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는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를 주 내용으로 하는 의약품 거래 및 약가제도 투명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을 일부 개정하고 오는 10월부터 시행키로 했다.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는 현행 ‘실거래가 상환제도’를 개선한 것으로 병ㆍ의원 등 의료기관이나 약국이 제약업체로부터 의약품을 정부 고시가보다 싸게 구매하는 경우 약값의 차액을 의료기관과 약국, 그리고 환자 모두에게 인센티브로 지급하고 이듬해에 그 차액만큼 의약품가격을 인하해 준다는 내용을 담은 제도이다.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가 현행 ‘실거래가 상환제도’보다 낫다고 하는 정부의 주장을 간단한 예를 들어 살펴보자. 현행 ‘실거래가 상환제도’하에서는 의료기관이나 약국이 고시가 1,000원인 약을 1,000원에 구입했다고 청구하면 건강보험이 700원, 환자가 300원을 부담하였다. 의료기관이 상한가로 약을 구입하는 것이 낫지 그보다 낮은 가격에 구입할 인센티브가 전혀 없었다. 그러나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하에서는 의료기관이나 약국이 약을 싸게 구입할 경우 그 차액의 70%는 의료기관의 이윤이 되며 30%는 환자의 약값 부담 감소분이 된다. 즉 상한금액이 1,000원인 약을 900원에 구입했을 경우 100원의 차액에 대하여 의료기관이 70원, 환자가 30원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는 이 제도의 도입으로 매년 5%의 약가 인하효과가 발생하여 환자부담금이 연간 1,546억 원 감소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는 “리베이트 근절을 통한 약가인하 및 약제비 절감”과 “리베이트의 R&D(연구개발)투자로의 선순환 유도”라는 도입 취지하에 리베이트를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을 모두 처벌하는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과 R&D 투자액이 높은 제약회사의 약제비를 감면해 주는 ‘제약회사 R&D투자 유인제도’로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가 시장원리에 따라 약가를 낮추기 위해 도입한 이 제도는 그동안 지속되어 온 약제비와 관련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약가 정책에 대한 의료기관ㆍ제약업계ㆍ소비자ㆍ정부 등의 이해관계가 각기 다르기 때문에 이 제도의 시행에 반대의견 또한 만만치 않다. 먼저,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는 약가인하 효과는 전혀 없이 리베이트만 양성화하게 될 것1) 둘째, 기존의 ‘실거래가 상환제도’를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악화시킬 것2) 셋째,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악화시키고 리베이트를 심화시키는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3) 이러한 반대의 목소리는 각각 다른 이해집단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점에서 본고에서는 좀 더 객관적인 평가와 개선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우선 ‘리베이트 쌍벌제 도입’은 제한적이나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형사처벌 조항을 신설하고 1년으로 자격정지를 확대한 것은 리베이트의 불법적인 관행에 대한 경고로 인식될 것이다. 하지만 일부에서 제안한 것처럼 적발 시 보험약가를 리베이트만큼 인하하고 리베이트 수수금액과 위반 횟수에 따라 의ㆍ약사 면허를 취소하는 것과 같은 강력한 조치는 제도 시행 후 진행과정을 지켜본 후 조심스럽게 검토해야 할 사항이다.
그러나 ‘제약회사 R&D투자 유인제도4)’는 연구개발을 촉진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지원비용을 건강보험 재정으로 충당한다는 점에서 재정건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소지가 있다. 제약업계의 추정치에 따른 ‘R&D투자 유인제도’의 조건에 해당되는 제약사 10곳의 평균 매출액 3,000억 원에 대한 10% 약가 인하의 효과는 300억 원인데, 약가인하 금액의 50%인 150억 원을 매년 건강보험에서 충당케 하는 것은 큰 부담일 수 있다. 그렇잖아도 국민건강보험의 적자가 상당히 큰 규모인 것을 감안할 때 이러한 비용의 증가는 향후 건강보험 재정에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
약가인하를 위한 가장 핵심적인 방안은 복제약 가격의 인하이다. 지금까지의 관행은 제약사들이 R&D보다는 복제약 판매에 치중하여 리베이트가 성행하였다는 것이다. 의약품의 특성상 오랫동안 지속해야 하는 R&D보다는 복제약 판매가 비용이 덜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제약품에 대한 가격경쟁을 통하여 특허 만료 시 오리지널과 복제약 가격 모두 외국처럼 특허만료 이전 가격의 15~30% 수준으로 낮출 수 있다면 제약사는 리베이트를 통한 복제약 판매보다는 R&D를 통해 성장하려고 할 것이다.
제약산업의 경쟁력은 오래된 과제이다. 국내의 제약업계는 몇몇 개의 대기업을 제외하고 수백 개의 군소업체로 시장이 형성되어 왔다. 시장 진입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영세한 규모의 기업들은 신약제품에 대한 R&D보다는 기업의 영업력에 치중하여 왔기 때문에 제약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되었던 것이다.5) 따라서 이번의 정부 시책을 계기로 품질 향상을 통한 제약산업의 경쟁력을 제고시킬 수 있는 자구책을 마련해야 한다.
의료서비스를 비용의 관점에서 억제하지 말고 건강보험수가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 약가인하를 통해 발생될 70%의 이익을 의료기관에 돌려주고자 하는 의도는 근본적으로 현행 건강보험수가가 낮기 때문이다. 규제 완화를 통한 의료서비스의 수요와 공급이 작동하도록 시장친화적 접근이 필요하다. 이는 궁극적으로 의료서비스의 질을 향상시켜 의료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가능한 경우에 소비자(환자)의 약품 선택권을 인정해야 한다. 현행 제도하에서 약품은 환자가 아닌 의료진이 선택하는 구조이다. 의료진의 선택은 소비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결정될 수 있다. 소비자에게 약품 선택권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처방전에 동일성분의 오리지널과 복제품 각각의 가격 정보 등을 제시해 주어야 할 것이다.
설 윤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seoly@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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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복지부의 ‘시장형 실거래가 상환제도 시행을 위한 입법예고안’에 대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의 입장
(2010년 3월 23일)
2) 대한의사협회의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의견’을 참조함 (2010년 5월 4일).
3) 제약협회가 경영컨설팅 그룹에 연구용역을 실시한 결과 향후 제약시장에 3조원 상당의 매출감소 충격 발생을
전망함.
4) R&D투자 금액이 500억 원 이상이고 투자비율이 10% 이상인 제약사에 대하여 약가 인하 금액의 40~60%를
면제하여 준다는 규정임.
5) 우리나라의 2004년 10대 제약기업의 매출액 대비 R&D 투자는 평균 6.1%로 세계 10대 제약기업의 평균인
21.0%보다 현저히 낮음[의료산업선진화위원회(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