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물간 건배사 중에 9988(구구팔팔)이라는 말이 있다. “99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라는 의미 이외에도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많이 사용된다. 지난 2007년 기준 국내 사업체 300만 개 가운데 중소기업 숫자가 99%나 되고, 전체 취업자 2,300만 명 가운데 중소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88%에 이른다는 뜻이다.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위상과 현실
그러나 중소기업의 경영여건과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변화에 비추어 볼 때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처지는 매우 딱한 상황이다.
우선,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생산성(2008년=100 기준)은 영국의 188.4와 미국의 182.0에 크게 못 미칠 뿐만 아니라 대기업 생산성의 1/3수준에도 못 미치는 실정이며, 특히 기업규모가 작을수록 생산성은 더욱 낮다.1) 또한 중소제조업의 사업구조는 성숙기와 쇠퇴기 단계에 속한 기업이 55.3%나 되어 새로운 기술개발과 시장개척이 절실함을 보여주고 있다.2)
둘째,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능력 면에서도 취약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대부분의 중소기업이 기술 융ㆍ복합화가 급진전되고 산업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현 시장 환경에 제대로 적응할 수 없으며, 글로벌 아웃소싱 시대에 대만의 신주과학산업단지에 소재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처럼 세계 시장수요 변화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시스템도 구축되어 있지 않다. 더욱이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속에서도 중소기업들은 정부의 정책금융 지원과 정치적 배려 등에 힘입어 대기업처럼 심각한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을 추진해 본 경험도 그리 많지 않다. 이같이 구조조정과 경영혁신에 익숙하지 못한 대다수 중소기업들은 이번 글로벌 위기를 맞아 생존에 급급한 나머지 새로운 사업기회 진출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셋째, 우리 중소기업들은 업종간 협력이 부족하다. 지난 20여 년간 협력내용을 보면 대부분 정보교류 차원의 협력에 머물고 있으며, 공동기술개발 등 공동사업화로 발전시킨 사례는 100여 건에 불과하다. 이같이 이업종 간 협력이 신사업 창출 등 고차원의 협력으로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이업종 중소기업 간 협력에 대한 법ㆍ제도적 지원 장치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고 정책적 관심과 배려가 부족한 데 크게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지난 수십 년간 중소기업들에 대한 정책금융이나 각종 지원이 조(兆) 원 단위로 이루어져 왔지만 이업종 간 교류를 통한 지식ㆍ기술 융복합화에 대한 지원은 35억 원 수준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2006년부터 중단된 상태이다.
이업종 간 교류와 협력방안
다행히 기업 간 교류와 협력을 통해 경영노하우를 공유하여 생산성을 제고하고, 지식ㆍ기술 융합을 통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모색하려는 중소기업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다. 중소기업이업종중앙회에 따르면 2009년 10월 현재 이업종 교류에 참가하고 있는 중소기업은 6,181개에 달하고 있으며, 이들 기업들은 자발적으로 매월 1회 이상 290개의 지역협의회별로 모여 협력을 하고 있다.
정부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중소기업의 신용경색 완화를 위해 금융기관을 통해 2009년 상반기에만 14조8천억 원을 대출(순증기준)해 주었고, 신용보증도 15조4천억 원으로 늘렸다. 앞으로 출구전략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경우 이들 정책자금의 회수와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압력이 불가피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소기업들이 상호 협력하여 생산성을 높이고 공동기술개발 등을 통해 새로운 사업기회를 모색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적 배려와 정책자금의 확대 지원이 필요하다. 이업종 간 협력이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동업을 꺼리는 우리나라 풍토에서는 시장기능에만 맡겨 중소기업 간 공동기술개발과 지식활용을 통한 신사업 창출 활성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이다.3) 특히 중소기업들은 정보부족 등으로 협력 파트너를 찾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사 협력파트너를 찾았더라도 어디서부터 대화를 풀어나가야 할지 모른다. 그리고 공동연구개발에 따른 인력, 자금조달, 특허권 및 경영권의 확보 및 행사, 판로 확보와 수익배분 등과 관련한 노하우나 전문성이 떨어져 공동사업화에 성공하기가 매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적어도 기업 간 협력을 촉진할 수 있는 교류회 등 민간 전문가 조직이나 공동사업 참가자 간 신뢰기반을 조성해 줄 수 있는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나라 중소기업의 이업종 간 교류와 협력은 일본처럼 별도의 지원법이 없이 중소기업기술촉진법상 공동기술개발 지원 규정이나 중소기업진흥 및 제품구매촉진에 관한 법률상 협업 지원 등 미약한 근거 규정에 입각하여 제한적인 지원만 간헐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을 뿐이다.4) 물론 정부와 정치권에서 2010년 중에 별도법 제정을 추진할 계획이지만, 보다 우선순위를 두어 신속히 법을 제정하여 중소기업의 이업종 간 지식 및 기술 융ㆍ복합화를 조속히 활성화하여 중소기업의 생산성 제고는 물론 새로운 사업과 일자리 창출이 조기에 가시화될 수 있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이제 중소기업 정책은 경쟁과 이업종 간 협력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추진하되, 정책지원이 불가피한 경우에는 개별기업에 대한 지원보다는 공동기술개발 등 협력사업과 교육ㆍ컨설팅ㆍ교류촉진기구 운영ㆍ정보 D/B 등 인프라 구축을 중점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업종 교류회 지원에 있어서도 기술과 상품개발능력을 갖춘 모임을 연구조직으로 활용하여 시범사업을 추진하는 등 정책자금이 보다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강구해 나가야 할 것이다.5)
이병욱 (한국경제연구원 경제교육실장, lbw@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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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식경제부, 중소기업청의 “중소기업 현장 생산성 향상대책(2009년 10월)” 참조(종업원 50인 미만 중소기업
의 생산성은 대기업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2) 중소기업청ㆍ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2008),『중소기업 실태조사 보고』참조
3) 이병욱, “이업종 기업 간 교류 및 지식기술 융합 활성화 전략”(2009년 11월 25일, “중소기업 지식ㆍ기술융합
활성화포럼, 중소기업이업종중앙회) 참조
4) 일본은 2005년 3개의 관련법으로 분산되어 있던 지원시책체계를 정리ㆍ통합하여 “중소기업신사업활동촉진
법”을 제정하였다.
5) 정부는 2010년과 2011년에 이업종교류회 등을 활용하여 생산현장에 필요한 100개 융합기술(예: 주물공정의
자동화로봇 접목, 도금 및 열처리 공정의 실시간 감시시스템, 금형 마무리 공정의 정밀 프로그래밍화 등)에
대한 R&D 지원계획( 연도마다 50개씩)을 마련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