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martin-martz-RhF4D_sw6gk-unsplash.jpg

l    소통   l    KERI 컬럼

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한국경제연구원_WHITE_edited.png

미디어렙법안과 방송시장 경쟁제한규제 개선


우리나라 헌법 제119조 제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 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명문화되어 있어 국가의 기본적인 경제 질서가 자유시장 경제 질서에 기초하고 있음을 제시하고 있다. 이 규정은 경제 관련 국가행위에 대한 목표를 설정한 규정이므로 국가는 입법행위를 포함한 경제 관련 국가행위를 함에 있어 이 규정을 준수해야 할 의무가 있다. 또한 경제 관련 국가행위가 경쟁제한사항을 포함하는 경우 일정한 범위 내에서 이 규정에 근거하여 그러한 국가행위에 대한 사법적 통제가 가능하다. 경쟁제한사항을 포함하는 경제 관련 입법의 위헌 여부의 판단은 종국적으로 헌법재판소의 심판권한에 속하는 문제이다.


헌법재판소는 그 동안 경쟁제한사항을 포함하는 경제관련 입법의 위헌 여부를 심사함에 있어 경제관련 헌법규정과 경제적 기본권 규정 사이의 상관관계를 고려하여 경제 관련 헌법규정으로서의 헌법 제119조 제1항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경제적 기본권 침해가 동시에 문제되는 경우에는 헌법 제119조 제1항 아닌 다른 경제 관련 헌법규정의 취지에 부합한다 하더라도 그 입법이 위헌이거나 적어도 헌법에 합치하지 않다는 판단태도를 보여 왔다.


헌법재판소는 2008년 11월 27일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대행제도에 관하여 규정하고 있는 방송법 제73조 제5항과 그 위임에 의한 동법 시행령 제59조 제3항에 포함되어 있는 경쟁제한사항에 대해 의미 있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이 조항은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를 대행사에게 위탁하도록 강제하는 부분(위탁강제제도)과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를 대행하는 자격을 제한하는 부분(대행제한제도)으로 구분되는데, 헌법재판소의 다수의견은 이 중 대행제한제도 부분이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대행 시장에 진입하려는 잠재적 사업자의 경제적 활동의 자유를 제한하고 평등권을 침해하여 헌법에 합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선언하는 한편, 2009년 12월 31일을 시한으로 입법을 촉구하는 취지의 결정을 한 것이다. 헌법재판소는 대행제한제도를 통하여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대행 시장에 제한적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데에는 시장 기능만으로 보장되지 못하는 공익 실현을 위한 정당화 근거가 인정된다는 취지에서 입법목적은 정당하다고 보았으나, 심판대상이 되는 법령의 규정이 경제 관련 헌법규정 및 경제적 기본권 규정의 침해 여부가 동시에 문제되는 경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았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명백한 것으로 보였다. 헌법재판소가 정한 시한인 2009년 12월 31일까지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따라 법령 개정을 통하여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대행 시장에 제한적으로나마 실질적 경쟁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하면 되는 것이었다. 기존의 법령은 공영 미디어렙인 한국방송광고공사(KOBACO) 외에 다른 사업자가 시행령에 정한 요건을 충족할 경우 민영 미디어렙으로서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근거는 마련해 두고 있었지만, 시행령에서 사실상 한국방송광고공사 지정제와 같은 요건을 둠으로써 한국방송광고공사의 독점체제가 유지될 수 있게 허용한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비록 시장진입이 법령에 의하여 비로소 허용된다는 점에서 ‘제한적’이라는 한계는 여전히 있지만, 법에서 그 기준을 명확히 하고 시행령에서 합리적인 요건을 설정함으로써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대행 시장에 ‘실질적인 경쟁관계’가 형성될 수 있는 방안이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충분히 마련될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적어도 헌법재판소가 말하는 ‘실질적 경쟁관계’ 형성이라는 미디어렙법안의 입법과제가 경쟁제한적인 기존 법령 하에서 강요된 현재의 왜곡된 시장구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본적 여건을 조성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관점에서 보면 그렇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미디어렙법안의 방향과 내용에 대하여 논의만 무성하고 정치적 이해관계까지 결부되어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국회는 대체입법 시한을 넘기고 말았다. 그리고 해를 넘기고도 언제 법이 만들어질 것인지도 예측하기 어려운 상태이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대체입법 시한이 지나면 민영 미디어렙의 시장진입을 사전적으로 규제하던 방송법령의 규정 역시 자동적으로 그 효력을 상실하게 되므로 현재는 오히려 시장 진입이 자유로운 상황이 되었다. 하지만 규제에 길들여진 방송시장 및 그 인접시장인 지상파 방송광고 시장의 이해당사자들 중 그 누구도 그와 같은 기본에 충실하지 못한 것 같다. 규제가 없는 상태가 그저 불안하고 혼란스럽기만 한 것 같다.


국회에서 민영 미디어렙법안의 처리가 늦어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입법 논의가 헌법재판소의 결정 취지인 시장진입 제한을 완화하는 실질적 경쟁관계 형성에 적합한 제도를 마련하는 데 충실하기보다는 대신 새로운 진입자의 소유 및 지분구조, 업무 영역 및 사업 활동을 규제하는 방안 마련에 골몰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것은 본말이 전도된 접근법이다. 지상파 방송광고 판매대행 시장은 지상파방송시장과 관련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지상파방송사의 수익성과 직결된 방송광고의 유통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경쟁기능의 회복이 우선적으로 필요한 시장이다.


그리고 그러한 회복은 사전적인 정밀한 규제 설계보다는 공익성ㆍ공공성을 고려하여 일정한 진입요건을 마련하여 이를 충족하는 사업자에게 자율적인 활동의 여지를 제공한 후 경쟁제한성과 같은 명확한 기준에 의한 사후적인 감독을 하는 것이 정도이다. 우리 사회에서 방송 고유의 사회문화적 역할은 계속하여 존중되고 재평가되겠지만 미디어렙법안으로부터 출발하여 방송시장에서의 경쟁제한 규제를 개선하는 과정을 통해서 방송관련 서비스를 수행하는 사업자가 경제적 경쟁의 주체로도 인식될 필요가 절실하다.


홍대식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dshong@sogang.ac.kr)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