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자동차의 대량 리콜사태와 관련하여 다양한 진단과 해석이 나오고 있다.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도요타가 어쩌다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일까? 도요타의 불행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받아들여질 것인가? 현대자동차 등이 그 반사이익을 누리게 될 것인가? 다음 타겟으로 한국의 자동차산업이 예비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필자는 도요타 리콜사태의 이면에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과 경쟁체제에 관한 중요한 논점이 숨어 있다고 생각한다. 90년대 이후 세계적으로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면서 비용절감과 생산확대의 치열한 경쟁이 전개되었다. 구조조정의 추진으로 성과개선이 기대되었지만 실제로는 모두가 동시에 위기에 처하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구조조정의 발단은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도요타와의 경쟁에서 밀린 닛산은 위기에 처하게 되었고 구조조정 책임자로 카를로스 곤이 부임하였다. 그의 별명 커터(cutter)가 말해주듯이 철저한 비용 삭감, 불필요한 자산매각 등으로 2년 만에 닛산을 기사회생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도요타는 평소에도 마른 수건을 짜내는 것으로 유명하였지만 닛산으로부터 자극을 받아 2000년대 초반 더욱 철저하게 비용절감을 추진하였다.
도요타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2010년까지 1000만 대 생산체제를 구축하고 세계 1위 기업으로 도약하겠다는 야심찬 비전을 설정하였다. 실제로 도요타의 생산능력과 판매대수는 2000년대 중반에 걸쳐 지속적으로 증가하였다. 그 결과 도요타는 2004년에 포드를 제치고 2위를 차지한 데 이어 2007년 판매대수에서 GM보다 높은 943만 대를 기록하고 드디어 세계 1위 자리에 등극하였다.
그러나 1위의 영광은 한 해로 끝나고 말았을 뿐 아니라 얼마 지나지 않아 도요타의 명운이 걸린 리콜사태가 발생하게 되었다. 리콜사태 이전에 GMㆍ 포드ㆍ다임러 크라이슬러의 빅3는 파산 직전에 이르는 극심한 경영난에 빠졌고 정부의 지원이나 자구책으로 위기를 넘긴 상태였다. 이처럼 세계 톱 메이커들이 90년대에 이어 최근 1~2년 사이에 재차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게 된 이면에는 과도한 규모 경쟁이 작용하였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우리나라도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입을 둘러싸고 적정규모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지만 어느 정도가 최소효율 규모이고 얼마 이상이면 적정수준을 넘어서는지 사전적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자동차산업의 경우 90년대 규모의 경제성이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다. 규모의 경제를 신봉한 서구의 상위 업체들은 경쟁적으로 규모의 확장을 시도하였고 이 과정에서 자동차산업의 구조조정이 진행되었다.
그러나 몸집을 불린 업체들이 그 후 모두 좋은 성과를 냈는가? 결코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재매각이나 사업조정이 빈번히 이루어졌다. 반면에 규모 확대에 적극적이지 않았던 업체들은 안정된 수익을 시현하였다. 일정 규모 이상이면 큰 규모가 반드시 낮은 비용을 가져오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으로서 이른바 규모의 비경제(diseconomy of scale)가 작용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재차 규모 경쟁을 촉발한 것은 도요타였다. 적정규모 700만 대라고 일컬어지는 상황에서 1,000만 대 규모로 확장하려는 전략은 경쟁업체들이 힘이 빠졌을 때 거세게 밀어붙이자는 계산으로 이해될 수 있다. 추가로 확장된 생산능력은 주로 해외공장에서 채워졌다. 해외생산 비율을 높이고 현지 거점 수를 늘리는 등 도요타는 글로벌 생산체제 구축에 힘썼고 이 과정에서 약간의 무리수를 두는 것조차 감수하였다.
도요타의 확장은 GM, 포드 등 기존 1, 2위 업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고 꼭 도요타 탓은 아니라 하더라도 이들이 파산 직전까지 이르는 사태가 야기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런데 규모경쟁의 불똥이 경쟁업체에만 미치지 않고 약간의 시차를 두고 도요타 자신에게 돌아 왔다. 도요타 역시 규모의 비경제라는 역풍을 맞게 되었다. 규모가 지나치게 커진 결과로 또는 그 과정에서 오히려 부작용이 발생했던 것이다.
자유 시장경제에서 경쟁은 필수적이고 효율의 제고를 가져온다. 그러나 규모의 경제에 입각하여 경쟁우위를 추구하는 방안은 일정한 조건 하에서만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즉 규모의 확대를 통해 비용 상의 이점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다른 가치들을 해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도요타 사태에서 보듯이 극한의 비용우위는 달성하였지만 품질이나 안전, 나아가 소비자의 관점이 무시된다면 규모의 경제는 성립하지 않는다.
경쟁이 아름다운 것은 경쟁을 통해 종합적인 가치가 향상되는 경우에 한한다. 과도한 규모의 경제 추구가 자칫 규모의 비경제로 변모할 염려가 있다. 우리가 그동안 찬양해마지 않던 도요타시스템도 한 번 길을 잘못 들면 벼랑 끝에 몰릴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우리에게 돌아올 반사이익을 계산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번 도요타 리콜사태가 일부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도요타 때리기(bashing)’의 측면도 있다는 점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요타의 사례는 규모의 경제가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며, 규모의 경제를 맹신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특히 잘 나가는 기업일수록 이런 위험에 더욱 주의해야 할 것이다.
김용열 (홍익대학교 국제경영학과 교수, yykim@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