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미국 LA에 다시 머물게 되면서 가장 뚜렷하게 피부로 느낀 두 가지는 LA 기후도 변했다는 것, 그리고 번화가 보도에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것이다. 특히 걷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 흥미로웠던 것은, 한낮에도 걷는 사람들이 적은 이유가 안전에 대한 걱정 때문이기도 하다는 당시 사람들의 설명에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어서다. 그렇다면 LA는 10년 전보다 더 안전해진 것일까?
궁금증에 답이라도 해주듯 몇 달 전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Economist)는 LA가 있는 미국뿐 아니라 많은 선진국들에서 범죄율이 감소하고 있다는 내용의 머리기사를 실었다. 1990년대에 많은 범죄전문가들이 ‘생명에 대한 존중과 미래에 대한 경각심이 부족한 아이들’ 때문에 21세기의 범죄율은 폭증할 것이라고 예측했던 터라, 범죄율 감소는 의외의 현상이라는 것이다. 기사에서 분석한 범죄율 감소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는 CCTV 설치나 경보시스템, DNA 데이터베이스의 구축 등으로 범죄를 저지르는 것이 ‘위험’해졌다는 것이었다.
우리나라의 상황은 어떠한가. 일반적으로 범죄율은 인구 10만 명당 범죄사건수로 나타낸다. 사람이 많으면 나쁜 일도 많이 생기므로 보정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전체 범죄율은 1990년에서 2004년까지 증가추세이다가 이후 8년간 급락과 급등, 급락을 반복하고 있다. 가장 최근 통계인 2012년에는 11년보다는 다소 높지만, 정점이던 2008년에 비해서는 범죄사건이 인구 10만 명당 600여건 감소했다.
그러나 사람들의 치안에 대한 인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범죄들, 예컨대, 강력범(살인, 강도, 강간, 방화, 조직폭력)이나 절도범에 초점을 맞추어 보면 상황은 좋지 않다. 이들 범죄율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급등했다가 2000년대 초반 다소 감소했으나 이후 증가하여, 2012년에는 1990년의 두 배를 넘었다. 1990년 대비 2012년 절도범은 2.6배, 강력범은 2배 증가한 것이다.
국가의 핵심임무 중 하나인 치안, 범죄의 비용이라도 늘려야 범죄율 경감이 가능해
영화나 소설에 등장하는 싸이코패스처럼 범죄자를 치료가 필요한 병리적 문제를 가진 사람으로 접근해야 하는 범죄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많은 범죄가 범죄자의 ‘선택’이기 때문에, 경제학에서는 범죄 역시 그 행위에 따른 편익과 비용을 분석하는 것으로 접근해 왔다. 즉, 범죄는 그것을 저지른 사람이 편익이 비용보다 크다고 판단한 결과라는 것이다.
범죄의 편익은 비교적 명확하지만, 범죄의 비용은 다소 복잡하다. 범죄자로서는 범죄를 계획하고 실행하는 데에 비용이 들어갈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 더 큰 비용은 잡혔을 때 감당해야 하는 벌이다. 그러나 잡히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에 범죄자의 입장에서 비용은 확률적이다. 즉, 범죄의 비용은 잡힐 가능성(확률)에 잡혔을 때의 벌을 곱한 것이 된다.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편익을 줄이거나, 비용을 늘리거나, 둘 다 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범죄의 편익을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할 수 있는 일은 잠재적 범죄자들이 느끼는 잡힐 확률이나 처벌 수준을 높이는 것이다. 하지만 처벌 수준을 높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인도적 차원에서 고려할 것도 많고, 범죄 간 처벌 수준의 형평성이 지켜져야 하는 문제도 있다. 또한 처벌 수준이 급격하게 올라가면 범죄자는 잡힐 가능성을 낮추기 위해 성폭행 후 살인을 저지르는 등 추가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형기가 길어지면 감옥을 유지하는 데에 더 많은 세금이 드는 것도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결국 가장 중요한 범죄 경감책은 잠재적 범죄자들이 죄를 지으면 잡힐 가능성이 높다고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다. 현재 데이터와 기술의 수준은 이미 일어난 범죄의 해결뿐만 아니라 앞으로 일어날 범죄의 장소와 시간대도 예측할 정도라고 한다. 예방이 어느 정도 가능해 졌다는 말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물론 한정된 재정을 사용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하지만, 국가의 기능 중 기본 중의 기본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모두들 복지국가를 말하는 지금, 정부의 역할은 국방과 치안을 중심으로 최소화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적 가치관은 ‘야경국가’라는 이름으로 옛이야기 취급되지만, 국방과 치안이 국가의 핵심 임무임은 변하지 않는다. 선진국들의 범죄율 감소를 같이 반길 수 없는 현실도 안타깝고, 그것이 기본에 관한 것이라 더욱 씁쓸하다.
민세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sejinmi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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