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6ㆍ2 선거가 끝났으니 무상급식 이야기를 좀 해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된다. 무상급식은 선거 이슈로서의 수명은 다 했지만 여전히 중요한 정치적 쟁점으로 남아 있다.
무상급식을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확대하자는 것이 이 주장의 내용이다. 무상급식 전면 확대의 가장 중요한 논리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무상급식을 받는 학생들의 낙인효과를 막자는 것이고, 또 하나는 의무교육의 완성을 위해서 이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배후에 있는 사상은 평등주의이다. 이것이 ‘평등’의 밥상을 차려주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평등’ 혹은 ‘공평’은 우리 사회를 건강하게 지켜주는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그러나 이것을 위해 무조건 정부의 역할을 크게 하고 더 많은 재원을 할당하는 것이 능사가 아님은 분명하다. 전면 무상급식은 실제적인 평등의 개선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조치이다. 급식비를 부담하다가 그것을 면제받게 될 사람들은 최하층은 아니기 때문이다. 전면 무상급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평등을 내놓고 강조하는 것은 아니지만 평등우선은 그들이 일관되게 견지해 온 입장이라는 점에서 이 주장은 자가당착적이다.
보다 완전한 의무교육을 위해서 전면 무상급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허점이 많다. 의무교육에서 중요한 것은 무상교육이 아니라 ‘강제교육’이다. 초중등학교 수준의 기본적인 교육은 모든 사람이 받아야 할 가치재(merit good)의 성격을 갖기 때문에 국민 누구나 의무적으로 받도록 한 것이 의무교육이다. 의무교육의 내용과 질의 보장을 위해서 공공부문이 중심적인 역할을 하고 그 의무의 이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서 무상으로 하는 것이다. 의무교육을 보다 의무교육답게 만들려면 교육의 내용과 질의 유지를 위한 정부의 통제와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훨씬 더 시급하고 중요하다. 초중등학교의 교육현장이 정치화되고 진보적인 이념집단들의 경쟁과 갈등의 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낙인효과를 거론하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아름다운 나눔의 관계로 인식시켜서 서로 감사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옳은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우리는 서로 도우며 도움을 받으며 살아야 하는 공동체의 구성원들이다. 도움을 받는 것은 부끄러운 일도 아니고 감추어야 할 일도 아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감사하게 받고 자신도 앞으로 다른 사람들을 어떤 방법으로든지 도와주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 옳다. 도와주는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도 어떤 상황에서는 도움을 받게 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함께 사는 공동체의 가치를 배우게 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회에 살아갈 아이들을 가르치는 현장에서 도움을 주고받는 것을 감추어야 한다는 주장은 얼마나 속물적이고 무책임한 것인가? 현실적으로 가난한 집과 부잣집 아이들이 한 반에서 공부하면서 따돌림이나 낙인효과 같은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있을 때 그것을 감추는 것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교실은 교육의 현장이다. 바로 그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바른 태도를 갖도록 가르치는 것이 의무교육의 존재이유라고 보기 때문이다.
야당이 전면 무상급식을 지방선거의 쟁점으로 부각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다고 인식한 일부 여당 정치인들은 또 다른 무상공급 시리즈를 들고 선거판에 뛰어들었었다. 이러한 여야 정치인들의 행태를 우리는 포퓰리즘이라고 싸잡아 비난한다. 포퓰리즘은 국가공동체의 심각한 후퇴를 가져온다. 포퓰리즘이 만연하게 되는 원인을 저질의 정치인에게서가 아니라 지혜롭지 못한 국민들에게서 찾아야 한다. 당장의 작은 이익의 유혹을 넓고 긴 시각의 통찰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하다. 다만 이러한 지혜를 가르칠 수 있는 가장 전략적인 곳이 의무교육의 현장이어야 한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무겁다.
곽태원 (서강대학교 명예교수/경제학, pwkwack@sog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