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와 함께 선심정책이 난무하는 것을 보니 선거철이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투표를 의식한 선심정책의 폐해가 널리 알려졌음에도 그것에 대한 호응은 항상 높다.
최근 등장한 ‘무상급식’도 예외는 아니다. 정치인이 ‘공짜점심은 없다’는 경제학의 철칙에 마술을 걸면 그 철칙은 금방 무너진다. 민주노동당의 창당 공약이었던 ‘무상급식’을 제1야당인 민주당이 6ㆍ2 지방선거를 앞두고 ‘보편적 무상급식’으로 승격하여 당론으로 채택하였다. 이에 놀란 정부ㆍ여당도 무상급식의 단계적 확대와 ‘무상보육’으로 맞불을 질렀다.
야권의 선심 공약에 맞선 정부ㆍ여당의 정책도 오십보백보다. 야권이나 여권 모두 방향을 복지 확대로 잡은 것이다. 여권은 ‘선택적 복지’, 야권은 ‘보편적 복지’를 내세우고 있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회주의 국가에서도 ‘보편적 복지’를 실현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무시하는 야권보다 ‘선택적 복지’를 들고 나온 여권이 더 걱정스럽다.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는 민주당은 “4대강 사업에 수십조 원을 퍼붓고 5년간 90조 원에 달하는 부자감세를 하면서 무상급식 예산에 드는 2조 원 때문에 나라살림이 피폐해진다고 정략적 생떼를 쓰고 있다.”고 한나라당을 비난하였다.1)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는 100조 원에 달하는 부자감세와 30조 원에 달하는 ‘4대강 죽이기’ 사업을 중단하면 무상급식 지원을 위한 재원 마련이 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놨다.2) 그러나 정부ㆍ여당은 무상급식 확대와 ‘무상보육’에 필요한 재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무책임한 야당보다 무능한 여당이 더 한심하게 보인다.
야권이 합심하여 외치고 있는 ‘무상급식’의 핵심은 ‘무상급식’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무상급식’은 ‘보편적 복지’를 주장하기 위한 불쏘시개일 뿐이다. 우리보다 앞선 선진국들도 복지국가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복지국가를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지속 불가능한 프로그램으로 판명난 복지국가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했다는 점에서는 여야의 차이가 없다.
집권 초기에는 자율과 경쟁, 감세와 규제완화를 중시했던 이명박 정부도 복지국가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았다. 정치적 곤경에 몰려 서민 위주의 중도강화를 표방하면서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과 교육정책은 과거 정부와 차이를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오히려 과거 정부를 능가할 지경이다. 그 사이에 국가의 재정적자와 부채는 걷잡을 수 없이 늘어났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정부의 재정적자는 43조 2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에 80조 4000억 원이었던 국가부채는 2009년 359조 6000억 원으로 4배 이상 늘어났다. 총 액수도 문제지만 더 걱정스러운 것은 증가속도이다. 공식적인 국가부채 이외에 공기업 부채도 급격하게 증가해 2009년 말 211조 7000억으로 전년보다 20.6% 증가하였다. 중앙 정부만 그런 것이 아니라 지방정부의 부채도 급증하고 있다. 지방자치단체들이 설립한 공기업인 각종 개발공사들의 2010년 2월 전체 채권 발행잔액은 14조 8000억 원으로 2007년 말 8040억 원과 비교하면 엄청나게 늘어났다. 지방자치단체의 순채무도 2008년 10조 1000억 원에서 2009년 13조 5000억 원으로 빠르게 증가하였다. 가계부채도 지난해 1인당 1,754만 원으로 국민총소득(GNI)의 80%가 넘었다.3) 개인과 국가가 온통 빚더미에 올라앉은 것이다.
상황이 이러할진대 정치권은 하나같이 ‘복지’를 최고의 선으로 생각하고 있다. 복지를 지고의 선으로 생각한다면 ‘선택적 복지’는 ‘보편적 복지’에 맞설 수 없다. 보편적 복지가 선택적 복지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을 도덕적으로 승인하고, 현재의 경제사정으로 ‘보편적 복지’를 유보할 수밖에 없다는 궁색한 처지에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앞으로 강한 ‘복지’ 압력에 시달릴 것이다. 짧은 간격으로 시행되는 대선ㆍ총선ㆍ지자체 선거를 통해 복지 압력은 더욱 거세질 것이다. 지난달 사단법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역동적 복지국가’라는 새로운 논리와 전략을 제안하였다. 우리나라는 ‘산업화 시기 → 민주화 시기 → 선진화 시기’로 발전해 왔지만 이제 신자유주의의 선진화 정치사회 세력을 역사의 전면에서 몰아내고 복지국가 주도세력이 정치사회의 전면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산업화 시기 → 민주화 시기 → 선진화 시기 → 복지국가 시기’로 역사의 방향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이다. 야만적 정글자본주의, 경쟁지상주의와 승자독식의 시장만능국가라는 신자유주의의 양극화 체제를 역동적 복지국가 체제로 바꾸자는 것이다.4)
이들은 이념적으로 야권을 규합할 것이고, 여권도 ‘울며 겨자 먹기’로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런 주장들이 얼마나 국민의 공감을 얻어 정치세력화할 수 있을지는 두고 보아야 알 일이지만 그런 정당이 이 사회를 올바로 통치할 수는 없다. 선심정책을 내세우는 정치인들은 기업이나 부자들이 그 비용을 지불한다고 선전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선심정책의 비용은 결국 모든 국민이 지불해야 한다. 부자만 세금을 내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부담하는 세금도 결국 소비자의 부담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복지국가라는 환상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진다. 본격적으로 노령화 사회에 접어들고 통일한국을 이루어야 할 현실을 감안하면 ‘복지확대’가 정치권의 전면에 부상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가 집중해야 할 것은 보편적 복지나 선택적 복지보다는 경제성장과 사회 안전망이다.
신중섭 (강원대학교 윤리교육과 교수, joongsop@kangw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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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인숙 기자, “민주 당선지역부터 전면 무상급식”, 『경향신문』 3월 15일.
2) 친환경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 출범선언문 (2010년 3월 16일).
3) 개인의 총 금융부채는 854조 8000억 원으로, 1754만 원은 이를 4875만 명으로 나눈 값이다. 임대환 기자, “개
인 빚 ‘사상 최대’, GNI의 80% 넘었다”, 『문화일보』, 2010년 3월 31일.
4) 역동적 복지국가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하는 시혜적ㆍ잔여적
복지가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복지를 적극적ㆍ보편적으로 제공하는 국가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요구하고 있
다.”“(경향과의 만남)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이상이 제주대 교수”, 『경향신문』 3월 30일, 이상이,
“이제 지방정부가 달라져야”, www.newsa.co.kr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