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탄소녹색성장기본법(일명 녹색법) 및 관련 대통령령의 제정으로 저탄소 사회와 친환경 성장에 대한 기본방향과 중기적 온실가스 감축목표가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저탄소 녹색성장을 달성할 구체적 시행방안에 대한 논의도 탄력을 받고 있다. 배출권거래제(ETS)의 경우 ‘녹색법’에서 ‘총량제한 배출권 거래제 등의 도입’ 가능성이 구체적으로 언급되면서 가장 주목받는 정책수단으로 대두하였다. 대외적으로 보면 이미 시행 6년차에 접어든 EU를 비롯하여 미국, 일본, 호주 등 주요 선진국이 ETS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추세에 맞추어 정부에서는 배출권 거래 관련 법률을 입안 중이며, 정부의 유관 기관 및 관련업체들이 모의거래 및 시범사업을 진행하면서 이 제도의 도입은 기정사실로 여겨지고 있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 아젠다가 경제 전반에 가져올 파급효과에 비해 그 감축수단의 효과와 효율성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였는지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배출권거래제가 온실가스 감축의 주요 수단으로 떠오른 배경에는 교토의정서의 채택이 자리한다. 교토의정서는 온실가스에 대한 의무감축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른바 ‘교토메커니즘’으로도 불리는 ‘유연메커니즘(Flexibility Mechanism)'의 도입을 채택하였다. EU에서 시행 중인 현 제도는 바로 이러한 총량목표하에서 배출권 거래를 통한 감축목표의 달성, 제3국이나 의무감축 지역 내 온실가스 감축사업을 통한 크레디트(CERs, ERUs)의 인정을 내용으로 하는 교토메커니즘을 구체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교토메커니즘은 개별적 통제방식에서 벗어나 배출권 가격을 통해 개별 기업이 온실가스 감축의 인센티브를 내재화하게 된다는 의미에서 시장친화적 정책수단으로 분류되었다. 그러나 이를 시장메커니즘이라고 부르는 것은 일면의 진실만을 담고 있을 뿐이다. 할당량이 주어졌을 때 개별 기업이 시장의 원리에 따라 최선의 감축수단을 선택하게 된다는 배출권거래제의 원리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공급 자체가 시장원리에 의해 결정되는 여타 자원의 할당원리와 달리 배출권거래제에서는 초기 할당량(AAU)이든 공동사업을 통한 크레딧(ERU, CER)이든 공급량 자체가 정책적으로 결정된다. 즉 배출권거래제의 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는 총량설정의 단계인데, 이는 고도의 정치적 협상과정을 수반한다. 온실가스 감축수단으로서 배출권거래제의 매력은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금전적 유인 제공에 있지만 그 금전적 유인은 동시에 개별 경제주체가 총량 및 할당방식에 동의하기 어렵게 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해 EU ETS 2기의 국가 할당량을 둘러싼 동유럽 국가 간의 법적 반발과 이들 국가에 대한 EU집행위의 패소는 EU ETS의 앞길이 순탄치 않을 것임을 짐작케 한다. 보다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설계상의 결함이라기보다는 배출권거래제가 안고 있는 태생적 한계라는 점이다.
배출권거래제가 안고 있는 두 번째의 근본적 문제점으로는 총량설정의 경직성에서 비롯되는 가격 변동성을 들 수 있다. 배출권 총량의 비탄력성은 수요의 변동에 따라 급격한 가격 상승 또는 가격 붕괴로 이어지게 된다. 다시 한 번 EU의 경험을 예로 들자면 EU ETS 2기의 배출권 가격은 거래기 초반 25유로에서 경제위기로 인한 수요 감소와 함께 급속히 하락하여 현재는 15유로를 오르내리고 있다. 이는 배출권 총량이 훨씬 많았던 1기의 초반의 가격을 크게 하회한 수치이다. 수요 변동에 따른 배출권 가격의 지나친 변동성은 친환경 투자에 대한 불확실성을 높여 기업의 투자결정을 어렵게 한다. 이 역시 적절한 가격 시그널을 통한 온실가스 저감투자의 유도와 같은 배출권거래제의 기본 취지를 무색케 하는 결과이다. 이 밖에도 초기 할당방식과 관련된 이슈들 역시 거래제 참가자들의 전략적 행동에 따른 제도 왜곡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혹자는 1992년 UN의 기후변화협약 이후 교토의정서의 채택에 이르는 기간에 이 모든 문제점들이 이론적으로 충분히 논의되었고 교토의정서의 채택은 그러한 논의의 결과 채택된 최선의 정책이라고 반박할 수도 있겠다. 필자의 이론적 불신을 해소시키는 결론은 아니었지만, 교토메커니즘이 도입되고 EU에서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되기까지 많은 갑론을박이 오갔음은 분명하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는 주된 근거가 ‘주요 선진국’에서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EU의 경우 여러 가지 정책수단이 시험대에 올랐으며 교토의정서 의무감축목표 이행비용이 직접 규제 시의 67억 유로에 비해 절반가량으로 줄어든다는 연구결과물도 제시하였다. 이에 비해 우리의 배출권거래제 논의는 심도 깊은 논의보다는 ‘대세’에 기대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앞서 제기한 배출권거래제 자체의 이론적 문제점 이외에도 탄소의 최대 배출원인 전력시장에 대한 가격규제라는 구조적 핸디캡마저 안고 있는 실정이다.
무엇이 최선의 정책인지를 선언하기 이전에 배출권거래제의 이론적 문제점과 더불어 한국에서의 구체적 시행조건에 대한 논의가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어떠한 정책수단을 막론하고 이는 제도의 성공적 안착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선화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slee@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