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노동시장과 노사관계가 중대한 변화에 직면해 있다. 노사관계 선진화의 두 가지 난제 중에 하나인 노동조합 전임자에 대한 사용자의 임금지급 문제가 올 7월부터 시행된 근로시간 면제제도(타임오프제)로 해결의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정부가 최근에 주창하고 있는 ‘친(親)서민 정책’은 노동시장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단절을 소통시키는 계기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노동시장을 보면 고용사정이 당초 예상보다 빠르게 개선되고 있다. 특히 이러한 변화를 정부 공공부문이 아니라 민간 기업부문이 주도하고 있다. 제조업 취업자 수가 10년 만에 최대 폭으로 증가했으며 보건복지와 사업지원 서비스업 등에서 취업자 수가 크게 증가했다. 그러나 청년 일자리 문제는 고용상황의 호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악화되고 있다. 경기가 회복되어도 노동시장에서 아웃사이더 근로자의 문제는 해결하기 쉽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소기업은 심각한 구인난에 처해 외국 인력에 의존하고 있지만 청년들은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하고 있다. 이 점 때문에 청년실업의 원인을 청년의 눈높이 등 의식문제에서 찾지만 실제로는 더 복잡하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복지 격차가 갈수록 커지는 반면, 중소기업에서 대기업으로 옮겨서 일하기는 매우 어렵다. 이러다보니 청년들은 중소기업에 취업하기보다 비정규직이라도 대기업 취업에 집착하거나 정부기관의 입사시험에 목을 매게 된다.
노사관계도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노사관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이 지대한 현대자동차 노사가 2년 연속 파업 없이 임금협상을 타결시켰다. 이번에도 노조 집행부를 반대하는 현장 노동조직은 잠정 합의안을 부결시키려고 했지만 다수의 조합원들은 이들의 비판이나 이념 논쟁에 휘둘리지 않고 잠정 합의안을 통과시킨 것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렇다고 바깥에서 현대차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한 것만은 아니다. 현대차의 합의가 역대 최고 수준이지만 이 잔치에 협력 중소기업이나 비정규직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이들은 성과를 창출하는 데 동일하게 기여를 했지만 공정하게 보상받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현대차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대기업이라면 거의 대부분의 회사가 봉착한 문제이다.
대기업과 협력 중소기업의 노사문제와 관련해 얼마 전 대법원은 중요한 판결을 내렸다.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관계에 대한 책임이 현대자동차에 있다는 것이다. 판결의 이유로 대법원은 현대차 소속의 정규직 근로자와 사내하청 기업 소속의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나란히 배치된 상태에서 일을 했고, 작업의 시작과 끝나는 시간, 작업의 물량과 방법 등을 현대차가 결정했다는 점을 들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대기업 정규직 노조와 중소기업 및 비정규직 근로자 사이에 놓여 있는 높은 장벽이 소득과 고용의 양극화를 유발한다는 점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사용자를 압박하고 사용자는 파업의 위협 때문에 인건비와 고용의 부담을 비정규직은 물론 하청이나 용역 등을 맡은 중소기업에 전가시키는 것은 강자가 약자의 희생을 요구하는 불공정한 행동이며 후진적인 노사관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정부는 경제위기 극복의 과실이 대기업과 부자들에게만 돌아가고 서민들은 체감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친(親)서민 정책’을 전면에 내세워 추진하고 나섰다. 아직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은 제시되지 않았지만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을 강조하고, 대기업이 일자리 창출과 투자 그리고 중소기업과의 상생ㆍ협력 문제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라고 촉구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정책은 노동시장의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노동시장구조의 핵심은 대기업 노사가 협력 중소기업의 이익을 고려하면서 임금 및 근로조건 그리고 고용이 결정되도록 만드는 데 있을 것이다. 또한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업이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어떻게 달성할 것인가이다. 정부는 대기업 노사가 시혜적인 차원에서 일시적으로 협력 중소기업이나 아웃사이더 근로자들의 이익을 배려하는 방식은 한계가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볼 때 노동 분야에서 정부의 친서민 정책은 공정성을 바탕으로 노동시장 시스템의 선진화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공정성은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신뢰와 협력을 촉진하고 동시에 갈등의 효과적인 예방과 해결을 뒷받침하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공정성은 주관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해관계 당사자들의 공감대를 모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당사자들이 스스로 공감대를 만드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에 정부는 공정성의 기준을 만드는 사회적 대화를 촉진하고 지원하는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대ㆍ중소기업의 협력은 장기적으로 볼 때 대기업 노사에게 이익이 되지만 단기적으로 양보가 필요하기 때문에 갈등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대기업이 성과를 만드는 데 참여한 협력 중소기업이 보상을 공정하게 받을 수 있고 이해관계가 상충되면 합리적으로 조정되는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그 핵심은 대기업 노사가 자신들의 이익만 충족하는 폐쇄적인 분배구조를 성과 창출에 참여한 당사자들도 공정하게 보상받을 수 있는 개방적인 분배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청년고용 문제의 해법도 공정노동 정책에 있다.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청년들이 고용의 기회를 공정하게 가지고 공정한 조건에서 경쟁하며, 자신의 노동에 대해서 공정하게 보상받을 수 있고, 정부의 지원이나 보호를 받는다면 그것도 공정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청년고용 문제해결의 핵심적인 역할은 중소기업이 맡을 수밖에 없다면 중소기업의 고용창출능력을 높이기 위한 정책도 공정성의 토대 위에 서야 한다.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업기피를 완화하기 위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가 줄어들도록 대ㆍ중소기업의 협력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정부는 대ㆍ중소기업의 협력을 자금문제에 집중했는데 직원의 채용 및 훈련, 경력개발 등 인적자원의 개발과 활용에 있어서 동반자 관계를 발전시키는 데 눈을 돌리면서 이를 뒷받침하는 고용 관련 법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중소기업 스스로 청년들에게 매력 있는 직장을 만들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중소기업의 우수 인재 확보에 필수적인 파격적인 보상을 용이하게 하는 시스템 구축이 필수적이다. 중소기업 인력난은 지불능력 저하에 기인하지만 기술개발이나 마케팅 등을 담당할 핵심 인재의 부족이 지불능력 문제를 야기한다는 데 유념해야 할 것이다. 이 점에서 정부는 종업원주주제도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종업원주주제도는 대기업을 염두에 두었지만 중소기업이 이를 적극 활용할 수 있도록 중소기업의 지배구조정책과 우리사주제도의 개선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withkim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