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 불황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신경제성장 동력으로서 선진국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도 저탄소 녹색성장을 위한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환경위기를 극복하고 미국 발 금융 불안으로 인한 세계적인 경제위기를 동시에 타개하기 위한 수단으로 나왔다는 점에서 그 정책적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정부는 지난 7월 발표한 ‘녹색투자 활성화를 위한 자금유입체계 구축방안’의 후속조치 일환으로 녹색인증제를 실시할 것을 발표한 바 있다. 이 방안은 정부안으로 입안되어 현재 국회 기후변화대책특별위원회를 통과한 ‘저탄소 녹색성장 기본법안’에 포함된 상태다.
녹색인증제는 녹색산업 지원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녹색기술, 녹색사업, 녹색전문기업이 녹색 유망 분야인지 여부를 ‘확인’해 줌으로써 민간의 자발적인 투자를 유도하려는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1) 녹색인증기준을 보면 녹색기술은 기술성ㆍ시장성ㆍ녹색성을 평가하여 인증하고, 녹색사업은 녹색기술 활용성, 환경 기대효과, 사업타당성을 평가하여 인증하는 한편, 녹색전문기업의 경우 기술혁신을 주도하는 첨단기술기업의 기준을 준용하여 녹색기술에 의한 매출비중이 총매출액의 30% 이상인 사업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인증 평가업무는 기술 분야별 전문성을 갖춘 공공기관이 수행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녹색인증제와 벤처기업확인제도: 유사성과 차이
김대중 정부가 외환위기 극복과정에서 성장과 안정의 새로운 원천으로서 벤처기업의 육성을 주도적으로 추진하였다면, 이번 정부는 금융위기 이후에 녹색산업을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삼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벤처기업육성특별법을 필두로 법제도적 지원체계를 완비하고 육성대상을 지정하여 적극적으로 벤처기업 육성에 나섰다. 벤처기업육성특별법에 의해 정부가 벤처기업을 선별ㆍ지정하고 벤처기업 및 코스닥시장 육성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였다. 그 결과 제대로 된 벤처기업도 늘었지만 ‘무늬만 벤처’인 기업이 양산되었고 ‘벤처버블’을 초래하여 국민경제적으로 부정적인 효과가 매우 컸다.
이번 정부가 추진하는 녹색인증제는 벤처기업지정제도와 그 운영방법에서 일부 차이가 있지만 그 내용 면에서는 상당히 유사하다.
첫째, 녹색인증제는 정부ㆍ관련기관이 녹색기술ㆍ녹색기업ㆍ녹색전문기업을 ‘확인’하는 제도라는 점이다. 벤처기업육성특별법에서도 법이 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벤처기업을 확인하는 제도를 두고 있었는데 녹색인증제도 정부와 관련기관이 확인하는 제도이다.
둘째, 녹색인증 기준은 자의적이고 모호하다. 예컨대 녹색기술은 기술성(40점), 녹색성(30점)과 함께 시장성(30점)을 평가하여 70점 이상이면 녹색기술로 인증하도록 되어 있다. 과거 벤처기업확인제도는 벤처기업육성특별법에 나타난 정의에 부합하면 벤처기업 인증을 받도록 하여 벤처성이 부족한 기업이 벤처기업으로 지정되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셋째, 녹색인증에 따른 지원방법은 벤처기업확인제도의 운영방법과는 달리 간접적인 방법을 채택하고 있다. 확인기준에 따라 인증된 녹색기술, 사업기업에 대해서는 이에 투자하는 금융상품에 세제지원을 함으로써 민간자금을 확보하고, 녹색기술ㆍ사업ㆍ기업의 R&Dㆍ마케팅ㆍ수출 등의 지원을 우대하도록 하고 있다. 벤처기업육성특별법에서는 정부가 벤처기업을 지정·등록하도록 하고 벤처기업으로 등록된 기업들에 대하여 조세ㆍ금융ㆍ입지ㆍ정보 등의 측면에서 직접적인 정책적 혜택을 부여하였다.
녹색인증제와 벤처기업확인제는 지원방식에 있어서 벤처기업 지원이 직접적이었다면 녹색산업 지원은 간접적이라는 차이가 있다. 하지만 금융시장으로 모아진 자금이 녹색산업에 투자되는 과정에서 정부의 낙관적인 시그널 제공으로 인해 과거 벤처산업에서처럼 이 부문에 과도한 자금 공급과 투자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녹색인증제로 녹색기술ㆍ사업ㆍ기업을 확인하는 데 따르는 부작용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이 제도를 계속 밀고 나가기보다는 시장중심 시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성장잠재력 키우는 시장친화적인 녹색정책이 필요
향후 녹색정책은 녹색산업이 당면한 애로요인을 해소하거나 지원책을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녹색산업의 성장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장기적인 안목의 정책대응이 필요하다.
첫째, 부작용의 우려가 있는 인증제를 통해 녹색사업ㆍ기술ㆍ기업을 확인하는 제도가 필요한지 의문이다. 정부는 상용화 가능성, 미래주력 수출품목 예상, 중소기업의 활성화 및 고용창출 등 전후방연관효과, 과감한 초기투자로 가격하락 가능성 등을 기준으로 삼아 핵심 녹색산업을 ‘선택하여 지원’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녹색인증제의 대상은 그 지정요건으로 보아 대체로 기술집약도가 높은 고도 녹색기술과 미래에 성장이 기대되는 녹색기술ㆍ사업과 관련된 중소ㆍ중견기업이 대부분이라고 볼 수 있다. 향후 우리를 먹여 살릴 녹색산업을 활성화시키려는 정부의 정책의지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창출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든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시장이 녹색산업에 대해 충분한 투자자금을 제공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이는 경쟁력 있는 녹색기업ㆍ사업ㆍ기술을 선별하는 일을 정부나 관련기관이 시장보다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정부가 유망한 녹색산업을 선별하고 녹색투자에 개입하는 것보다 자본시장이나 벤처캐피탈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본시장ㆍ코스닥시장 및 벤처캐피탈 시장은 부분적으로 제도개선의 여지는 있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이미 양적ㆍ질적으로 많이 성장하여 유망 녹색기업을 선별하고 자금을 제공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녹색산업은 기술개발과 산업화에 불확실성이 높고 회임기간이 긴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특성을 가지고 있는 녹색기술ㆍ사업ㆍ기업에 투자하고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확실하고 위험한 사업을 선별하여 투자를 하고 자금공급이 이루어지게 하는 자본시장이나 벤처캐피탈이 보다 적합하다. 은행은 일반적으로 위험회피적인 성향이 강하고 대부분의 은행대출은 현금흐름이 안정적인 기존의 기업으로 자금을 공급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담보나 인증서만 요구하는 경직된 금융으로는 미래의 성장동력 기업을 활성화하는 데 한계가 있다.
셋째, 정부는 녹색기업이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하는 환경 및 제도 정비와 함께 관련 인프라 구축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녹색기업이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과 벤처캐피탈 시장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강화하기 위한 제도적 보완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또한 녹색산업에서 투자자-녹색기업-금융기관이나 자본시장 간 정보비대칭으로 발생하는 자금제약을 완화할 수 있도록 코스닥시장의 공시제도를 강화하고 국내외 전문인력을 확충하는 등 인프라 구축에 힘써야 한다.
넷째, 기술경쟁력 확보를 위한 기초 연구개발 기반을 제공하고 활발한 녹색기업의 창업환경을 마련하는 일은 정부의 몫이다. 정부는 녹색산업에 있어서 R&D단계, 상용화단계, 성장단계, 성숙단계 등 발전단계별로 맞춤형 자금유입체계를 설계하고 있다. 정부는 시장에서 충분히 주목받지 못하는 리스크가 큰 녹색산업 관련 기초기술에 대해서는 과감한 지원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 녹색산업의 성장이 구체화되는 과정에서 새로운 기업의 창업과 투자를 제한할 수 있는 규제는 가능한 한 최소화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병기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lbk@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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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녹색인증제 도입방안』, 공청회 자료(2009. 10. 8)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