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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전임자 임금지급 문제의 본질


12월 4일 한국노총, 경총 및 노동부는 노동조합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와 관련하여 노사정합의안을 도출하였다. 이 합의안의 본질은 ‘노동조합 전임자의 급여지급은 금지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 사업장 별로 상이한 여건을 중시하고 중소기업의 합리적인 노조활동을 보호하기 위해서 노사 교섭ㆍ협의, 고충처리, 산업안전 등과 관련된 활동에 대해서는 사업장 규모별로 적정한 수준의 근로시간 면제제도(time-off)를 운영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외규정을 허용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합의의 기본정신이 갈수록 퇴색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한나라당은 지난 8일 “노사정 합의의 정신을 담은『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제출한다"면서 최소한의 예외규정으로 허용되었던 근로시간 면제제도의 범위에 ‘통상적인 노조 관리 업무’라는 애매모호한 조항을 넣어 해석의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더구나 한국노총은 통상적인 노조 관리 업무를 ‘통상적인 노조업무’라고 고쳐 면제범위에 상급단체 활동이나 교육 등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수정의견을 국회에 제출하였다. 여기에 추가로 근로시간 면제제도 범위를 초과하여 임금을 지급하거나 수령할 경우 처벌한다는 조항도 삭제할 것을 요구함으로써 노사정 합의의 기본정신을 10일 만에 완전히 무력화시켰다.


필자는 이처럼 노사정 합의의 기본정신이 퇴색해 가는 과정을 보면서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정상화를 갈망하는 한 사람으로서 무력감을 느낀다. 더구나 한나라당은 ‘통상적 노조관리업무’란 표현 앞에 ‘대통령령이 정하는 범위 내에서’라는 단서 조항이 있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에서 근로시간 면제제도의 제어가 가능하다는 변명을 하고 있다. 오해하지 말라는 얘기이다. 과연 우리가 그간 법조항을 오해했기 때문에 노동조합 전임자 급여 지급 금지를 13년간이나 유예해 왔는가? 오히려 노동조합 전임자의 기능을 오해했기 때문에 생긴 일로 여겨진다.


원래 노동조합 전임자 본연의 기능은 노사 간 이견을 조율하고 협력적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여 노사관계 안정화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런 기능을 정상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소수보다는 근로자 전체의 이익을 대변해야하며 또한 자주성이 확립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프랑스ㆍ독일ㆍ영국과 같은 유럽 국가의 노동조합은 재정부분과 관련하여 사용자측에 금전적 지원을 요구한 사례가 없으며 사용자 역시 노동조합을 지원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우리나라에는 오래전부터 기업에 협조적인 노동조합에 대해 비공식적으로 편의를 제공하고 노조전임자를 인정하는 관례가 있었다. 이는 1953년 제정된 노조법이 기업별 노조를 강제하면서 노동조합의 임원을 해당 기업의 직원으로 제한했기 때문에 생성된 노조와 사용자간의 비공식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타협이었다. 그러나 1987년 이후 전국적 단위의 노동운동이 본격화되면서 노동조합 전임자에 대한 급여 및 각종 편의 제공은 마치 투쟁을 통해 획득한 전리품처럼 인식되면서 점차 공식적인 권리로 인정되기 시작했다.1) 결과적으로 이러한 공식적 전리품을 획득ㆍ유지하기 위해 노조 전임자들은 보다 정치적이고 선동적인 선택을 하게 되고 투쟁일변도의 노선을 걷게 된 것이다.

본연의 기능을 상실한 노동조합 전임자의 부작용은 곳곳에서 나타난다. 1138개 사업체 패널자료를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노조전임자가 있는 사업장, 특히 중공업의 경우 파업 확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노조 전임자가 노사 간의 이견을 조율하여 노사관계 안정화에 기여한다는 주장과는 달리 노동조합 전임자는 노사 간 대립을 야기한다는 의미이다. 즉 우리나라 노동조합 전임자는 더 이상 전임자로서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의 배경에는 전임자들을 투쟁에 치중하게 만든 전임자 임금 지급이라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비정상적 노사관계의 산물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노동조합 전임자는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야 하며, 전임자에 대한 급여지급은 금지되어야 한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에서는 이 문제의 본질을 잘못 이해하고 있으며 근로시간 면제제도의 적용범위를 놓고 줄다리기를 하고 있는 듯하다. 근로시간 면제제도는 노동조합 전임자 급여지급 금지라는 기본적인 원칙을 원만히 달성하기 위한 도구에 불과하며 그 범위도 명확하고 제한적이어야 한다. 이는 정치적 논리를 통해 타협할 사항이 아니다. 따라서 노사정 대표들은 더 이상 원칙을 훼손하는 정치적 담합을 중단하고 노동조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의 원칙적 시행을 위한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변양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conbyu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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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최영기(2009) “복수노조ㆍ전임자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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