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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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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에 강한 나라와 약한 나라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독일과 일본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전 세계 동시불황이라는 같은 외부충격을 받았으나 독일은 비교적 선전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 ‘유럽의 병자’로 불리던 독일은 요즘 ‘유럽의 성장엔진’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The Economist)는 지난 3월 ‘유럽의 엔진’이라는 특집기사로 독일경제를 해부하면서 ‘독일의 기적(German miracle)'이라는 단어를 썼다. 지난해 독일은 경제성장률 마이너스 5.0%로 큰 타격을 받았으나 실업률은 8.1%로 2008년의 7.8%에 비해 0.3%포인트 오르는데 그쳤다. 독일의 지난해 실업률 증가폭은 미국ㆍ영국ㆍ일본의 급등세와 비교하면 ‘고용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다. 독일은 또 지난해 수출 1위 자리를 중국에게 내어주었지만 속내를 보면 기계류ㆍ화학 등 고부가가치 제품이 많은 독일이 실리를 챙겼다는 분석이다.


반면 일본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다른 선진국에 비해 금융부문의 손실이 적고 수출비중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위기의 타격을 선진국 중 가장 심하게 받았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경기가 회복되어 부분적인 긴축을 염두에 두고 있지만 일본 정부는 부양책의 손을 놓지 못하고 있다. 일본경제가 좀처럼 디플레이션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데다 올 여름 참의원선거가 있어 표심을 의식해야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항공(JAL)의 파산신청, 도요타 리콜사태 등에서 보듯 일본의 주력 기업들이 한꺼번에 추락하고 있는 점도 큰 부담이다. GDP대비 국가부채가 100%를 넘어 세계 최대 부채국가가 된 최악의 재정상황도 일본경제의 앞날을 어둡게 하고 있다.


2차 대전 패전국으로 성장신화의 대명사였던 독일과 일본은 1990년대 들어 엄청난 시련에 직면했다. 일본은 1990년대 초 버블이 붕괴하여 장기불황에 접어들었고 독일은 같은 시기에 통일의 후유증과 사회적 시장경제의 폐해로 장기침체에 빠졌다. 모두 ‘잃어버린 10년’의 고통을 겪었던 독일과 일본 경제가 요즘 대조적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개혁은 하려면 제때에 제대로 해야


두 나라 경제의 현주소를 갈라놓은 주요인들을 우리 경제에 주는 시사점을 중심으로 분석해 본다. 첫째, 개혁은 하려면 제때에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독일경제는 수출비중이 높아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해 초기에 큰 타격을 받았으나 강한 복원력을 보였다. 잃어버린 10년을 겪은 뒤 2002년 이후 시행된 구조개혁으로 경제의 기초체력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반면 일본은 2001년에 집권한 고이즈미 총리가 개혁의 칼을 휘둘렀으나 그 이후 아베ㆍ후쿠다ㆍ아소 정권에서 개혁이 후퇴되다가 미국발 금융위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고 말았다. 과거의 성공모델을 고집하면서 새로운 전략을 구상하여 신속하게 결단을 내리지 못하는 구조가 일본 경제계에 만연해 있다.


시장중시형 개혁과 재정건전성 실현의 중요성


둘째, 시장중시형 개혁과 재정건전성 실현의 중요성이다. 이번 위기 때 독일은 우리나라의 ‘일자리 나누기’와 같은 방식인 ‘조업단축급여’를 실시, 일자리를 유지하는 ‘성장 없는 고용’을 이룩했다.1) 조업단축급여는 노동시간을 줄이면서 회사가 고용을 계속하는 경우 정부가 줄어든 임금을 보전해 주는 제도이다. 기업과 정부가 부담을 떠안을 여유가 있어야 시행될 수 있는데 지난 2003년 이후 노동시장 및 복지개혁으로 기업의 인건비와 정부의 재정 부담을 크게 줄여놓은 덕분에 시행이 가능했다. 2002년 독일의 슈뢰더 정부는 개혁 프로그램인 ‘아젠다 2010’에 의해 고용보호를 완화하고 실업급여 수급기간을 줄이는 등 과도한 복지비용을 조정했다. 2004년부터는 기업은 고용을 보장하는 대신 노조는 임금인상을 억제하고 근로시간을 연장하는 내용의 노사합의가 확산되어 인건비가 크게 줄어들었다.

물론 실질임금의 감소로 내수가 살아나지 않고 그로 인해 수출의존도가 높아져 독일의 무역흑자가 늘어나 역내 무역불균형이 심화된 문제점이 있다. 게다가 조업단축제도가 비상조치에 불과하며 오래 지속되면 구조조정을 저해하는 부작용이 있다. 그러나 위기 이전의 과감한 구조개혁이 독일경제의 기초체력을 강화시켜 글로벌 위기의 파고를 좀 더 쉽게 넘어가게 한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일본도 위기이전에 구조개혁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1990년대 버블붕괴이후 기업ㆍ노동ㆍ금융ㆍ공공부문의 경제 전반에 걸친 구조개혁으로 성장잠재력 강화에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작은 정부의 실현에는 실패했다. 정부의 방만한 재정지출로 재정적자가 눈덩이처럼 늘어나 급기야 올해 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100%를 넘어 세계 최대 부채국이 될 전망이다. 과도한 국가부채는 저출산ㆍ고령화와 맞물려 일본경제의 성장잠재력을 약화시키는 무거운 짐이 되고 있다.


결국 재정부문의 개혁의 성공여부가 독일과 일본의 행보를 크게 갈라놓았다고 볼 수 있다. 작은 정부의 실현노력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느냐가 이번 위기의 대응능력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이는 과거 영국의 대처총리의 공공부문 개혁성공이 적어도 이번 위기 전까지 영국경제의 회복세의 견인차 역할을 한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다만 독일과 일본이 여전히 규제가 많아 금융 및 서비스산업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역내 무역자유화 및 경제통합의 중요성


셋째, 역내 무역자유화 및 경제통합의 중요성이다. 유럽경제 통합과 통화단일화로 유럽 내 독일경제의 위상은 더욱 견고해졌다. 독일 전체 수출의 약50%는 유로지역 국가를 대상으로 한 것인데 역내 다른 회원국들이 독일제품의 높은 경쟁력에 대응하기 위해 더 이상 자국통화의 평가절하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로지역 내에서 환율은 통일되어 있으므로 품질경쟁력이 높은 독일에게 날개를 달아준 셈이다. 결국 산업경쟁력이 취약한 포르투갈ㆍ그리스ㆍ스페인 등이 경상수지 누적에다 재정적자 확대까지 겹쳐 유로화는 위기를 맞고 있으나 역내 경제통합체제가 유지되는 한 독일경제의 역내시장 지배력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역내 경제입지에 관한 한 일본은 독일에 비해 불리한 입장이다. 중국에게 세계경제 2위국 자리를 내어준 일본은 동아시아 경제의 주도권 경쟁에서도 중국에게 밀리고 있다. 일본경제가 수출에서 그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중국경제의 회복세에 힘입은 바 크다. 일본은 역내 경제통합의 막대한 이익을 계산하여 동아시아경제공동체 혹은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자국 시장개방에 소극적인 갈라파고스(고립) 신드롬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일본의 역내 외교 경제적 입지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글로벌 시장 개척 전략의 중요성


넷째, 글로벌 시장 개척전략의 중요성이다. 최근 일본 와세다대 후카가와 유키코(深川由起子) 교수는 “일본 기업들이 자국 내수시장이 충분히 크다고 생각하고 안주하는 바람에 국제경쟁에서 실패하거나 뒤처졌다”고 평가했다. 일본은 또 해외시장을 공략하더라도 첨단기술 분야의 선진국 내 최고급시장을 겨냥하고 있어 신흥국 시장의 공략에 약점을 드러내고 있다. 반면 세계 2위 수출대국인 독일은 선진국은 물론 중국ㆍ인도ㆍ브라질 등 신흥시장으로 수출시장을 다변화하는데 일본보다 앞서 있다. 이는 이번 글로벌 위기국면에서 수출이 타격받는 정도에 있어 차이를 낳았다. 선진국 고급시장에 주력한 일본은 미국ㆍ유럽 등의 경기침체로 큰 타격을 입은 반면 신흥시장 점유율에서 앞선 독일은 덜 타격을 받았다.

우리나라가 이번 글로벌 위기국면에서 위기에 강한 나라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주요국 중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인데다 우리 주력 기업들의 높은 경쟁력, 상대적으로 나은 재정여건 등이 그 배경에 있다. 최근 국제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우리나라의 국가신용등급을 외환위기 이전 수준으로 상향조정했다. 이번 글로벌 위기를 거치면서 국가신용등급이 올라간 국가는 거의 없다. 이번 위기로 우리 경제의 건실성이 국제적으로 공인받은 셈이다. 외환위기가 계기가 된 경제개혁은 한국경제를 오히려 더 강하게 했다. G20 정상회담과 핵 정상회담을 잇달아 유치한 것도 우리 경제의 높아진 위상과 관련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의 갈 길은 멀다. 위기탈출에는 강한 면모를 보였지만 위기초기 단계에서는 제2 외환위기의 벼랑 끝에 내몰린 뼈아픈 기억이 남아있다. 객관적으로 볼 때 우리 경제가 위기에 강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독일과 일본의 대조적 행보는 우리가 이번 금융 위기에 선전했다고 결코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정부의 대규모 재정지출과 환율효과에 힘입은 빠른 회복세에 취해 기업과 공공부문의 구조조정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남유럽 재정위기에서 보듯 글로벌 금융 불안이 반복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경제가 좀 나아졌을 때 대외충격에 취약한 경제체질을 개선하여 앞으로 올 수 있는 위기에 대한 대응능력을 높여야 한다.


독일처럼 노동시장을 개혁하고 기업의 투자여건을 개선하여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들어야 한다. 한EU FTA에 이어 한미 FTA와 한중일 FTA도 보다 적극 추진하여 우리 경제의 울타리를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 후카가와 교수가 “한국 기업은 김연아처럼 글로벌 모델을 잘 확립했다”고 호평했으나 현재의 수준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모든 경제 부문에 글로벌 기준을 적용하여 우리 경제를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시켜야 할 것이다. 독일과 일본보다 더 과감하게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서비스시장을 활성화함으로써 내수시장을 확대하는 노력도 시급하다. 위기에 강한 독일과 위기에 약한 일본이 주는 교훈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경제 선진화와 국격 높이기에 매진해야 한다.


안순권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skahn@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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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조선일보, “복지축소, 잡셰어링 덕에··· 독일 ‘성장없는 고용’ 기적”, 2010. 3. 24 기사 참조


<참고문헌>

안순권, 『유럽 복지모델 발전과 개혁의 시사점』, 한국경제연구원, 2006. 12.

안순권, 『일본 민주당 정권의 구조개혁 추진 및 시사점』, 한국경제연구원 KERI Zoom-In, 2009. 11.

안순권ㆍ김필헌, 『독일경제의 회복 현황과 시사점』, 한국경제연구원 정책연구, 2007.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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