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노사분쟁은 노사는 물론 일반 국민들에게도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민주주의를 유지 발전시키기 위해서 갈등은 어떠한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그리고 정부와 정치권, 상급노동단체와 언론 및 시민단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특히 갈등해결 문화가 선진화되지 못하면 민주주의가 무질서와 폭력 등으로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점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 경제는 수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기업의 지속적인 구조조정이 중요하다. 이런 점에서도 쌍용차 노사분쟁은 앞으로 발생할지 모르는 다른 기업의 구조조정을 둘러싼 노사갈등 해결에 소중한 교훈을 남겼다. 기업이 외부의 환경 변화에 따라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하면 금방 경영위기와 고용불안이 닥쳐올 수 있으며, 이러한 상황 앞에서 노사가 대립하는 것은 스스로를 죽이는 행동이라는 점을 보여 주었다.
뿐만 아니라 쌍용차 노사분쟁은 노조가 경영참여를 강화하고 단체협약에 고용보장 장치를 몇 겹으로 만든다고 해서 고용불안을 막을 수는 없다는 점도 보여주었다. 기업이 경영위기에 빠지면 단체협약으로 만든 고용보장 장치도 무용지물이 되고, 이에 대한 과신은 오히려 노동자들이 자신이 처해 있는 고용 상황을 오판하게 만들고, 경영진도 위기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도록 만들어 상황을 더 악화시킨다는 점을 쌍용차 노사분쟁은 보여주었다.
쌍용차 노사분쟁을 계기로 노사는 물론 정부와 정치권ㆍ상급노동단체 등은 구조조정 등의 문제를, 노사 갈등을 효과적으로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한 새로운 관행을 만드는데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이다. 우선 노사는 갈등을 해결하는데 협상이 최선의 방법이라는 점에 대해서 신념을 가질 필요가 있다. 불가피하게 파업이 발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협상의 연장선상에 서있어야 할 것이다. 쌍용차 노사분쟁이 옥쇄파업으로 시작하면서 정상적인 협상이 어려워졌고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지니 분쟁은 폭력을 동원한 파업, 생명을 담보로 하는 파업으로 점점 악화되었다.
협상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입장이 아니라 대안을 논의해야 한다. 쌍용차 노사분쟁에서 보았듯이 구조조정의 반대 또는 강행이라는 입장만으로 협상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가 노조가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대안으로 무급휴직문제를 제시하면서 협상이 본격적인 궤도에 올라갔다. 협상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갈등을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의 문제로 그리고 갈등 해결의 대안을 당위성의 문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로 접근해야 할 것이다. 구조조정은 신자유주의의 문제고, 상하이차의 쌍용차 인수와 철수에 문제가 많다는 비판은 어떻게 하면 쌍용차를 빨리 회생시킬 수 있느냐는 절박한 문제에 대한 논의를 가로막고 시간만 낭비하게 만들었다.
갈등해결의 대안에 대한 협상이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미흡한 대안으로 보이더라도 논의의 가능성을 열어 놓고 협상해야 할 것이다. 쌍용차 노사분쟁에서 쟁점이 되었던 정리해고만 하더라도 당장에는 일자리를 잃느냐의 문제이지만 시간을 가지고 본다면 고용안정을 회복하기 위한 변화의 문제로 볼 수 있다. 정리해고와 함께 노조가 불안감을 느끼는 핵심 문제는 실직으로 인한 생계불안과 재취업 등의 문제라면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노사가 머리를 맞대어야 할 것이다. 만일 노사가 정리해고의 충격을 줄이기 위해서 한편으로는 기업회생을 위한 노조의 협력 조치에 대해 논의하고 다른 한편으로 실직자의 소득보조나 재취업 지원 프로그램 등에 대한 문제를 논의했다면 쌍용차 노사협상의 양상은 180도 달라졌을 것이다.
노사 당사자의 갈등과 협상에 대한 인식뿐 아니라 조정자 역할을 하는 정부와 정치권, 상급노동단체 등의 인식도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쌍용차 노사분쟁에서 정부가 보인 전략적 방관자적 태도는 노동문제가 정치문제로 변질되어왔던 국가적 고질병을 해결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것으로 보이지만 조정자로서 역할은 미흡하였다. 불법 파업이기 때문에 정부가 공식적으로 조정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지만, 노사가 합의해 정부에 조정을 요구하면 협상을 도와줄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했다. 정부가 조정을 통해서 협상을 지원한다고 해서 불법 행위에 대한 책임 규명과 처벌이 면제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상급노동단체는 단위 사업장의 노사문제 해결은 당사자들에게 맡겨야 할 것이다. 쌍용차 노사분쟁처럼 단위 사업장의 문제를 상급노동단체가 책임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이것을 이념적으로 확대해석하면서 전 사업장의 문제로 비화시켜 개입하는 것은 삼가야 할 것이다. 이렇게 하면 해당 사업장의 노동자들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상급노동단체의 리더십과 조직도 흔들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다. 단위 사업장의 노사 당사자가 협상의 교착상태에 빠져 있을 때 해당 노조가 유연성을 발휘하도록 지원하거나 새로운 합의 대안을 제공해 돌파구를 열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선진국의 노동운동 관행일 뿐 아니라 경제 환경 변화에 따라 상급노동단체에 소속되어 있는 단위 노조들이 처해 있는 상황의 차이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개별 기업의 노사문제에 대한 정치권의 개입은 금물이다. 진보 성향의 정치권은 노조의 투쟁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데 그러한 투쟁은 해당 노조와 그 노동자들에게는 상처뿐인 영광으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진보 성향의 정치권이 일반 국민들에게 외면 받는 결과를 초래해 노동자 전체의 권익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수행하기 어렵게 만든다. 영국의 노동당이 1980년대 초반 광산 등 개별 기업의 파업에 깊이 개입하면서 선거에 연패를 했고 그 이후 노동계와 관계를 재정립하며 제3의 길이라고 하면서 정책노선도 바꾸어 다시 일어난 경험이 있다. 또 이념적 색채가 더 강했던 일본의 진보 정당은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이유로 지지 기반을 잃어갔고 그 이후 지금까지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 유념해야 할 것이다.
김태기 (단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withkim21@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