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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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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이 잘 되면 대학교수의 삶이 풍요로워질까?


얼마 전 매일경제신문사에서 실시한 국민 대기업인식조사에서 대기업의 국부창출 기여에는 66.6%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사회적 약자층 지원에는 6.8%만이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대기업이 잘 되어야 나의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설문에 응답자의 17%만 ‘그렇다’고 대답했고, 44%는 ‘아니다’, 그리고 39%는 ‘잘 모르겠다’라고 대답했다. 이러한 설문 응답 결과를 신문은 “대기업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긍정적인 기여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국민 개개인의 삶에는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고 풀이했다.1)


대기업, 예컨대 “삼성전자가 잘 되면 나의 삶이 풍요로워질까?” 경제학자인 필자에게 물어보았어도 대답은 ‘아니다’였을 것 같다. 삼성전자가 잘 되어 이익이 몇 십 조원 발생하는 것과 나의 삶과의 인과관계는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대학교수가 설문에 응답하기 위해 삼성전자의 이익과 대학교수의 삶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론해 본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지난 해 삼성전자 이익이 몇 십조 원 발생하면 분명히 성과급을 받게 되는 삼성전자 임직원들을 비롯해서 주가 상승으로 자본이득을 얻게 될 삼성전자 주식에 투자한 사람들의 삶이 풍요로워질 것이다. 물론 삼성전자에 부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했던 회사 임직원들의 삶도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그로 인해 그런 사람들이 소비하는 상품이나 서비스 공급자들의 삶도 풍요로워졌을 것이다. 또 그로 인해 누구의 삶이 풍요로워지고..를 수 십 단계 계속한 다음에야 “그러므로 대학교수의 삶도 풍요로워졌다”고 말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를 것이다. 예컨대 “대학생들의 봄 학기 등록률이 증가해서 대학 등록금 수입이 증가하고, 그 결과 교수 연봉도 증가해서 대학교수의 삶이 풍요로워졌다”고 말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삼성전자 이익과 대학교수의 삶 사이의 인과관계는 너무 간접적이고 우회적이다. 그러니 “대기업이 잘 되어야 나의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설문에 불과 17%만이 ‘그렇다’라고 대답한 것은 오히려 예상 외로 높은 수치처럼 보인다.


일부 부유층만 향유하던 재화와 서비스의 보편화가 기업의 사회적 공헌


그렇다면 대기업이 잘 되는 것과 국민들의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기업의 가장 큰 사회적 공헌은 얼마나 많은 국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해주었는가로 가늠한다.


우리나라 휴대폰의 역사는 이동통신서비스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카폰으로부터 시작한다. 1984년에 출시된 모토로라 카폰 가격은 300만원이었고 설치비는 88만원, 채권 구입액은 20만원이었다. 그러므로 카폰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400만원의 비용을 부담해야 했다. 당시 현대에서 출시한 최신식 포니2 가격이 220만원이었으니 ‘마이카’ 2대 값과 맞먹는 가격이었다. 당시 카폰을 이용한 사람은 2,700여 명이었다고 하니, 정말 부자 가운데 큰 부자들만 이용할 수 있었던 문명의 이기였음에 틀림없다.2) 그 이후 본격적으로 자동차 밖으로도 가지고 나갈 수 있는 휴대폰이 나온 것은 1988년에 출시되었던 모토로라 ‘벽돌폰’이었다. 무게는 1,300g 이었고, 길이는 23센티나 되었다. 그 당시 가격이 400만원이었으니, 지난 20여 년 간 소비자물가지수가 약 2.5배 이상 상승한 것을 감안하면 지금 돈으로 약 1,000만원을 지불해야 구입할 수 있었던 정말 부자들도 갖기 어려웠던 것이 휴대폰이었다.3)


그로부터 30여년이 지난 지금 휴대폰 품질은 그 당시와 비교할 때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획기적으로 개선되었지만, 가격은 수 천만 원이 아니라 100만 원 이하로 하락하였다. 구입조건에 따라 대학생 한 달 용돈으로도 구입할 수 있는 정도로 하락하였다. 이는 마치 휴대폰 구입자들에게 기업이 900만 원 이상의 덤 또는 보너스를 지급한 것과 같다. 오늘 날 이동통신 가입자는 약 5,700만 명이라 하니4) 이제는 극빈층을 제외하고는 초등학생을 포함해서 거의 전 국민이 이 문명의 이기를 향유하게 되었다.


휴대폰 제조 기업뿐만 아니라 가전제품 제조 기업들도 전기 세탁기, 전기 밥솥, 전기 냉장고 등 가전제품을 거의 모든 가정에서 구비할 수 있을 만큼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구입할 수 있게 만들어 여성들을 부엌의 질곡에서 해방시켰다. 자동차 제조 기업들도 예전에는 비록 카폰만큼은 비싸지 않았지만 서민들은 언감생심 꿈도 꾸기 어려웠던 ‘마이 카’(요즈음에는 ‘마이 카 샀다’라고 말하지 않고 그냥 ‘차 샀다’고 말한다.)를 이제는 대학졸업 후 갓 취직한 사회초년생들도 몇 년 후면 구입(비록 할부 구입방식이겠지만)할 수 있을 만큼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제공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일부 부유층만 향유할 수 있었던 재화나 서비스를 사회적 약자를 포함한 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향유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기업의 가장 큰 사회적 공헌이고, 그것이 기업의 존재 이유이며, 기업가의 보람이며 자랑이고, 기업가들이 존경받아야 할 근거다. 이러한 공헌을 돈으로 따져보면 천문학적 숫자가 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회적 공헌에 대한 대가로 막대한 이익을 얻은 결과 “대기업이 잘 되었다” 그러므로 “대기업이 잘 되어야 나의 삶이 풍요로워진다”가 아니라 “나의 삶이 풍요로워져야 대기업이 잘 된다”가 맞는 말이다.


손정식 (한양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jsonny@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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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기업 국부창출엔 기여했지만 사회적 약자층 지원엔 인색”, 매일경제신문 (2012. 2. 9)

2) “휴대폰의 진화.” 한국경제신문 (2009. 4. 28)

3) “성년 맞은 대한민국 휴대폰.” 한국경제신문 (2008. 6. 30)

4) “1984년 카폰 가격 400만원…현대차 '포니2'의 두배.” 한국경제신문 (2011. 12.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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