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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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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위기와 미국의 분열


조사기관마다 차이가 있지만 오바마 미국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은 취임 직후 최고 82%를 기록한 적이 있다. 그러나 1년 반이 지난 지금 그에 대한 지지율은 40%대 초반까지 하락했다. 역대 미국 대통령 선거 사상 가장 많은 득표를 통해 상대당 후보에 비해 두 배나 많은 선거인단을 확보하며 압승을 거두었던 그가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집권 민주당의 패배를 불러올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있다.


불과 1년 반 만에 국민들의 지지가 이처럼 끝없이 추락하는 모습을 보면 대중적 인기가 얼마나 허망한 것인가를 느끼게 된다. 특히 집권 이후 그가 거둔 성과를 살펴보면 유권자들의 표심이 얼마나 변덕스러운 것인지를 잘 알 수 있다. 지난 3월 마침내 의회를 통과한 의료개혁법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때 처음 만들어진 건강보험제도에 대한 거의 70년만의 대수술이었다. 건강보험이 연방 재정적자의 주요 원인이었기에 닉슨ㆍ레이건ㆍ클린턴 등 전임 대통령들이 시도했으나 번번이 실패했던 사안을 취임 초부터 1년 넘게 밀어붙여 입법에 성공한 것은 분명 대통령으로서 오바마의 정치적 승리로 평가될 수 있다.


또한 지난 7월 역시 의회를 통과한 금융개혁법도 현재 미국의 경제적 위기를 초래한 원인이 된 월가의 도덕적 해이와 실적만능의 무분별한 행태를 바로잡기 위한 시도로서 꼭 필요한 일을 한 것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지난 1년 반 오바마의 경제팀은 대공황 이후 가장 극심했던 경기하락의 추세를 일단은 멈추는 데 성공했다. 비록 아직까지는 확고한 경기회복의 조짐이 보이지 않지만 자칫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경제 전체가 함께 붕괴되는 매우 위험한 상황은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하락하고 있는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있다. 현재 미국 언론에 가장 많이 언급되는 지지도 하락의 이유로는 경제가 안정되고 있다는 기운을 국민들이 직접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즉 아직도 실업률이 두 자릿수에 가까운 가운데 경기가 나아지고 있다는 뉴스는 나와는 상관없는 일인 것처럼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신세대 전기자동차용 배터리공장이 착공되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는 소식보다는 자기 주변에 주택을 차압당한 친척이 아직 정착할 곳을 제대로 정하지 못하고 있고, 실업자가 된 친구 또한 여전히 일자리를 찾아 헤매는 모습이 더욱 생생하다. 이런 와중에 역사적인 의료개혁법이나 금융개혁법이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지 관심을 가질 만한 여유도 없다. 다만 옆집 사람의 주장에 의하면 그 법안들은 오로지 이미 눈덩이처럼 부풀어난 연방정부의 재정적자를 더욱 키우게 될 뿐이라고 한다. 사실 의료보험제도와 금융감독 체제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개혁방안에 대해 민주당과 공화당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의료개혁법에 대해서는 찬성표를 던진 공화당 국회의원이 상하원을 통틀어 단 한 명도 없을 정도였다. 그만큼 워싱턴 정가는 미국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놓고 극심한 논쟁에 휩싸여 있는 것이다.


사실 오바마 대통령이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배경에는 그가 워싱턴 정계의 오랜 파행을 깨고 분열된 국가를 하나로 통합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비교적 구태에 물들지 않은 초선의 연방 상원의원으로서 또한 최초의 흑인대통령으로서 헌법에 언급된 하나로 연합된 연방을 실현하기에 그보다 적합한 인물은 없어 보였다. 그러나 취임 후 불과 1년 반이 지난 현재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더 분열되어 있는 상황으로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서 뿐만 아니라 그들 내부에서도 스스로 분열되어 있는 모습이다. 소위 TEA(Taxed Enough Already라는 뜻) Party의 극우 보수주의자들은 연방정부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면서 11월 중간선거에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인물들을 공화당 후보로 내세우려 움직이고 있다. 반면 민주당의 급진세력들은 의료개혁 등의 내용이 상당히 미흡했으며 이민 문호, 동성애자 군복무 등의 문제에 있어 오바마 대통령이 자신의 선거공약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하고 있다고 비난한다.


자신이 다니던 교회 목사의 인종차별적 설교내용 때문에 선거운동 기간 중에 불거진 위기를 극복하게 해준 오바마의 연설 제목은 “더 완벽한 연합” 이었다. 여러 면에서 오바마와 많은 공통점이 있다고 거론되는 링컨 대통령이 처음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계기가 된 연설의 제목은 “분열된 집안”이었다고 한다. 당시 노예제 폐지를 둘러싼 분열은 사실 농업기반의 국가발전을 선호한 남부 농장주 세력과 공업화를 통한 산업발전을 바라는 북동부 신흥 상공인 세력의 충돌이었다. 국가발전 방향에 대한 이 같은 논란은 결국 남북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수단을 거쳐 해결될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 눈부신 산업화 과정을 거쳐 세계경제의 주도권을 거머쥔 미국은 20세기를 호령하였으나 이제 새로운 세기를 맞아 다방면에서 거센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미국 산업화의 꽃이라던 자동차를 비롯한 제조업 분야에서 미국이 경쟁력을 상실한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고, 에너지 등 신산업 분야에서도 미국의 출발은 다소 늦은 감이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문제인 것은 그러한 신산업을 이끌어 갈 인재를 키우기에 미국의 교육제도가 매우 낙후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난 1년 반 동안 논란을 겪은 건강보험이나 금융개혁은 아직 오바마가 약속한 개혁의 시작에 불과하다. 교육을 비롯한 새로운 발전원동력을 찾기 위한 근본적인 개혁은 아직 시작해 보지도 못한 상황에서 미국은 분열되어 방황하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에게 분열된 집안을 통합하고 더 완벽한 연합을 실현하기 위한 마땅한 수단이 현재로서는 없어 보인다. 그것은 올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위협받는 민주당과 오바마의 위기이기보다는 어쩌면 미국의 위기가 아닌지 모르겠다. 이러한 미국의 모습은 현재 여러 문제로 국론 분열을 겪고 있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로 비춰지지는 않는다.


권영민 (명지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교수, y_kwon@mj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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