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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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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입 수능시험도 없애야 할 규제다


해마다 11월이면 전국적인 행사가 하나 치러진다. 일반인과 공무원의 출근 시간이 1시간 늦춰지고 심지어 듣기능력 평가시간에는 비행기의 이착륙이 금지되기도 한다. 바로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을 치르는 날이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대선보다도 중요한 사안이다. 문제는 이러한 전국 규모의 전 국민적 행사인 수능이 대학의 자율적인 입학전형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국가 주도로 치러진다는 데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가 주관하는 이 시험의 난이도와 출제경향에 따라 전국의 고등학교 수업이 결정적인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수능은 대학 자율적 권한 잠식의 유산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수능시험의 현황을 보자. 지난 12일 치러진 금년 수능의 경우, 지원자 67만7,829명 중 63만7,660명이 응시하였으며, 9만135명 감독관이 이들의 시험을 감독하였다. 수험생이 고사장에 제대로 가기 위해 동원된 경찰관이 1만5천 명, 순찰차 등의 장비가 3,227대였다고 한다. 이렇게 수능시험에 동원되는 범국가적으로 인적ㆍ물적 자원이 교육적으로나 국익 면에서 유익한 것인가 하면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큰 문제이며, 나아가서는 불행한 일이다. 왜냐하면 동원된 범국가적 자원에 비하여 이 시험이 가져다주는 교육적 효과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으며, 정작 이 시험이 왜 치러지는지 그 정체성부터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우선 수능시험의 유래부터 보자. 기존에 대학별로 해오던 입학전형을 1969년부터 국가가 주관하여 ‘예비고사’가 도입된 것이 수능 탄생의 기원이다. 이 ‘예비고사’가 대학입학 전형의 ‘예비’적인 평가에서 1970년대 중반부터 당시 문교부의 ‘권고(?)’로 대학별 ‘본고사’에 일정비율로 반영되기 시작하였다. 국가주도의 전국적인 ‘일제고사’가 대학의 자율적인 전형에 슬금슬금 간섭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필자가 입학 전형을 치른 1977학년도 서울대의 경우 본고사 과목(국어, 영어, 수학, 사회 또는 과학) 총점 430점에 ‘예비고사’ 총점(340점)의 40%인 136점이 합산되어 총 566점으로 하여 신입생을 선발하였다. 이런 방식은 사실 수험생에게는 이중 부담이 되었다.

이렇게 대학의 자율적인 전형 권한을 야금야금 잠식하던 ‘예비고사’가 1980년 7월 30일 신군부에 의하여 ‘본고사’가 폐지되고 그 자리에 ‘예비고사’가 대학입학 전형의 안방을 차지하면서 ‘예비’ 아닌 본령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후 ‘대학 자율의 꽃’이라 할 수 있는 독자적인 입학 전형 권한이 사라지고 국가 주도의 고사가 당락에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이다. 이 고사는 1994년에 와서 오늘날의 명칭을 갖게 된다. 이렇게 보면 수능시험은 국가 독점의 시도와 반민주적 절차에 의하여 확립된 것이다. 이른바 민주화 세력이 대학 자율의 핵인 본고사를 반대하고 수능시험을 지지하는 현상은 자칭 민주세력이 군부독재가 만든 비민주적인 대학전형을 열렬히 지지하는 꼴이다.

현행 대입 수능시험은 지나친 국가 개입

그렇다면 수능시험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첫째, 국가 주도의 시험으로 대학의 선발 권한을 침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 인재 육성의 마지막 보루인 대학마저 선발권을 행사하지 못하는 것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된 수능의 ‘기여(?)’ 덕이다. 이미 평준화로 인하여 고등학교 입학전형에서 단위학교의 선발권이 박탈된 데 이어 대학의 선발권이 크게 훼손된 상황이 다시 연출되는 것이다. 글로벌 사회에 국가를 이끌어갈 다양한 인재를 선발해야 하는데, 이것이 신입생 선발과정에서부터 ‘좌절’되는 것이다. 국가 주도의 ‘획일적인’ 수능시험 때문이다.

둘째, 수능시험이 국가 주도인 만큼 인위적 조정 내지는 인위적 강제가 개입하게 된다. 늘 수능시험이 치러진 날 신문이나 방송에서 떠들어대는 “예년 수준”이라는 말 등이 이를 입증한다. ‘언어영역은 예년 수준이고, 수리영역은 어려웠고 …’ 등의 표현은 물론, 수능 당일 날 전 국민을 상대로 하는 출제위원장의 출제경향과 난이도 조정 발표는 국가개입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다. 왜 대학 신입생들의 학력 수준이 매번 예년 수준이어야 하는가? 이는 국가 주도로 교육력 증진을 가로막거나 강제조정하고 있다는 반증이거나, 예년 수준으로 꿰맞출 만큼 고등학교 교육이 실패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자인하는 것이다.

셋째, 대학 자율의 꽃인 본고사를 금지하고(이른바 ‘3불 정책’의 하나) 이를 대신하는 국가 주도의 수능시험의 명분이 사교육 억제와 공교육 정상화라고 하는데, 국가 개입으로 이를 실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발상이 이제는 측은하기까지 하다. 국가 주도로 하다 보니 다양한 전형을 할 수 없고, 그러다 보니 수능에 전력을 다하게 된다는 점에서 보면 오히려 사교육을 조장하는 꼴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더욱이 서민층의 사교육비 부담을 줄인다고 도입한 것이 EBS 강의내용에서 수능시험 문제를 출제하는 것이란다. 이 문제는 두 가지 점에서 잘못된 것이다. 하나는 EBS의 설립목적과 원래 방송 의도를 수능시험을 위한 보조수단으로 전락시킨 것이다. EBS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를 수능시험을 지지하는 교육당국자들에게 묻고 싶다. 다른 하나는 설사 EBS를 이러한 목적에 활용하는 것이 옳다고 인정한다고 해도 사교육비 경감에 기여했는가 하면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오히려 EBS 강의를 중심으로 한 사교육이 성행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교육당국이 또 다른 사교육을 조장하거나 탄생시킨 셈이다. 게다가 EBS 강의 교재를 둘러싼 비리와 잡음도 우리는 경험한 바 있다.

넷째, 수능시험의 성격이 그 이름에 걸맞는 기능을 하는지를 확인할 수 없다. 교육제도는 상구형(上構型)과 하구형(下構型)이 있다.1) 대학입학 수학능력시험이라고 하면, 대학에서 수학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측정하는 평가가 되어야 하므로 당연히 하구형 교육제도의 이념으로 해야 한다. 그러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출제위원장이 매년 발표하는 출제경향과 내용은 늘 ‘고등학교 3년 교육과정 내에서’, ‘고등학교 교과서 내용 중에서’ 아니면 ‘고등학교 수업을 충실히 들은 사람이라면’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을 보면, 이 시험은 상구형에 맞추어져 있다. 물론 대학수학능력과 고등학교 수업성취도가 어느 정도 상관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의 수능시험은 대학이 원하는 수학능력을 측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선진국에서 시행하는 수학능력시험(예컨대, SAT)과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이 말은 결국 이 시험이 대학의 선발권을 훼손하고 침해하고 있다는 것을 다시 증명하는 것이다.

대입 전형, 민간 자율에 맡겨라

그렇다면 수능시험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 아니다. 이 질문은 우리나라 대학입학 전형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가로 되어야 한다. 굳이 수능시험과 관련하여 본다면 지향해야 할 대입 전형방식 또는 선발방식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첫째, 수능시험이 객관적이고 타당한 대학입학 전형자료 확보라는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한다면 수능시험을 민간에 이양해야 한다. 국가가 주도하거나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대학 연합체가 하든, 아니면 능력 있는 사설학원이 하든 간에 일체를 민간에 맡겨야 한다. 그러면 여러 가지 전형방식이 나올 것이고, 대학은 이 중에서 선택여부와 적용비중을 정하면 된다.

둘째, 대학입학 전형방식의 결정을 각 대학의 완전자율에 두어야 한다. 민간 주도의 수능점수를 택하든 말든, 본고사를 보든 말든, 내신 성적을 반영하든 말든, 모든 사항을 각 대학의 자율에 맡겨야 한다. 심지어 신입생 선발을 수험생의 외모를 기준으로 하든, 일본의 어느 기업처럼 밥을 빨리 먹는 사람으로 뽑든, 무주택자 자녀로 하든, 그러한 일체 사항은 각 대학의 건학이념과 운영원리에 맡겨야 한다.

셋째, 대학입학 전형 유형의 다양화와 여러 번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유형의 다양화는 앞서 지적한 사항이고, 다양한 유형의 전형방식이 존재하는 만큼 응시기회도 연중에 여러 번 주는 방식도 허용해야 한다. 이와 함께 모집 시기도 완전자율에 맡겨야 한다. 지금처럼 수시모집이라고 해놓고서는 교육당국이 모집 시기의 구체적 방법 등을 은근히 간섭해서도 안 된다.

넷째, 수능 대신에 자율을 준다고 하고 보이지 않는 압력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서는 안 된다. 대표적인 것으로 요즈음 대학가에서 유행하는 ‘대학입학사정관제’를 은근히 강요하는 것을 삼가야 한다.2) 대학에서 이 제도를 채택하지 않으면 보조금이나 기타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나 이 제도를 하지 않으면 마치 뒤떨어지는 대학인 양 분위기를 유도해서는 신입생 선발에 관한 대학 자율은 물 건너 간 것이다.

수능 개편은 대학교육 경쟁력 제고로 이어져

무엇보다도 현행 수능시험의 폐지 내지는 전면적인 개편으로 신입생 선발전형에서 대학 자율이 실현되면 좋은 결과가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첫째, 대학교육의 책무성이 획기적으로 제고된다. 뽑고 싶은 사람 뽑아 놓고 손 놓을 대학이 어디 있겠는가? 둘째, 글로벌 시대의 다양한 교육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 셋째, 대학 교육의 질과 수준이 높아진다. 납세자인 일반국민, 교육소비자인 기업, 학부모의 엄정한 평가가 있기 때문이다. 넷째, 대학교육의 경쟁력이 제고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우리 교육이 선진화되는 것이다. 또 수백억 원의 수능예산이 절약된다.

김정래 (부산교육대학교 교수/교육학, duke77@bnue.ac.kr)

---------------------------------------------------------------------------------------------------1) 상구형은 상급학교 입학전형의 준칙을 하급학교의 교육내용과 결과에 맞추는 것이고, 하구형은 반대로 상급

학교의 입학전형 준칙이 상급학교 교육을 받을 자질이 있는지 여부에 두는 제도다. 전자는 주로 공교육 기반

확충을 위해 초ㆍ중등학교 수준에 적합하며, 후자는 경쟁력 있는 인력배출에 필요한 제도다. 하구형에 의하

면 대학이 계통의 정점에 서기 때문에 해당 대학은 입학전형에서 본고사 실시와 같은 상당한 자율권이 있다.

2) 입학사정관제(入學査定官制)란 대학이 입학업무만 담당하는 전문가인 ‘입학사정관’을 채용하여 신입생을 선

발하는 제도이다. 따라서 입학사정관은 학생부 등 계량적인 성적뿐 아니라 개인 환경, 특기, 대인관계, 논리

력, 창의력 등 잠재력까지 종합적으로 평가해 합격 여부를 가리는 역할을 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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