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고용문제는 경기변동에 따라 일시적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것으로 빈곤화와 성장잠재력의 둔화 등을 유발하고 인구구조 위기, 복지 위기, 재정 위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대 정부마다 고용문제의 중요성을 지적해 왔지만 임기응변적인 대책에 치우치면서 문제해결의 시간을 낭비하고 사태를 악화시켰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1980년대 말부터 지난 20여 년 동안 크게 보면 두 가지 충격에 직면해 왔다. 1990년대 초반부터 본격화된 세계화라는 외부의 ‘역풍’에 휩싸였고, 한편으로 1980년대 초반부터 진행된 강성 노동운동과 대립적 노사관계라는 내부의 혼란을 경험하였다. 세계화는 노동수요 측면에, 그리고 노동운동은 노동공급 측면에서 큰 충격을 주면서 고용 없는 성장과 일자리 불안을 야기했다.
구조적인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강력하면서도 실천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모형과 질서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모형과 시스템을 거시적 관점에서 설정하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정책수단과 집행 메커니즘을 미시적 관점에서 만들어야 할 것이다.
새로운 노동시장과 노사관계 모형 및 시스템은 수출과 제조업의 고용 유발효과가 감소하는 데다 서비스업의 고용창출도 미진한 문제, 경제성장을 하더라도 고용이 늘지 않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대기업 부문은 심각한 일자리 부족 문제에 처한 반면, 중소기업 부문은 구인난에 처해 있는 모순, 그리고 일을 하고 싶어 하는 청년ㆍ여성ㆍ준고령자는 많지만 취업의 기회는 적은 모순을 타개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과제는 노동시장과 노사관계의 모형을 만든다고 완전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세계화와 노동운동에 따른 노동시장의 혼란을 수습할 수 있는 새로운 질서와 게임의 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당사자들은 그 나름대로 세계화와 노동운동에 대해 합리적으로 대응했다고 볼 수 있지만 공동체 전체로 보면 소득양극화 등의 문제를 야기했다.
보호가 필요한 영역에서 과도한 경쟁이, 경쟁해야 하는 영역은 지나친 보호가, 그리고 정작 지원을 받아야 하는 영역은 소외되는 모순을 방치하는 한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어렵다. 이러한 문제는 기득권의 남용, 남성 위주의 고용 관행, 불합리한 취업 장벽, 편의주의적 법제도 운영 등에 기인하며 공정성 확보 차원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고용문제의 해법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현실에 맞지 않았다. 세계화의 역풍을 해결하기 위해서 노동계는 고용보호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반면, 재계는 고용불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용유연화가 필수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고용보호 강화조치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은 확산되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벌어졌다.
‘고용보호 vs 고용유연화’의 논쟁이 고용문제의 해결에 있어서 큰 의미를 갖지 못했던 이유는 논쟁이 이념적으로 치우쳤고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특수성과 현장에 있는 노사의 전략적 대응을 간과한 데 있다. 마찬가지로 ‘정규직 vs 비정규직’의 이분적인 논쟁도 비정규직 갈등을 고조시켰을 뿐 실효성 있는 고용문제의 해법을 찾지 못했다.
고용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고용보호 vs 고용유연화’와 ‘정규직 vs 비정규직’의 논쟁을 넘어서서 우리 현실에 맞는 새로운 노동시장의 모형과 새로운 노동시장 질서를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새로운 모형의 해답은 경제성장과 생산성, 그리고 고용률의 관계에서 찾을 수 있고 새로운 질서의 해답은 노동시장에서 경쟁과 보호, 그리고 지원 및 규제의 원리가 공정하게 작동하도록 만드는 데 있다.
고용의 관점에서 볼 때 1인당 국민소득은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높아지고 고용률이 올라가면 자연히 증가한다. 생산성이 높아지면 임금 수준이 높아지고 이러한 사람의 취업이 증가하면서 경제도 성장한다. 선진국일수록 생산성이 높고 고용률도 높은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임금을 결정하는 근로자들의 생산성이 높아지면 개별 기업은 생산비용을 낮출 수 있게 되므로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낮추고 생산량을 늘리게 되며 결국 채용이 늘어나 경제 전반의 고용률도 자연히 올라가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가 일자리를 늘리는 경제성장을 하려면 사람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인적자원 주도형 경제성장 모형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인적자원 주도형 경제성장 전략은 고용 없는 성장에서 고용창출을 동반하는 성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방안이다. 내수부문의 생산성을 높여 수출부문과의 격차를 줄이고 수출ㆍ내수의 불균형 성장을 극복해 내수부문의 고용창출능력을 제고하는 방안이다. 또한 수출부문은 경제의 변동성이 더 커져 경기변동에 따른 노동력 투입의 조절방법으로 근로시간 조절에 의존하게 되므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가 많은 내수부문의 고용흡수력을 높이는 방안이다.
인적자원 주도형 경제성장 전략은 지금까지 추구해 왔던 수출 중심의 경제성장 전략과 배치되는 것은 아니다. 기존의 전략에서 벗어나지 않는 상황에서 고용을 늘리기 위해서는 불합리한 노동관행을 개선해야 한다. 고용형태를 다양화시켜 근로자들의 선택범위를 확대해 취업 기회를 늘려야 한다. 노사관계 불안 때문에 기업이 고용을 늘리는 데 인색하고 경기가 좋아져도 근로시간을 늘리는 방식으로 대응한 반면, 근로자들의 생산성을 높이는 문제에 대해서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러한 관행을 바꾸는 것이 인적자원 주도형 경제성장 전략의 성패를 가르게 될 것이다.
인적자원 주도형 경제성장 모형의 구축과 함께 노동시장의 질서도 개선되어야 한다. 그것은 고용률을 높이고 생산성 제고에 기여하는 것이어야 한다. 노동시장에 새로 진입하는 사람들의 고용기회가 공정해야 하고, 채용과 승진 등을 위한 경쟁이 공정한 조건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며, 자신의 노동에 대해서 공정하게 보상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 또한 시장기능이 제대로 작동하도록 정부의 보호와 지원도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는 노동정책의 목표를 생산성 향상과 고용률 제고에 두고 노동시장의 공정질서를 확립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법으로 고용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발상을 버리고 노사 당사자들이 스스로 생산성을 높이는 관행을 만들도록 강력히 유도해야 한다. 이 점에서 정부는 고용 관련 통계를 대폭 보완해 노동시장의 변화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정부 지원을 받는 사람들의 현실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듦으로써 리더십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withkim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