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을 둘러싼 경쟁이 채 끝나지 않은 가운데 스마트TV의 주도권 다툼이 시작되었다. 디지털 시대를 대표하는 두 가지 ‘스마트’한 제품의 경쟁구도 이면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숨어 있고 경쟁의 진행과정을 통시적인 관점에서 조망할 때 재미있는 현상을 발견할 수 있다.
노키아ㆍ삼성전자ㆍLG전자 등 기존 휴대폰산업 주력업체들은 아이폰을 내세워 기존 시장을 재편하려는 애플의 등장으로 커다란 타격을 받았다. 하드웨어가 아닌 어플리케이션에 의해 수요가 결정되는 새로운 환경이 도래함에 따라 애플이 일약 시장의 최강자로 부상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역전 요인은 오래 전 PC산업에서 애플이 IBM에 의해 시장을 잠식당했던 바로 그 반대의 경우에 해당한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메인프레임 컴퓨터의 지존이던 IBM은 컴퓨터산업의 환경변화로 PC가 주력제품으로 등장하면서 급격하게 경쟁우위를 상실한다. 이때 PC산업의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른 것이 애플이고, 애플은 PC산업에서 한동안 높은 시장지위를 누리게 되었다. 메인프레임은 강자였으나 PC에 관한 한 후발이었던 IBM이 애플을 따라잡기 위해 선택한 방식은 OADG(open architecture development group)를 활용하는 것이었다. 자사의 소스코드를 공개하고 수많은 OADG로 하여금 IBM 컴패터블 PC와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도록 한 것이다.
반면에 애플은 여전히 독자개발을 고집하였고 소프트웨어ㆍ부품 등 모든 관련 사업을 수직통합의 방식으로 운영함으로써 초반의 부상에도 불구하고 이후 급속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그러던 애플이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나 스마트폰 분야에서 어플리케이션을 중심으로 시장을 재편한 전략은 다름 아닌 오픈방식, 즉 요즘 유행하는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과거에는 실패했지만 다시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전략전환으로 왕좌의 지위를 탈환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한국의 전자업체와 유관기관들은 스마트폰 분야에서 늦은 대응으로 선두를 빼앗겼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스마트TV의 주도권 경쟁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 민관합동의 협의기구를 설립하는가 하면 해외의 시장동향 파악이나 협력체제 구축에도 발 빠른 대응태세를 보이고 있다. 물론 우리 업체가 주도권을 잡으리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스마트TV의 플랫폼ㆍ콘텐츠ㆍ하드웨어 등 구성요소를 둘러싸고 치열한 기술경쟁이 벌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스마트TV가 관련제품과 차별화하여 어느 정도 시장을 형성할 것인지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과거 HDTV 분야에서 앞서가던 일본을 제치고 상황을 반전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 당시 일본은 아날로그 기반의 HDTV에 거액의 투자를 하여 시장을 선점하고 있었기에 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후발주자인 한국은 디지털 전환이라는 기회를 포착하였고 정부ㆍ민간 공동의 개발위원회를 설립하여 공동 R&D를 추진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였다. 그 결과 오늘날 디지털TV 분야에서 엄청난 시장성과를 거두었고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게 되었다.
그러나 게임은 여기서 끝난 게 아니다. 이제 디지털TV의 다음 세대, 즉 포스트 디지털TV의 분야에 속하는 스마트TV에서 새로운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현재 경쟁구도에서 한발 앞서가는 구글과 애플, 그 뒤를 바짝 쫒는 삼성과 LG, 그 밖의 수많은 업체들 간에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과거 디지털TV에서 한국에 밀려 스마트TV 전쟁에서 설욕을 노리고 있는 일본과 무섭게 추격해 오는 중국의 대응도 눈여겨봐야 한다.
PC산업의 변화와 기업들 간의 순위 다툼에서 찾아볼 수 있는 성공법칙은 출전선수는 다르지만 휴대폰산업으로 이어졌고 다시 약간의 선수만 바뀐 채 TV산업에서 재연되고 있다. 다른 산업도 그 기본적인 궤도는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사례로부터 우리는 많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역사는 되풀이되고 성패는 뒤집어지기 마련이던가. 어제의 성공이 내일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고, 과거에 좌절한 기업이 다시 부상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다만 스마트폰과 스마트TV 산업에서 보는 것처럼 한때의 성공과 이후의 반전이 되풀이되는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고 경쟁의 양상은 점차 복잡해지고 있을 뿐이다.
스마트폰과 스마트TV 산업의 과거와 현재에 진행되고 있는 경쟁구도와 전략전환을 살펴보면 과거의 성공체험을 부정하며 끊임없이 변신하고 네트워크를 중시하는 것만이 살 길이라는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디지털 시대의 총아로 불리는 이들의 사례는 경쟁의 본질이 무엇이고, 성공요소는 어디에 있는지를 배우는 데 더 없이 좋은 교훈을 제공한다.
김용열 (홍익대학교 국제경영학과 교수, yykim@hongik.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