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채와 글로벌 금융위기 그리고 경제 전망
지난해 시작되었던 글로벌 금융위기나 최근의 금융시장 불안은 부채과다로 인해 발생한 문제이다. 따라서 개인이나 기업, 정부 등 경제주체들이 위기 이후 부채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져 부채를 줄이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아이러니는 크게 위축된 소비와 투자가 살아나려면 부채가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2009년 중 각국의 정부가 엄청난 규모로 재정지출을 늘렸는데 이것은 가계나 기업들이 소비와 투자를 크게 줄였기 때문에 나타난 경제 전체의 총수요 부족을 완화하려는 시도였다. 전반적 민간지출 감소는 가계와 기업 모두가 지출의 규모를 주어진 소득(수입)보다 줄였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다시 말해 모두 저축을 늘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정지출 증대는 정부의 빚, 혹은 나라의 빚을 늘려서 이루어졌다. 정부의 빚은 미래의 세금을 뜻하는 등 부작용이 커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원시한다. 어쨌든 이런 과정을 보면 결국 경제 주체 중 일부는 당장의 수입의 한도를 넘게 지출해야 경제가 원만히 지속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수입의 한도를 넘는 지출이 향후 수입이 확실한 개인이나 기업에 의해서 이루어져야만 경제 전체의 건전성이 유지된다. 그렇지 않은 경우가 바로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주택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할 것이라는 신기루를 믿고 지나치게 부채를 늘린 개인들이 많아 발생한 문제이다.
2010년에 세계경제의 여건은 올해보다 나아질 전망이다. 주요국 성장률이 개선되겠으나 가계나 기업들의 부채에 대한 민감성이 높아져 선진국의 소비ㆍ투자 회복이 제한적일 가능성이 크다. 최근 두바이ㆍ그리스 등에서 보듯이 글로벌 금융위기 후유증의 재발가능성은 아직도 상존한다. 대내여건은 올해 거시경제 선방에 기여한 경기지원적 정책기조가 중립 내지 긴축으로 전환되면서 성장부담요인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09년 대비 기저효과로 강한 반등세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동시에 성장세를 완화할 요인들도 만만치 않다. 2010년 국내경제는 4%대 이상의 성장을 달성하는 것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10년 국내외 경제 전망은 결국 얼마나 가계와 기업들이 저축을 줄이느냐에 달려있다 하겠다.
2. 세계경제 3%대 성장세, Double dip-no, global imbalance-yes
주요국 성장률이 개선되는 흐름을 반영하여 IMF 등은 내년 세계경제가 3%대의 성장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하지만 선진국의 고용 및 소비 회복 지연, 중국 수출 증가세 둔화 등이 전망의 하방위험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세계경제는 2000년대 초반까지 3~4%대 증가세를 보이다 2006~2007년에는 각각 5% 성장했다. 이에 비해 2009년 -1%(IMF 전망치)에서 회복하는 2010년 세계경제가 3% 성장에 그친다는 것은 반등세가 미약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기저효과를 감안해도 약 4%의 순증이다. 최근 두바이월드, 그리스 신용등급 하향조정 등과 같이 제한적이나마 부정적 효과가 큰 글로벌 금융위기 후유증 발생가능성은 가시지 않고 있다.
아직도 드러나지 않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있어서 세계경제가 크게 충격을 받아 다시 크게 어려워지는, 소위 더블딥(double dip)에 대한 우려가 상존하고 있다. 하지만 2008년 미국 금융시장 붕괴에 버금가는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 그 이유는 세계경제의 두 축을 형성한 미국과 중국이 모두 경제가 크게 하락하는 상황을 용인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현 민주당 오바마 정부는 이번 위기의 원인제공에 대한 부담, 국내경제 상황 악화에 따른 경제ㆍ사회 시스템의 약화를 방치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특히 시장개입주의 성향의 경제학자들이 대통령 주변에 포진해 있어 이런 성향을 강화하고 있다. 중국의 경우 현 정부 및 공산당 지도부가 출범하면서 사회 안정을 최우선시하는 기본적인 정책방향이 확고히 표명했다. 따라서 가능한 한 경제가 크게 나빠져 지역ㆍ계층 간 불균형이 크게 악화되는 것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 두 나라는 작금 논의되는 세계적 불균형(global imbalance)의 대표적 당사자 들이기도하다. 무역수지 관점에서 흔히 불균형이 논의되지만 각국의 투자와 저축의 관점에서 보는 것도 의미가 크다. 세계경제 전체로 보면 중국이 대표적으로 소비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 경제이다. 중국이 왕성하게 투자를 늘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축이 투자보다 커서(2007년 총투자율과 총저축률은 각각 GDP의 42.3%와 51.2%) 잉여가 발생하고 있는데 중국은 이를 소비하는데 쓰지 않고 해외, 특히 투자보다 저축이 모자란 미국(2007년 총투자율과 총저축률은 각각 19.5%와 14.4%)의 금융시장에 자금을 환류시키고 있다. 따라서 중장기적으로 세계경제의 건전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미국이 저축을 늘리고 중국이 소비를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물론 이런 조정이 단기간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3. 국내 경기지원적 정책 축소, 미흡한 고용여건, 위험회피 등 제약요인
올해 거시경제 개선에 기여한 경기지원적 정책기조가 중립 내지 긴축으로 전환되면서 성장세 약화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우선 재정의 성장 기여도가 하락할 것이다. 2008년 예산대비 약 40조 원을 더 투입한 정부지출의 성장률 제고효과는 올해 약 1.5%p로 추정된다. 하지만 내년 예산(총지출 기준)은 2009년 본예산 대비 2.6% 늘어난 291조8천억 원으로 2005~2009년 평균 예산증가율 7.9%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다음으로 정책금리 인상이 예상된다. 2009년 봄부터 지속된 2%라는 단기 정책금리는 지금까지 경험에 비추어 매우 낮은 수준이어서 과잉 유동성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만만치 않다. 하지만 현재의 고용부진과 가계부채 상황을 고려할 때 금리 정상화는 가계의 부담증가 등을 조장해 실물회복 속도를 낮추는 효과가 있을 것이다. 더욱이 내외금리차로 인한 해외자금 유입이 국내 유동성을 증대시키는 효과가 있고 아울러 환율에도 영향을 미친다. 금리차가 빠르게 해소되면 큰 폭의 자금유출을 초래하여 불안요인이 된다. 이런 점을 감안하면 금리인상 시점이 다소 늦추어질 수 있다.
또 5년 전만해도 매년 30만 개 가까이 늘던 일자리가 지난 몇 년 동안 20만 개로 줄더니 2009년에는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정부 지출로 일자리가 만들어진 공공부문을 제외한 민간부문 고용만 보면 2009년 3분기 기준 전년 대비 30만 개가 줄었다. 고용사정이 이러니 가계소득이 나빠져 2009년 3분기까지 소비지출 중 식료품비 비중을 나타내는 엥겔지수가 8년 만에 최고 수준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고용은 노동시장 경직성을 반영하여 경기 회복기에도 느는 반등폭이 그리 크지 않다. 고용과 해고가 용이한 미국의 경우 경기가 악화되어 고용이 크게 줄어도 경기 회복기에는 역시 빠르게 반등한다. 변동폭만 보면 미국의 사정이 특별히 좋을 것 같지 않지만 중요한 차이점이 있다. 미국의 평균 고용률은 우리보다 5%p 이상 높다는 것이다. 고용률 1%p는 20만 개가 넘는 일자리를 의미하기 때문에 이런 차이는 엄청난 것이다. 내년 고용상황은 올해보다는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공공부문의 고용이 주는 것과 올해 발생한 민간부문 고용 감소를 다 만회하려면 상당히 많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작금의 노동법 관련 파동을 보면 노동시장 유연화를 위한 가시적 진전이 아직도 요원해 보인다. 고용률의 획기적 제고는 꼭 필요한 과제인데 과연 가능할지 의구심이 생긴다.
아울러 기업들의 금융저축 축소 및 부채사용을 통한 실물투자 확대는 내년 이후 기대되는 경기회복의 강도를 결정하는 중요한 이슈이다. 앞서 논의 했듯이 부채과다로 인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상황에서 기업들이 보유한 유보자금을 문제시하는 것도 적절치 않다. 물론 경제가 활성화되려면 기업 투자가 늘고 일자리가 생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모든 업종의 기업들에 투자를 늘려야 한다고 주문하기보다 새로운 기회가 생긴 분야의 기업들이 공격적으로 투자를 늘리도록 여건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근로형태 다양화를 포함한 노동시장 유연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기업투자 확대가 고용 확대로 이어지는 효과는 크지 않을 것이다. 지난 10여 년간 우리는 이러한 불편한 현실을 외면하며 “언젠가 악몽을 꿨던 것처럼 지나가겠지”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고용부진의 현실은 아직도 추한 얼굴로 우리와 마주하고 있다.
4. 2010년 국내경제 전망
내년에는 약 4% 성장세가 예상된다. 세계경제의 회복세, 기저효과 등으로 플러스가 예상되지만 재정효과 및 환율효과의 약화 내지 소멸로 경기 개선속도도 완만할 전망이다(<표> 참조). 민간소비는 고용 사정개선, 환율 하락, 자산가격 상승 등으로 올 하반기 이후의 회복세를 이어가겠지만 금리 및 물가상승 등이 구매력 제약요인으로 작용하면서 성장률보다는 낮은 증가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건설투자의 경우 2009년보다는 상대적으로 양호하겠으나 SOC투자 증가세 정체, 민간건설의 완만한 회복세 등으로 증가속도 둔화가 전망된다. 반면 설비투자는 국내외 경기 회복, 정부의 투자 인센티브, 환율 하락 등에 따른 투자여건 개선과 2008~2009년간 투자 부진으로 인한 투자 압력상승으로 비교적 높은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예측기관들은 2010년 경제성장을 5% 가까이 보고 있는데, 여기 제시된 전망과 투자 회복에 대한 시각차가 있기 때문이다. 그 동안의 투자부진 때문에 2010년 투자가 더 크게 반등할 것이라는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 전망의 주된 근거이다.
경상수지는 올해 415억 달러 흑자 전망보다 크게 축소된 약 150억 달러의 흑자가 예상된다. 상품수지는 수입 증가율이 수출 증가율을 상회하면서 흑자폭이 크게 축소되고 서비스수지는 환율 하락, 서비스 경쟁력 낙후 등으로 적자규모가 다시 확대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물가는 완만한 경기회복세로 수요측면의 상승요인이 크지 않은 데다 수입원자재 등 비용측면의 상승요인들이 환율 하락세로 상쇄되면서 3% 이내에서 안정될 것이다. 한편 시장금리는 정책금리 인상, 경기회복의 영향으로 상승 기조를 시현할 것으로 보았으며, 원/달러 환율은 달러 약세, 경상수지 흑자의 영향으로 하락세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표> 2010년 국내경제 전망
끝으로 12월 말부터 미국 달러화가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는 최근 미국 실물경제 지표 개선조짐이 더 계속되면 미국의 금리인상 시점도 예상보다 빨라질 수 있다는 관측을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금 보기에는 미국의 금리인상 시점이 앞당겨지면서 우리의 정책선택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다. 2008년의 글로벌 금융위기 때에 이어 새삼 세계경제가 끈끈하게 얽혀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허찬국 (한국경제연구원 거시경제연구실장, chan_huh@keri.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