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경제학자인 슘페터(Joseph Schumpeter, 1883~1950)는 경제ㆍ사회 전반의 문제를 40여 년에 걸쳐 통찰한 후 써낸 『자본주의ㆍ사회주의ㆍ민주주의』(1942)에서 자본주의 문명의 후기에 나타나는 두드러진 특징을 다음 몇 가지로 지적했다. 첫째로 지식인들의 자본주의에 대한 적대감과 이들에 의한 노동운동(계급투쟁)을 위한 이론과 슬로건의 제공, 둘째로 교육장치 특히 고등교육시설의 확장으로 배출된 지식인의 실업가능성(고등교육 이수자가 자신의 학력에 걸맞는 직장을 구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육체노동을 직업으로 삼기를 심리적으로 꺼려하는 경향에서 발생), 셋째로 늘어나는 공공관리부문에 지식인(적대감을 가진)을 끌어들일 수밖에 없는 현실, 넷째로 출산율의 저하와 대가족 중심의 가정생활가치의 소멸, 끝으로 기업가정신을 가진 창업자 후손들의 귀족화로 인한 기업경영의 회피현상 등이다. 슘페터의 이야기를 우리나라의 현실과 비교해 보는 일은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의 혜안을 이용하는 것이 그다지 손해 볼 일도 아닐 것 같다.
줄어들지 않는 반기업정서(미국의 23%, 일본의 45%, 한국의 70%) 속에서 반자본가 및 친노동자 정부의 등장은 이미 경험한 바가 있고, 직장을 찾지 못한 청장년실업을 해소하기 위해 희망근로란 형태로 희망이 전혀 없는 편법의 직장을 만들기도 하고, 외환위기나 금융위기를 만나면서 정부부문(사법부를 포함)에 대한 의존은 오히려 더 늘어가기만 하고, 정권이 들어서기만 하면 공기업부문의 민영화를 내세우다가도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리고, OECD 국가 중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을 보여주는 등등 슘페터가 이미 70년 전에 색칠한 그림들을 우리들은 데자뷰처럼 재현하고 있다. 그렇다고 우리가 자본주의 문명의 후기를 맞이하리만치 늙었다는 기분은 들지 않는다. 차라리 자본주의 문명의 후기가 도래하는 일을 지연시키는 역할을 할 그 기업가정신을 다시 한번 부활시키는 일이야말로 지식인의 적대감을 해소하고 고등실업자를 줄이고, 공공부문을 축소하고, 공기업을 민영화하며, 그리고 저출산율의 덫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아닐까하고 위로해 본다.
경제를 성장시키는 동력으로 아담 스미스는 분업을, 마샬은 기술을, 하이에크는 지식의 분산을, 노스는 제도를, 바로는 경제적 자유를, 삭스는 시장개방을, 헌팅턴은 문화를 꼽았다. 신경제를 맞이하여 경제학자 로머와 루카스는 R&D가 경제성장에 기여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중국은 R&D 지출이 적은 데에도 경제성장률이 높고 일본은 R&D 지출이 많은 데에도 경제성장률이 낮은 까닭을 조사한 연구에 의하면 중국에서는 기업가정신이 개입하였기 때문이라고 한다.1) 학자들은 1990년대 이래 유럽 국가들이 미국과 캐나다보다 낮은 경제적 성과와 높은 실업률로 고통을 받았던 원인을 복지국가란 이름하의 분배위주의 경제정책에서보다는 기업가정신이 결여된 데서 찾았다. 여기서 기업가정신도 경제를 성장시키는 엄연한 하나의 원동력이란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기업가정신을 어디서 발견할 것인가?
경제학자 윌리엄 보몰(William Baumol)은 기업들 사이에 벌이는 경쟁을 "회사 기업가정신"이라고 이름 붙여 여기에 커다란 기대를 걸었다. 가령 잭 웰치의 GE는 경쟁에 성공을 거둔 회사 기업가정신의 대표적인 귀감으로 거론된다. 그러나 좀 더 내면으로 들어가 보면 5년 만에 직원 수를 41만 1천명에서 29만 9천명으로 줄인 GE의 잭 웰치는 수익극대화의 의무만을 성실히 수행하였을 뿐 기업가정신(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정신을 포함)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결론을 내리더라도 무리는 아닌 것 같다.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발달하여 대기업이 지배적인 곳에서는 사유재산을 옹호하려는 사람이 사라질 것이라고 전망하였다. 대기업을 구성하는 유급임원, 대주주, 소액주주들의 이익은 사업을 한 사람이 소유하는 기업가의 이익과는 다르다고 지적하였다. 기업이 혁신을 통해 창조적 파괴를 일으키고 고용창출 등의 사회적 의무를 다하는 것은 “소유자 기업가정신”에게서는 가능한 일이지만 대주주인 기관투자가나 펀드 매니저, 유급의 전문경영자로부터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유급임원은 자기의 이익을 주주의 이익과 동일시하지 않고, 대주주의 의지는 1인 소유자의 의지에 미치지 못하고, 소액주주는 이익에 따라 항상 떠날 채비가 되어 있는 집단이다. 슘페터의 지적처럼 자신 소유의 공장을 지배하기 위해서 경제적ㆍ육체적ㆍ정치적으로 싸우려고 하는 의지, 필요하다면 공장계단 위에서 죽기까지 하려고 하는 기업가정신을 대주주나 유급의 전문경영자 및 소액주주에게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 측면에서 슘페터의 염려와는 달리 귀족화되지 않은 국내 대기업의 창업자 후손이 전문경영인의 뒷받침을 받으면서 경영일선을 지휘하는 현실은 다행스런 일이다. 근래 삼성, LG, 현대, SK가 세계적 기업으로 성공을 거둔 배경에는 창업자 후손이 경영일선을 지키고 전문경영인들이 저마다의 역할을 다하였기 때문이다.
금융위기를 맞고서도 또 다시 천문학적인 금액의 보너스를 챙기려는 월가 투자은행 직원들의 탐욕을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경고하였는데 기업가정신이 존재하지 않은 주인 없는 조직에서는 구성원들, 특히 최고(전문)경영자의 모럴헤저드를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사건이다. 동시에 기업가정신은 의사결정에서 오는 이득과 그에 따른 비용의 부담자가 일치해야 제대로 발휘된다는 점도 일깨워준다. 주인 없는 공기업이나 금융기관을 제외하고는 주인 있는 국내 대기업에서 성과와 무관하게 거액의 보수가 임직원에게 지급되었다는 이야기를 아직 들어보진 못했다. 기업가정신을 어떻게 부활시킬 것인가?
미국의 주정부를 대상으로 조사한 연구에 따르면 양질의 법적 제도를 가진 주정부에서는 주민 1인당 높은 벤처자본, 주민 1인당 높은 특허출원율, 개인소유기업의 빠른 성장과 높은 기업신설율을 보여주었다고 한다.2) 우리나라의 경우 기업가정신을 고취시키는 금융 및 재정 지원사업이 이루어지긴 했지만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각국의 경험에 따르면 정부가 대출이나 교육프로그램 등과 같은 기업가적 투입을 보조해 줄 목적으로 만든 수많은 정부 프로그램이 실제로 기업가정신을 촉진하는데 성공을 거두지 못한 이유는 게임의 룰이 빈약한 상태에서는 제아무리 재원투입을 늘린다고 하여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없기 때문이라는 데 있다. 근본적인 제도개선 없이는 기업가정신을 기대할 수 없다는 귀중한 경험을 얻은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처방은 무엇일까?
소유권 없이는 기업가정신이 발휘되지 않으므로 무엇보다도 창업기업에 대한 소유권을 보장해주는 제도, 예컨대 중소기업가들의 기업가정신을 위해 상속세를 인하하는 것은 물론, 대기업가들의 기업가정신을 위해 복수ㆍ차등의결권제와 차등배당제(배당목적의 소액주주와 기관투자가에겐 배당금으로 우대하고 지배목적의 창업주주에겐 의결권행사로 우대) 또는 황금주(창업기업이 창업자가족의 의사와는 달리 매각되는 의결에 반대할 수 있는 권리주)를 선택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요약컨대 오너십의 보장이 없이 기업가정신을 거론한다는 것은 마치 덴마크의 왕자가 없는 햄릿을 이야기하는 허상과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유동운 (부경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dwyu@p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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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Minniti, M., Moren Lévesque(2008), Entrepreneurial types and economic growth. Journal of Business
Venturing.
2) Sobel, Russell S.(2008), Testing Baumol: Institutional quality and the productivity of entrepreneurship,
Journal of Business Venturing 23, pp.641-6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