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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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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사회주의적 기업관에 근거


세계적인 PR 전문용역회사인 에델만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밀턴 프리드먼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이윤을 늘리는 것”1)이라는 금언에 동의하는지 여부를 조사한 결과를 발표하였다.2) 조사는 24개 국가에서 대학교육 이상의 학력과 상위 25% 이내의 소득수준을 가진 응답자를 대상으로 하였는데, 상위 10개국에서 57~84%, 하위 10개국에서 30~50%에 이르는 찬성률을 보였다. 상위 국가에는 UAE, 일본, 한국, 미국이 포함된 반면, 하위 국가에는 스페인, 이탈리아, 중국, 러시아가 들어 있다. 일본(2위, 72%), 한국(4위, 70%)과 같이 이웃의식(neighborhood pressure)이 강한 나라에서 높은 찬성률이 나왔다는 점은 흥미롭다.


대중적 ‘반기업정서’가 강한 것으로 알려진 우리나라에서 나온 이런 결과는 기업과 기업인 그리고 기업이윤에 대해 심각한 인식의 편차가 있고,3) 그런 인식을 부추기거나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많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반기업정서는 주로 재벌이나 부자에 대한 반감을 반영하고 있고,4) 기업 일반에 대해서는 대체로 호감도가 높게 나타난다.5) 그러나 기업의 목표에 대해서는 이윤창출 이외에도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나 근로자 복지 향상이라는 반응이 높게 나타나고 특히 교사, 공무원, 시민단체 간부, 노조 간부 집단은 대다수가 이윤의 사회 환원을 최우선 목표라고 꼽는다고 한다.6)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정책적으로 실현한다면 부작용 초래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이 여론의 큰 호응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지금 언론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윤리적 기업(Ethical Business), 기업의 양심(Corporate Conscience), 지속적 책임 기업(Sustainable Responsible Business), 자본주의 재창조(Reinventing Capitalism), 가치공유(Shared Value)와 같은 용어들이 쉴 새 없이 등장하고 있고, 최근에는 고용노동부 산하기관인 사회적기업진흥원, 형식만 민간기구인 동반성장위원회가 설립, 운영되고 있다. 전직 재벌기업 회장 출신인 이명박 대통령은 공정사회의 실현을 위해 기업들의 협조를 당부하는가 하면, 전직 국무총리인 정운찬 동반성장위원회 위원장의 활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기업들도 이런 분위기에 편승해서 이들 기구에 기부금을 내고, 기업 내에 사회적 책임 담당부서를 설치하는 등 사회적 책임 정책에 협력하는 모양새를 취하고 있다.


사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화두가 최근 들어 많이 등장하고 있다. 용어 자체는 27년 전 에드워드 프리만이 제기한 이해관계자 기업모형7)의 개념과 맞물려서 확산되었지만, 근년에 닥친 경제 불황, 금융위기, 실업 증대 사태들이 이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킨 것으로 여겨진다. 이제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은 학술적 이론8)에서부터 교황의 회칙(Papal Encyclical)9)으로 나타나고 있을 뿐 아니라, 국제 준칙인 ISO SR10)로 구체화되기에 이르고 있다. 우리나라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관심도 이런 추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국가 정책적으로 실현하려는 시도는 자칫 커다란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기에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나 이해관계자 기업모형의 이론적 배경이나 실증적 증거 그리고 실행방법의 문제에 대한 분석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므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의 개념적 한계를 중심으로 문제를 검토해 보기로 하자. 가장 심각한 오류는 기업을 의인화하는 데 있다. 기업은 기업활동을 조직하고 통제할 목적으로 편의상 부여한 법인이지 인격체가 아니다. 따라서 기업은 프리드먼의 지적대로 개인 인격체가 갖는 책임을 가질 수 없다. 이 점은 기부나 자선활동과 같이 개인 인격체가 갖는 비법적이나 도덕적 책무의 경우에 특히 그러하다. 기업의 책임은 규정된 법령을 준수하는 것이고, 이를 통해서만 사회정의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노동 관련법을 준수하여 미성년자를 고용하지 않고, 법적으로 금지된 부당해고를 하지 않는다든가, 회사자금을 불법적 용도로 전용하지 않아야 하며, 불법적으로 환경을 훼손하지 말아야 하는 등의 책임을 진다. 법령 위반은 기업의 영업활동 제한이나 벌금으로 제재를 받든지, 기업 대리인으로서 위반행위를 한 당사자가 처벌받아야 한다.


같은 논리로 기업에게 도덕적으로 바람직한 행위를 하도록 요구할 수 없다. 도덕성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유 선택으로 얻어지는 영역이므로 강요될 수 없으며, 사회적 도덕성은 개인의 도덕적 행위가 모여서 실현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이 자선이나 기부를 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으며, 기업 이윤을 배당받은 주주나 임직원의 개인 소득에서 나오는 것이 마땅하다. 경영진이 이들의 위임을 받고 자선행위를 한다는 주장은 위임의 범위를 확대 해석하는 월권행위이자 위탁자의 비용으로 경영진 자신의 위신을 높여주는 대리인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자선행위에 대한 선호가 보다 높은 이유는 적어도 수혜자의 입장에서 보면, 그것이 보다 간편하고 확실한 수혜방식이기 때문일 것이다.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란 개념 자체가 허구


사회적 책임론의 가장 중요한 항목의 하나는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다. 그 이론적 근거로서 흔히 이해관계자 기업모형이 거론된다. 즉 기업의 이윤은 노동자, 협력기업, 소비자, 지역사회와 같은 이해관계자가 일정부분 기여하여 얻어졌으므로 이를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초과이윤공유제나 기업의 사회문화 활동 장려론도 같은 논리의 연장선상에 있다. 언뜻 보면 그럴듯한 이 주장은 기업 이윤의 창출과정을 단순화한 비현실적 주장일 뿐 아니라, 기업의 실체를 개인 인격체와 혼동하는 데서 나온다. 영리적 기업의 이윤은 개인의 자선행위나 투자로 사회에 환원될 수밖에 없고, 이윤소득을 얻은 개인이 그런 행위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 보다 온당한 방법이다. 사실 ‘기업 이윤의 사회 환원’이란 개념 자체가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 소유자가 그만큼 이윤배당의 감소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으므로, 기업은 결국 사회 환원된 이윤부분을 가격인상이나 투자 감소를 통해 보충할 것이고, 그 결과는 소비자의 복지 감소나 투자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영리추구 자체를 문제 삼는 견해도 사회적 책임론의 근거로 이용된다. 베네딕트 교황의 회칙에서 나타나듯이 영리추구라는 좁은 목적에 한정된 기업관은 기업이 과도한 위험 감수나 단기적 이익에 집착하게 만들고, 인간이 보편적으로 느끼는 도덕적 책무를 소홀히 하도록 만든다고 한다. 그러나 영리추구적 기업활동이 개인의 도덕적 책무 실천에 방해가 된다는 견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 그런 기업활동의 이윤은 개인의 자선, 기부활동에 얼마든지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설계주의적 발상


영리추구적 기업은 하이에크가 말한 대로 영리추구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고안된 조직(made order)이며, 사회도덕과 같은 자생적 질서(spontaneous order)와는 다르다. 이런 영리적 기업은 가장 성공적이고 효율적인 조직이며, 오늘날 인류의 복지 향상에 크게 기여하였음은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영리적 기업이 사회복지에 기여하는 방식은 이윤추구를 통해 양질의 재화나 서비스를 싼 값으로 소비 대중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일반 대중이 기업으로 하여금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에 보다 주력하고, 사회적으로 보다 바람직한 활동을 하거나 도덕적 행위를 실천하기 원한다면 이런 영리적 기업의 기조를 흔들지 않고서도 가능하다. 예를 들어 만일 다수의 개인들이 특정 기업이 환경보호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를 원한다고 하자. 이 기업은 제품 가격을 일반 가격과 환경보호기금에 대한 기부금을 가산한 가격으로 나누어 판매하고, 조성된 기부금 적립액은 환경보호에 투자하면 된다.


또 다른 방식은 장애자 고용 유지와 같은 비영리적 목적의 기업을 설립하여 일반 대중으로부터 자본이나 노동의 참여를 유도하는 방법이다. 그런 비영리기업은 설립 취지에 맞게 이윤창출보다 고용 유지를 우선하는 방식으로 운영하면 된다. 사실 사회적 기업의 가장 순수한 형태는 바로 이런 기업들이며, 이들 비영리 기업이 영리추구적 기업과 공존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기업의 사회적 책임론은 기업의 조직형태를 비영리적 기업으로 획일화하려는 설계주의적 발상이며, 기본적으로 사회주의적 기업관에 근거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 제도화되거나 정치사회적 압력으로 추진된다면, 커다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극단적인 경우 사회적 책임의 실천 정도에 따라 착한 기업과 나쁜 기업이 나누어지고, 기업은 가치창조보다는 눈치 보기에 급급하며, 기업 경쟁력과 경제성장은 정체될 것이다. 경미한 경우 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을 실천하는 모양새를 갖추려 할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를 포함한 각국의 주요 기업들이 사회적 책임 실천은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된다. 아마도 이들 활동의 진정한 목적은 사회적 책임 실천이라기보다는 기업이미지 개선이나 홍보활동으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장대홍 (한림대학교 재무금융학과 교수, dtjaang@hally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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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Friedman, M., “The Social Responsibility of Business is to Increase its Profits,” New York Times Maga-

zine, Sep 13, 1970.

2) The Economist(2011. 1. 27) 기사 재인용

3) KDI는 반기업정서의 실체에 대한 조사연구 결과(2007. 5)를 발표한 바 있는데, 이 문단의 내용은 그 결과의 일

부를 근거로 요약한 것이다.

4) KDI 조사결과에서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반기업정서의 대상은 재벌이라는 응답이 91.5%(복수응답)로 가장 많

았고 이어 오너 경영인(76.0%), 부자(61.5%), 공기업(55.0%)의 순으로 나타난다.

5) 기업 일반에 대한 호감을 가진 응답자의 비율은 경제전문가 78.4%, 공무원 72.0%, 국회의원 68.6%, 기자

61.2%, 교사 49.6%, 시민단체 간부 47.0%, 일반국민 37.8%로 나타났다.

6) 기업의 최우선 목적으로는 경제전문가(82.2%), 기자(67.0%), 국회의원(52.9%)은 이윤창출이라는 대답이 가

장 많았지만 노조간부(74.0%), 시민단체 간부(53.0%), 공무원(50.0%), 교사(49.0%)는 이윤의 사회 환원을,

일반 국민은 근로자의 복지 향상(32.5%)을 가장 많이 꼽았다.

7) R Freeman, Strategic management: a stakeholder approach(Pitman 1984).

8) Porter, M.E. & Kramer, M.R., “Strategy and Society: The Link Between Competitive Advantage and Cor-

porate Social Responsibility,” Harvard Business Review, December 2006.

9) Pope Benedict XVI, third encyclical, (Charity in Truth), July 2009.

10) ISR SR(또는 ISR 26000)은 기업이 자율적 규제 형식으로 준수해야 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가이드라

인을 명시한 국제기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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