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조합원 수와 학업 성적이 반비례한다는 연구결과가 보도되었다.1) 전교조 가입교사 비율이 높아질수록 학생들의 수능성적이 떨어지고 전교조 가입교사 숫자가 적을수록 올라가는 역비례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이 있는가 하면 ‘평등교육’ 이념을 강조하면서 반박하는 의견도 있다.2)
전교조 가입교사가 많으면 학생들의 학업성적이 저조하다는 말은 교육계에서 예전부터 공공연히 나돌던 얘기다. 전교조가 학업성적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하는 문제와 학업성적이 인성교육보다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이 연구결과가 사람들에게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전교조 조합원의 입김이 센 고등학교에서는 인성교육을 해친다는 이유로 다른 학교에서 일상적으로 치르는 모의고사 횟수를 줄이고 학교 보충수업도 제한한다. 따라서 입시를 앞둔 고등학교 상급생들의 경우 자신들의 학업성취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게 된다. 매번 달라지는 학업성적을 측정할 수 없으므로 입시지도에 애를 먹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시험을 뜸하게 치르다 보니 학생들도 긴장감이 떨어져 학업성적이 저조할 수 있다. 이번 연구결과가 반향을 일으키는 이유는 이러한 사실이 일부나마 실증적으로 입증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2008년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전국 초중등학교별 전교조 가입 교사 수를 발표하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 것도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는 현상이다.3) 그리고 아직도 전교조 명단 공개 요구가 설득력을 갖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자녀가 좋은 성적으로 명문학교에 진학하길 바라는 것이 모든 부모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전교조 측은 학업성적을 올리기 위한 학교의 노력에 대해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하며 반대하고 있다. 학업성적이나 수능점수보다 ‘인간’을 만드는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도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말에 반론을 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학업성적을 올리는 일이 과연 인성교육을 해치는 일인가? 즉 지식교육이 인성교육과 배치(背馳)되는 일인가? 많은 사람들이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은 배치되는 걸로 알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몇 가지 사실을 들어 설명한다.4)
첫째, 교육을 통해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지식과 기능이다. 인성은 어떤 방식으로든지 배울 수 없다. 인성은 형성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도덕 시간에 아이들에게 ‘정직’을 가르친다고 하자. 교육과정과 교과서에 교육내용으로 ‘정직’이라는 덕목이 들어있으니까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다. 실제 수업 장면에서 교사는 ‘정직’의 말 뜻, 정직하면 좋은 근거, 정직해야 하는 도덕적 당위성 등을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곁들여 설명하고 토론하라고 할 것이다. 이때 교사가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전달한 것은 ‘정직’이라는 인성이 아니라 ‘정직’에 관한 지식과 정직하면 좋은 사례와 에피소드들이다. 예를 들면 ‘정직’의 말의 구성요소인 ‘正’, ‘直’의 뜻, 정직에 관한 미국의 심리학자인 로렌스 콜버그(Lawrence Kohlberg, 1927∼1987)의 도덕발달 이론의 예화, 관련된 이솝우화 및 전래동화 등을 들려주었을 것이고, 아이들의 활동은 ‘정직’에 관련된 역할놀이나 토론이었을 것이다. 교사가 전달한 것은 ‘정직’에 관한 지식이었으며 역할놀이나 토론에 필요한 기능이었을 것이다. 역할놀이나 토론 자체를 인성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이는 인성을 함양할 수 있는 것이라기보다는 인성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다.
‘정직’과 마찬가지로 ‘인성’도 가르칠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소크라테스가 등장하는 플라톤의 대화편 곳곳에서 이미 확인된 바 있다.5) 불가(佛家)에서 ‘교외별전(敎外別傳)’도 인성이 지식처럼 직접적으로 전달될 수 없다는 뜻을 함의하고 있다. 그래서 교육학계 일부에서 ‘간접전달’이라는 말을 사용하기도 한다.
인성이 가르칠 수 없는 것이라면 인성교육은 어떻게 되는가? 인성은 지식교육의 결과, 즉 기능 습득의 결과로 형성되는 것이다. 앞의 예에서 아이들은 교사의 정직에 관한 설명을 듣고(지식 습득), 왜 정직해야 하고 정직한 것이 왜 좋은지를 가늠하는 일이 마음속에 벌어지면서 정직에 대한 믿음과 태도가 형성되는 것이다. 인성교육이 제대로 되려면 지식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인성교육이 중요하다고 해도 인성교육과 지식교육이 상반되고 배치되지는 않는다. 또 학업성적이나 수능점수보다 인간이 되는 교육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하더라도 그것이 지식을 가르치거나 시험을 치르지 않도록 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못한다.
둘째, 전교조는 인성교육이 마치 현실적인 부담(시험, 암기에 대한 부담 등)에서 벗어난 이상 상황에서 찾아지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인성, 즉 사람 됨됨이는 적당한 부하(負荷), 즉 부담이 작용할 때 긍정적으로 발전한다. 최근 번역ㆍ소개된 ‘행복’에 관한 책에서도 인간의 행복은 마냥 긍정적이고 즐거운 일로만 채워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6) 적당한 심적 부담은 개인에게 동기부여를 해주고 성취를 이끌어낸다. 이는 시험을 치르지 않으면 아이들이 공부를 거의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적당한 시험과 긴장이 오히려 책임을 지고 목표를 추구하는 기본적 인성을 길러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셋째, 인성교육을 한다면서 기존의 제도와 질서를 부정하는 경향이 크고 이상적 상황을 부당하게 설정한다는 것이다.7) 그리고 이상적 상황의 묘사는 대개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장식된다. 그러나 ‘교육’이라는 것이, ‘학교’라는 것이, ‘수업’이라는 것이, ‘지식’이라는 것이, 교육 상황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이 이상이 아니라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다만 현실 속에서 일어나지만 좀 더 나은 현실을 위하여 고안된 인류 문명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넷째, 지식교육은 뒤로 하고 인성교육을 주장하는 것은 ‘바보를 만드는 교육’으로 변질된다. 최근 베스트셀러인 『넛지(Nudge)』에 실린 일화를 소개하는 것으로 설명에 대체하고자 한다.
“아이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1달러짜리 지폐를 25센트짜리 동전 두 개로 바꾼다[50센트]. 아이는 두 개가 하나보다 많기 때문에 자신이 현명한 일을 했다고 생각한다. 아이는 계속해서 25센트짜리 동전 두 개를 10센트짜리 동전 세 개로 바꾸고[30센트], 10센트짜리 동전 세 개를 5센트짜리 동전 4개로 바꾼 다음[20센트], 마지막으로 5센트짜리 동전 4개를 1센트짜리 동전 5개로 바꾼다[5센트]. 그리고 마침내 아버지에게 돌아와서 자신이 행한 일련의 훌륭한 거래들에 대해 설명한다.”8)
교육은 인류문명을 전수하고자 하는 제도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육은 ‘달콤한 이상’도 아니고 어리석은 바보가 용인되는 방임상태를 조장해서도 안 된다. 인성교육을 위하여 우리는 아이들에게 지식과 기능을 열심히 가르쳐야 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시험도 치르게 하고 경쟁도 하게 해야 한다.
김정래 (부산교육대학교 교수/교육학, duke77@bnu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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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인재, “전교조와 학업성취도의 관계”, 한국노동연구원, ‘교원 노사관계 평가와 발전방안’ 토론회, 조선일보
2010년 1월 20일자 A12면 참조.
2) 전교조가 사회적으로 악영향을 미쳤다고 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를 들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정치적으로 매
우 민감하고 검증되지 않은 사안을 가지고 계기수업을 한 경우나 이른바 빨치산교육을 감행한 것을 들 수 있
다. 전자의 예가 APEC 반대, 한미 FTA 반대, 주한미군 철수, 친북성향 통일교육 등이다. 이러한 사례는 여러
문헌이 출간되어 알려진 사실이다. 이 중에서 졸저, 『전교조비평』(자유기업원, 2008)도 있다.
3) 이 자료는 당시 조갑제닷컴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되었으며, 졸저, 『전교조비평』의 부록에도 수록되어 있다.
4) 전교조의 인성교육 주장의 허점은 필자가 여러 매체를 통하여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이 중에서 이에 관한 내용
은 졸저, 『전교조비평』에도 수록되어 있다.
5) 예컨대, 플라톤의 메논(Meno)편과 고르기아스(Gorgias)편. 여기서 덕(virtue)은 가르칠 수 있는가를 소크라
테스의 입을 빌어 논의하고 있다. ‘덕’이 인성이라는 것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6) Ed Diener and Robert Diener, Happiness: Unlocking the mysteries of psychological wealth. 번역서는
『모나리자 미소의 법칙』이다.
7) 인성교육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논거는 아동중심사상에 있다. 아동중심사상은 19세기 이래 대두된 진보주의
사상의 일환으로 형성되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교육사상 측면에서는 물론 정치적 노선에서도 진보주의 사
상은 기존의 제도와 질서 부정을 주된 특징으로 한다. 정치 이념적으로 보면 좌파 노선에 닿아 있다.
8) 캐스 R. 선스타인, 리처드 H. 탈러 저, 『넛지(Nudge)』, 안진환 역, 리더스북(웅진싱크빅), 2009. 4, p.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