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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차업체 사내하청 근로자관련 대법원 판결의 의미와 과제


대규모 제조공장의 사내하청 근로자 문제가 다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7월 22일 대법원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의 사내하청업체에서 일하다 2005년 해고된 근로자에 대해 이들이 비록 사내하청업체 소속이지만 현대자동차의 노무지휘를 받았기 때문에 파견근로자로 보아야 한다는 취지의 판결을 하여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구파견법에 따라 이들은 근무기간 2년을 넘긴 시점부터 현대차에 고용된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우리나라 산업현장에 미치는 파장이 상당하리라 예상된다.


노동계는 상당히 고무되어 있다. 그동안 사내하청 근로자가 원청기업의 근로자라는 주장을 하며 노동위원회에 제소하는 등 투쟁을 해왔으나 고등법원까지 인정을 받지 못하였는데, 근무기간이 2년 넘은 파견근로자는 원청회사의 근로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조는 대규모의 종업원 지위 확인 소송과 임금체불 소송을 준비 중이다.


또한 이번 판결을 근거로 완성차업체에 대한 비정규직 노조의 직접교섭 요구는 더욱 거세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동안 현대차 비정규직 노조의 현대자동차에 대한 직접교섭 요구에 대해 중앙노동위원회는 현대차에 직접교섭을 강제할 수 없다는 판정을 내려왔다.


자동차업계는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특히 지금까지 노동위원회와 법원은 원청업체의 사용자성을 부정하고 과거 파견법의 직접고용주 간주 규정이 적법한 근로자 파견의 경우에만 적용된다는 취지의 판결을 해왔기 때문에 대법원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였다. 이번 판결로 영향을 받는 현대자동차뿐 아니라 대우자동차, 기아자동차 등도 바싹 긴장하고 있다. 유사한 형태로 사내하청 근로자를 활용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는 상황에서 1만여 명으로 추정되는 완성차업체 사내하청 근로자의 처리문제가 당장 발등의 불이다.


조선이나 철강업계에서는 자동차업체와는 달리 같은 라인에서 일하지 않고 업무가 분리되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는 사내하청 근로자들이 ‘지원’이란 이름하에 원청업체 작업반장의 지시에 따라 일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동차업체와 유사한 경우라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는 이달 말부터 20~30개 사업장을 선정하여 실태조사를 할 계획이다. 실태조사 결과 하청 형태를 띠고 있으나 실제로는 하청업체로부터 근로자를 파견 받아 사용하는 사업장으로 판단되면 시정조치를 할 방침이다. 노동부는 하청업체 근로자가 2년 이상 근무한 경우에만 원청업체의 근로자로 간주되거나 (2007년 이후에는) 원청업체에 직접고용 의무가 발생하고 이 경우도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원청업체가 사용자성의 인정 여부가 달라진다는 입장이다.


같은 일을 하는 근로자, 더욱이 같은 사업장에서 같은 일을 하는 근로자들 간에 차별은 없어야 한다. 이 같은 측면에서는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과연 이번 판결로 라인작업을 하는 제조공장에서 사내하청 근로자의 권익이 어느 정도 신장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같은 공정에서 일하는 사내하청 근로자가 완성차업체 근로자의 60% 정도의 급여를 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완성차업체가 사내하청 근로자를 활용할 수밖에 없는 우리나라 산업현장의 특수상황이 있기 때문이다. 대공장의 경우 노조가 강력하기 때문에 유연한 고용관리가 거의 불가능하고 고졸 신입 생산직의 연봉 총액이 4,000만 원에 가까운 현실에서는 대공장 노조들은 어느 형태로는 정규직의 고용을 최소화할 수밖에 없다.


완성차업체들은 당장 실태파악을 통하여 2년 이상이 된 하청업체의 근로자들을 생산현장에서 떠나게 하는 조치를 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 판결로 판결의 소송 당사자인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권익은 보호되겠지만 유사한 상황의 많은 사내하청 근로자들은 고용이 불안정해질 것이다. 기간제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기간제 근로자의 계속고용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면서 많은 기간제 근로자들이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직장을 떠나야 했던 상황이 재연된 것처럼 말이다. 또한 완성차업체들은 생산공정의 변화를 통해 사내하청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결과적으로는 사내하청 근로자들의 고용도 감소시킬 것이다.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강력한 노조에 의해 보호되는 대공장 근로자들의 경직적 고용관행을 개혁해야 할 당위성은 더욱 커졌다. 열린 노동시장이 구축되는 상황에서 법에 의존하는 비정규직 보호는 또 다른 형태의 편법적 고용관행을 가져오고, 비록 일부이지만 오히려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용불안을 가져 올 것이다. 완성차공장의 사내하청 근로자와 비교되는 완성차업체의 정규직 근로자의 처우가 과도하다면 과도한 처우에 대비해 차별을 개선하려는 것보다는 과도한 처우를 받고 있는 정규직 근로자의 고용조건을 조정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박영범 (한성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ybpark@hansu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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