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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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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금 상한제는 해를 끼치는 제도이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는 외국 속담이 있다. 정부의 규제는 좋은 의도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 결과는 전혀 딴판이다.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로베스피에르(Maximilien Francois Marie Isidore de Robespierre, 1758~1794년)는 생필품가격이 올라 시민들의 불만이 높아지자 우유가격을 올리는 상인은 단두대에 보내겠다고 엄포를 놓았다. 우유가격이 급락했다. 우유가격을 통제하는 정책이 성공을 거두는 듯했다. 그러나 우유가격이 떨어지자 농민들이 젖소 사육을 포기하였다. 우유 공급량이 줄어 우유가격이 뛰기 시작했다. 결국 로베스피에르의 의도와는 달리 우유는 시민이 아닌 귀족들만 마실 수 있는 식품이 되었다. 시민들의 불만이 더욱 커졌음은 물론이다.


이러한 일은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훨씬 이전에도 발생했다. 284년부터 305년까지 로마황제였던 디오클레티아누스(Gaius A. Valerius Diocletianus)는 시민들의 생계를 돕기 위해 곡물가격이 오르지 못하도록 통제하였다. 곡물가격 하락으로 인해 시장에서 곡물의 출하가 줄어 심각한 식량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높은 가격을 지불하며 곡물을 구입하려고 해도 곡물을 구하기 어려웠다. 굶어 죽는 사람들이 생겨났으며 식량을 구하려는 사람들 간에 피를 부르는 싸움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식품만이 아니다. 가난한 세입자들을 위해 임대료를 통제했을 때 그 결과는 소수의 세입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정반대의 결과를 초래했다. 주택 공급이 감소하여 실제로 지불해야 하는 임대료가 엄청나게 올랐다. 임대료가 높아 쉽게 이사도 다닐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주택이 관리되지 않아 도시가 황폐화되었다. 이런 현상은 임대료 통제를 실시했던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나타났다.


최근 대학등록금 상한제의 법제화를 두고 찬반논쟁이 한창이다. 등록금 인상률을 물가인상률의 1.5배가 넘지 않도록 제한했다. “학생들의 등록금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서는 반드시 실시해야 하는 조치”라며 학생과 많은 지식인들이 적극 찬성하였다. 가격을 통제하면 의도와는 달리 더 큰 대가를 치르는 결과를 초래했던 수많은 역사적 경험도 뒷전으로 하고 ‘선의와 공익을 위한다’는 명분으로 이러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대학등록금을 억제하면 지금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대학생들이 피해를 볼 것이다. 가장 큰 피해자는 가난한 대학생이 될 것이다. 대학등록금 억제로 대학 등록금 수입이 줄면 가난한 학생으로 가는 장학금이 줄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재원이 부족하게 되면 대학의 발전과 양질의 교육에 대한 투자가 줄게 된다. 우수한 교수를 확보하기 어렵게 될 것이고, 교육과 연구에 대한 투입이 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장기적으로 대학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다. 결국 그 피해는 대학생들에게 돌아간다.


한편 국내 대학교육의 질적 저하로 인해 양질의 교육을 원하는 사람들은 외국 유학의 길을 찾게 된다. 결국 대학교육을 위한 실질적인 부담은 더 늘어나게 된다. 부유한 대학생들만이 늘어난 부담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국내의 대학을 다니게 된 사람들은 글로벌 경쟁에서 뒤지게 된다.


석사와 박사과정의 공부를 원하는 많은 대학 졸업생들이 여전히 해외로 유학을 떠나고 있는 사실을 우리는 반성해야 한다. 물론 외국의 대학에 가서 선진의 학문을 연구하고 배우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우리나라 대학의 역사도 이제 60년 이상이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대학들도 우수 인력을 자체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점에서 대학 발전에 중요한 재원의 원천인 등록금을 억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다.


등록금 상한제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대학의 운영을 등록금에 의존하지 말고 재단전입금을 늘리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대학의 인건비에 대한 등록금 의존도가 외국에 비해 높은 것이 사실이다. 미국의 사립대학의 경우 등록금 의존율이 30%인 반면, 우리나라 유명 사립대학은 60% 정도다. 물론 90%가 넘는 사립대학도 있다.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 의존율이 높은 이유는 그럴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사립대학들은 등록금 이외에 대학운영비를 조달할 수 있는 원천이 거의 없다. 일부 기부금이 동문들을 통해 들어올 뿐이다. 거액의 기부금을 내는 독지가가 많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기여금 입학제도 허용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수많은 규제로 인하여 수익사업을 통한 재원마련도 어렵게 되어 있다.


등록금 상한제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외국에 비해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이 너무 높다고 한다. 그러나 외국 대학과의 등록금 비교는 큰 의미가 없다. 왜냐하면 조건과 환경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다.


서울 주요 사립대의 연간 등록금은 문과의 경우 700만 원대다. 이과 계열은 이보다 150만 원 정도 더 많고, 의학 계열은 1천만 원이 넘는다. 미국의 경우 평균 등록금이 주립대학의 경우 주민 6,500달러, 타주 거주자와 외국인 1만8,000달러이며, 사립대학은 2만5,000달러 정도이다. 미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4만7,000달러 정도 된다. 따라서 미국의 경우 사립대학 등록금이 1인당 국민소득의 53% 정도 차지한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이다. 우리나라 사립대학 등록금을 달러로 환산하면 평균 7,800달러 정도다. 1인당 국민소득의 40% 정도가 된다.


국민소득 대비로 보면 우리나라 사립대학 등록금이 미국의 경우보다 오히려 낮은 편이다. 물론 미국의 경우 주립대학 학생의 40%, 사립대학 80% 정도가 장학금, 학생대출 등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그 부담이 다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교육의 질도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 바로 이렇게 서로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외국 대학과 비교하여 등록금이 높다든가 낮다든가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 수준은 입장에 따라 높다고 할 수 있고 낮다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어떤 재화든 그것을 구입하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될 수 있으면 적게 지불하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제공하는 측은 될 수 있으면 많이 받으려고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경쟁이다.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대학교육을 받는 대학생의 입장에서만 생각하여 등록금이 높다고 규정하고 대학등록금을 규제할 것이 아니라 대학 간의 경쟁이 제대로 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경쟁이 있으면 대학들은 될 수 있으면 낮은 등록금으로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교육에는 이러한 경쟁구조가 없다. 정부가 대학 설립 운영, 수익자산 운용, 학사 운영 등에 대해 전반적으로 규제하고 있어 교육ㆍ연구ㆍ재정의 측면에서 부실한 대학들이 존속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제다. 경쟁이 존재한다면 가능한 한 학생들의 부담을 적게 하면서 좋은 학생들을 유치하여 좋은 교육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통해 많은 재원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그리하여 단지 등록금으로만 대학을 운영하려고 하는 대학은 존재하기 어려울 것이다.


가난한 대학생을 위한다면 대학으로 하여금 등록금을 자율적으로 정하도록하고 기여금 입학제를 전향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만들어진 재원으로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도록 하는 것이 등록금을 억제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방법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학의 발전과 양질의 교육을 위해서는 대학등록금을 제한할 것이 아니라 대학에 가해지고 있는 규제를 풀어 자생력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것이 우리나라 대학교육의 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다. 등록금 상한제는 장기적으로 우리나라 대학교육에 커다란 해를 끼치는 법이다.


안재욱 (경희대학교 대학원장/경제학, jwan@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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