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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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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봉급생활자와 무슨 관계가 있나?


흔히 부모로부터 많든 적든 약간의 재산을 물려받는 경우가 있다. 물론 빚만 남기는 부모도 간혹 있다. 우리나라의 상속세법은 일정규모 이하의 유산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상속을 받는 경우 과세대상 상속재산에서 여러 가지의 공제를 허용하는 방식이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사망으로 상속이 개시되면 기본적으로 2억 원의 상속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외에도 배우자 공제와 인적공제 등이 있는데, 배우자 공제는 30억 원을 한도로 과세대상에서 제외되며 인적공제는 자녀 1인당 3천만 원씩 과세대상에서 제외된다. 부모와 같이 살던 주택에 대해서도 주택가격의 일정비율에 대해서는 세금을 매기지 않는다. 또한 상속받을 유산보다 부채가 더 많을 경우에는 상속포기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이처럼 공제한도가 상당히 크기 때문에 상속세는 대부분의 봉급생활자와는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현실적으로 대개의 봉급생활자들은 자녀 또는 배우자에게 현재 우리나라 상속세법에서 허용하고 있는 공제한도 이상의 큰 자산을 물려주기 어렵다. 필자 또한 봉급생활자로서 노동을 제공한 대가로 받는 월급으로 다달이 대출이자를 갚고, 생활비를 지출하고, 퇴직 이후 노후를 위해 일정금액을 저축하지만 배우자나 자녀에게 물려줄 재산이 현재의 법정 공제한도를 초과할 것 같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상속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과연 ‘우리가 살고 있다고 믿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속세가 유지되어야 하는지 독자들에게 묻고자 한다.

상속세의 정책목표는 타당한가?

유산은 상속받는 자의 노력과 상관없는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과세되어야 한다는 것이 일반적인 상속세의 논리적 근거이다. 상속세를 통해 부의 세습을 막고 기회의 형평을 도모하자는 것이 기본 정책목표이다. 일견 정부가 개입해서 수행해야 할 일로 보인다. 그러나 하나의 사례만 살펴보면 상속세의 정책목표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알 수 있다. 가구의 소득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동일하지만 생활양식에서 차이가 있는 두 가족, A와 B를 생각해 보자. 여기서 모든 면에서 동일하다는 것은 심지어 자녀들의 지적 능력까지 동일하다고 가정하고자 한다. A라는 가족은 재산을 형성하기보다는 호화로운 소비생활과 최고의 자녀교육에 모든 소득을 소비하고 B라는 가족은 검소한 생활과 평균적인 자녀교육만으로 소득의 많은 부분을 저축해서 많은 재산을 형성했다고 하자.

두 가족의 가장들이 사망하는 경우 A가족의 가장이 남긴 재산은 전혀 없으므로 상속세는 과세되지 않는 반면 보다 검소한 생활로 재산을 형성했던 B가족의 경우에는 상속세를 내야 한다. 이러한 경우 상속세가 부의 세습을 막고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재산을 형성해서 유산으로 남겨주는 대신에 인적자본 형성에 많은 지출을 하고 상대적으로 호화로운 생활을 한 A가족의 자녀는 세금을 전혀 내지 않는 반면에 검소한 생활과 평균적인 인적자본 형성의 혜택만을 받은 B가족의 자녀는 상속세를 내는 것이 두 가족의 자녀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A가족의 자녀는 물려받은 재산은 없을지라도 과세대상에서 제외된 보다 많이 축적된 인적자본으로 장래에 보다 좋은 직장을 얻고 보다 많은 소득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B가족의 자녀는 평균적 인적자본만을 축적했고 A가족의 자녀들보다 검소한 생활을 했던 것에 대한 ‘징벌(?)’로 상속세를 내야 하는 것이다.

독자들은 두 가족의 생활양식 중 어떤 생활양식을 선택하겠는가? 필자는 당연히 A가족의 생활양식을 선택할 것이다. 보다 현명한 독자는 법이 정한 상속세 공제한도까지만 재산을 형성해서 물려주고 그 이상의 소득은 보다 높은 수준의 소비생활에 지출하거나 자녀의 교육에 투자해서 자신들의 자녀가 장래에 더 좋은 직장에서 더 많은 소득을 벌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A가족의 생활양식을 선택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저축의 감소로 인해 실물자본의 축적이 축소되고 인적자본의 축적과 소비만 증대하면 축적된 인적자본이 활용될 좋은 일자리가 충분하게 만들어지지 않을 수 있다. 과도한 상속세는 결과적으로 살아있는 동안 과소비를 유발하고 다음 세대의 과도한 인적자본 축적으로 효율적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하고 모두를 불행하게 할 수 있다.

‘부의 세습’과 ‘가업의 승계‘

‘세습’, 상당히 거부감을 주는 단어이다. ‘권력의 세습’ 못지않게 ‘부의 세습’은 반드시 없어져야 할 대상인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러나 ‘가업의 승계’라는 용어는 우리에게 지켜져야 할 지고의 가치를 이어받는다는 느낌을 준다. ‘부의 세습’과 ‘가업의 승계’가 무엇이 다른가? 피상속인의 재산을 상속인이 물려받는다는 점에서는 근본적으로는 같지만 굳이 구분하자면 ‘가업의 승계’는 선대에서 일군 기업을 후대가 물려받아 지속적으로 영위하며 경제발전에 이바지하는 경우를 말하는 반면 ‘부의 세습’은 선대의 재산을 후대의 영달에만 사용하는 경우 정도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도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지 못한 사람들의 질투심에 의한 작위적 구분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을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는 상속받은 후대의 자유의지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다시 말해 개인의 사유재산이 어떤 형태로든 침해당해서는 안 되고 개인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진다면 ‘가업의 승계’와 ‘부의 세습’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공공의 이익’이라는 개념이 개입되면서 선과 악의 개념이 우리의 머릿속에 자리 잡고 ‘가업의 승계’의 경우에는 세금부담을 덜어주고 ‘부의 세습’의 경우에는 무거운 세금을 물려야 한다는 논리가 형성되게 된다.

‘가업의 승계’조차 어렵게 하는 상속세

가업의 승계는 과거에 영위해 오던 사업을 지속적으로 유지한다는 것을 전제함으로써 상속받은 사업체의 고용과 투자활동이 계속 유지될 것으로 기대된다. 우리 사회에서 가업을 승계하는 경우가 부의 세습보다는 덜 차가운 시선을 받고는 있지만 이 경우에도 국가가 ‘부의 세습’의 경우보다는 가벼울지라도 여전히 상속세를 부과함으로써 ‘가업의 승계’가 어렵게 되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특히 중소기업을 후손이 승계하는 경우 보유지분의 일부를 상속세 납부를 위해 매각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실질적으로 안정적 경영권을 유지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현재 우리나라 상속세법은 가업을 승계하는 경우의 상속세 부담을 상속받는 사업체의 가치가 클수록 무겁게 과세하고 있다. 이러한 상속세제는 가업의 승계가 경제사회 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사회적 합의는 있지만 여전히 가업의 승계를 부의 세습의 일부로 보고 방지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가업의 승계로 용인하는 기업규모를 일정수준 이하로 규정하고 그 이상은 부의 세습으로 간주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상속세는 일반 봉급생활자와는 큰 관련이 없나?

상속세는 흔히 상위 1%의 계층에 해당하는 세목으로 생각하고 봉급생활자 등 일반 중산서민계층의 사람들은 큰 관심을 안 두고 있다. 그러나 상속세는 우리 일반 봉급생활자들의 생활에 매우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일반 봉급생활자는 기업에 제공하는 노동의 대가로 기업이 생산한 상품을 소비한다. 상속세가 과도하게 부과되는 사회에서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물적 자본의 축적이 어려워질 뿐만 아니라 가업의 승계 또한 어려워져서 근로자의 일자리가 불안정해질 수 있으며, 소비에 필요한 재화의 생산이 위축될 수 있다. 봉급생활자들이 저축을 통해 상속세 과세대상 이상의 부를 축적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는 않을지라도 상속세의 영향으로부터는 벗어날 수는 없다.

필자도 봉급생활자이지만 상속세 폐지에 찬성한다. 상속세 폐지는 보다 많은 자본이 축적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이는 우리의 생활에 필요한 재화를 보다 다양하게 공급해 주며 공급된 재화를 소비할 수 있도록 소득을 벌 수 있는 일자리를 보다 많이 우리에게 제공해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상속세의 폐지는 부유한 사람들의 세금을 깎아주는 것이어서 정서적으로 심한 반대에 부딪힐 수 있는 여지가 크다. 그러나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로부터 징수하는 상속세가 우리나라 총 국세 수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증여 분을 포함하여 2% 안팎에 불과하다. 이러한 수준의 세금을 거두면서 가업 승계를 어렵게 만들며 결과적으로 봉급생활자의 삶을 어렵게 만드는 상속세는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1%의 상위계층으로부터 상속세를 징수해서 봉급생활자에게 직접적으로 돌아오는 것이 무엇인가? 상속세를 폐지해서 결과적으로 보았을 때 보다 안정적이고 많은 일자리가 창출되는 것이 열심히 일하는 자들을 위한 진정한 사회복지일 것이다.

자본이득과세로의 전환이 필요

상속세를 폐지해서 자유롭게 가업을 승계하고 재산을 물려받도록 허용한 후 상속인이 추후에 상속재산을 처분할 때 발생하는 자본이득에 대해 소득세 수준으로 과세하는 방향으로 전환한다면 가업승계의 어려움도 사라지게 되고 상속세에 의한 자원배분의 왜곡도 바로 잡을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부의 편중을 우려할 수도 있겠으나 재산을 물려받은 후손이 그 재산을 지키고 키워갈 능력이 없다면 머지않은 장래에 그 재산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되고 말 것이다. 이는 시간의 문제일 뿐 굳이 국가가 나서야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 또한 내가 열심히 일하고 근검절약해서 축적한 재산을 내 자손에게 세금 없이 물려줄 수 있다면, 보다 큰 자본을 축적하고자 노력하는 기업가 정신이 우리 사회에 넘쳐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기업가 정신은 우리 경제의 중요한 성장 동력이 될 것이며, 투자를 촉진하는 가장 근본적인 처방일 것이다. 이제 한 번쯤 상속세가 필요한가에 대해 독자 여러분 스스로 되묻길 바란다.

김학수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hskim67@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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