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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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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매가격유지행위와 법적 규율의 문제점


법률가가 하는 일은 흔히 삼단논법으로 설명된다. 법률가는 소전제로서의 사실을 대전제로서의 법과 법적 논증에 적용하여 주장하거나 판단하는 작업을 한다. 법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존재하지만 대부분의 법은 특정한 사실이 발생하기 전에 그와 같은 사실에 적용되어야 할 내용이 미리 정해져 있는 규칙(rule)의 형태로 존재한다. 규칙은 실제로 법과 법적 논증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므로, 규칙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해석하여 확정하는 것이 “법률가처럼 생각하기”의 영역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에 대하여 경제학자에게는 법률가에게 규칙이 의미하는 것에 상응하는 것이 없다. 경제학자는 현실을 관찰하여 이론을 수립한 후 자료 수집과 분석을 통해 그 이론을 검증하는 작업을 한다. 일정한 가정과 이를 전제로 단순화한 경제 모형을 사용하여 수립되는 이론이 검증될 경우 그와 비슷한 상황에 적용되거나 유추될 수 있는 영향력을 가질 수 있지만, 아무리 뛰어난 경제이론이라고 하더라도 법률가에게 규칙이 갖는 것과 같은 지위를 가질 수는 없다.


기업의 가격결정, 그리고 그에 대한 경제적 설명과 법적 규율


시장에서의 경쟁에 직면한 기업은 경쟁에 영향을 주는 여러 가지 변수와 관련하여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할 목적으로 전략적 행동을 하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전략적 행동은 실제적 또는 잠재적 거래관계나 경쟁관계에 있는 다른 사업자 또는 소비자에게 영향을 주게 된다. 기업의 가격결정도 바로 그와 같은 전략적 행동의 하나로 설명될 수 있다. 경제학에서는 시장구조, 상품이나 거래관계의 특성, 시장 참여자 간의 상대적 지위, 시장의 상황과 경제적 여건 등에 따라 기업이 가격결정을 위하여 취할 수 있는 전략적 행동과 그 효과를 설명하는 이론을 발전시켜 왔다. 이 중 특정한 가격결정 행위, 예컨대 경쟁사업자 간의 공동의 가격결정 행위와 같은 것은 시장과 다른 시장 참여자에게 거의 대부분 부정적인 효과만을 주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러한 경제적 이해는 수평적 가격 카르텔이 법적으로도 엄격히 규율되는 근거를 제공하였다고 할 수 있다. 수평적 가격 카르텔로 일단 낙인이 찍히게 되면 기업 입장에서는 변명할 여지가 줄어들고 규제기관 입장에서도 그 효과를 분석하여야 하는 부담을 덜게 된다. 문제는 이와 같이 한 방향의 경제적 설명에 입각하여 규칙을 설정할 경우 특정한 기업의 전략적 행동에 대한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경제적 평가와 고려의 여지는 사라지고 그 행동이 규칙에서 금지하는 유형에 속하는지 여부에 대한 법적인 규율의 문제, 규칙 적용의 문제만이 남게 된다는 것이다.


기업의 가격결정에 관하여 이처럼 엄격히 규칙 적용의 문제만이 작용하는 또 하나의 전략적 행동 유형은 재판매가격유지행위이다. 이는 수평적 관계가 아니라 수직적 관계와 관련된 것이라는 점에서 수평적 가격 카르텔과 구별된다. 일반적으로는 수직적 관계에서 발생된 행위의 경우 그 효과가 시장과 다른 시장 참여자에 대하여 양면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서 법적인 규율도 규칙성(ruleness)이 완화된 기준(standard)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러나 재판매가격유지행위 규정은 규칙성이 오히려 더 강화되어 수평적 가격 카르텔에 관한 규정에 존재하는 기준의 요소인 ‘부당성’ 요건조차 찾아보기 어렵다.1) 수평적 가격 카르텔의 경우와 달리 재판매가격유지행위의 경우에는 경제학자들이 그 행위가 시장과 다른 시장 참여자에게 미치는 효과를 양면적인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특별한 입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 대한 법적 규율과 그 강화


법이 재판매가격유지행위에 대하여 그 경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의 여지를 허용하지 않고 무조건적으로 금지하는 주된 이유는 우리 법이 시카고 경제학파의 등장 이후로 주목을 받고 있는 경제이론에 귀를 막고 이러한 행위는 당연히 반경쟁적인 효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라는 일방적 사고에 여전히 기초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 우리 법에서 말하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는 강제성이 있는 행위에 한정되는 것이므로 거래상대방 또는 그의 거래상대방이 되는 유통사업자의 가격결정에 관한 경제적 자유를 보호하기 위한 규칙으로서 정당성을 갖는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경제적 행위 유형을 자율적 행위와 강제된 행위로 나누고 이 중 어느 유형에 해당하는지에 따라 행위의 적법성을 다르게 판단하는 방식은 이론적으로는 일리가 있을 수 있으나 실제적으로는 입증의 어려움을 내포한다. 특히 강제가 ‘사실상’ 이루어졌는지 여부의 판단이 어렵기 때문에 유통사업자 및 최종소비자에 대하여 어느 정도 최종적으로 정해지는 가격에 관한 정보를 주어야 할 경제적 필요가 있는 제조사업자로서는 그러한 가격결정이 가져오는 경제적 효과에 대한 분석보다 정보 제공 및 실태 확인 과정에서 법적 판단에 불리하게 작용할 사실이 발생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더 절실한 문제였다. 즉 법적으로 금지되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와 법적으로 허용되는 권장소비자가격 제시행위 사이의 경계선을 두고 줄타기를 잘해야 하는 것이 주된 과제였다.


그러나 제조사업자에게 불안스럽게 허용되던 행동의 자유도 최근에 그 적용범위가 확대된 정부 고시로 인하여 봉쇄될 위기에 처했다. 이는 2009년 7월 8일 지식경제부가 권장소비자가격 등의 표시금지 대상 품목을 대폭 확대하는 것으로 개정한 “가격표시제 실시요령”으로서 제조사업자 입장에서는 충분한 대안이 개발되지 않은 상태에서 2010년 7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정부는 이러한 제도의 기본취지가 “소비자의 합리적인 상품 구매를 돕고 유통업체 간 가격 경쟁을 유발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시장 행위의 영역에서는 규칙보다는 기준의 도입이 바람직


법적 규율을 통해 정부가 의도하고 또한 사업자들에게 유도하고자 하는 방향이 옳은 방향을 지향한다고 하더라도, 왜 꼭 그 방법이 규제 대상이 되는 사업자의 경제적 자유를 제한하는 규칙을 제정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기업들의 시장 행위에 대한 법적 판단이 고속도로에서 차량이 정해진 속도를 넘어 주행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과는 달라야 하지 않겠는가? 아니 고속도로 속도제한 규칙은 그래도 주행은 허용하되 속도만 제한하는 것이지만, 이번에 시행되는 규칙은 아예 제조사업자의 특정한 가격결정 행위를 일반적으로 금지하는 형태이므로 더 엄격한 규칙이라고 할 수 있다. 특정한 도로에는 아예 진입도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시장 행위의 영역에서는 경제학적 설명이 법의 존재 형태를 정하는 데에도 중요한 참고가 되어야 한다. 즉 법적 규율이 필요하더라도 규칙보다는 기준의 형태가 바람직하다. 이런 단순한 법적 원리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실이 안타깝다.


홍대식 (서강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변호사, dshong@sog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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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공정거래법 제29조는 단순히 “사업자는 재판매가격유지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규정을 두고 있을 뿐이

다. 다만 공정거래법 제2조 제6호에 규정된 재판매가격유지행위의 정의는 단순히 수직적 관계에서 재판매가

격을 정하여 거래하는 행위가 아니라 이를 강제하거나 구속조건을 붙여 거래하는 행위라고 하여 그 의미를 한

정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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