상당부분이 단기성 유동자금으로 표류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본원통화가 20.2%, M1이 19.6%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 10월 M2와 L이 전년 동기대비 2008년의 M2(13.1%)와 L(11.5%)보다 낮은 각각 10.5%와 10.6%의 증가율을 기록한 것에서 확인된다. 장기보다는 단기 금융상품이 많이 이용되고 있는 것이다.
<표 2> 은행 대출금 증가율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저금리 정책을 유지해 왔다. 오랜 기간의 저금리 정책으로 풀린 돈이 유령처럼 돌아다니며 어디에서 어떤 짓을 할지 모른다. 우리가 과거에 경험했던 부동산 시장과 벤처산업에서 거품을 다시 일으킬지, 미술품시장에서 거품을 일으킬지, 귀금속시장에서 거품을 일으킬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알 수 있는 것은 어딘가에 가서 거품을 일으키며 말썽을 부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한 가지 더 알 수 있는 것은 정부가 개입하여 돈이 몰리도록 하는 인센티브가 있는 부문에 거품이 생겨 동티가 날 것이라는 점이다. 그것은 미국 정부가 서브프라임에게 대출을 유도하도록 지역재투자법(Community Reinvestment Act: CRA)을 개정함으로써 연방준비위원회의 저금리 정책으로 풀린 막대한 유동성이 주택시장으로 많이 몰려 2008년 금융위기가 발생한 것에서 유추할 수 있다. 그러므로 정부는 어떤 시장개입도 자제해야 한다.
저금리 정책은 글로벌 금융위기 후 금융시장을 안정시키는 데 적잖은 공헌을 했고 지금 금융시장은 상당히 안정되어 있다. 그런 만큼 경기회복을 꾀한다는 명분으로 더 이상 저금리 정책을 유지하는 것은 위험하다. 기준금리를 조금씩 올려가며 유동성을 거둬들여야 한다. 일부에서는 기준금리를 올리는 것이 금융시장을 불안하게 만들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보다는 기준금리를 올려가면서 유동성을 흡수하지 않으면 오히려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지는 사태를 맞이할지 모른다.
경기회복은 저금리 정책보다는 민간경제의 활성화에서 찾아야 한다. 민간경제는 환경에 좌우된다. 규제완화 감세, 그리고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국내외 기업들이 활발히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또한 무역의 활성화가 경기회복에 미치는 효과가 매우 크다. 따라서 무역장벽을 제거하여 무역 활성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특히 교착상태의 한미 FTA를 조속히 실시하고, 다른 국가들과의 FTA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안재욱 (경희대학교 대학원장/한국하이에크소사이어티 회장, jwan@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