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달 삼화저축은행에 대한 영업정지에 이어 국내 최대 저축은행 중의 하나인 부산저축은행 계열사들이 무더기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저축은행 부실 문제가 확산되고 있다. 저축은행의 건전성 문제는 부동산 경기가 하향국면에 접어들면서부터 예견되었던 현안이었다. 과거 부동산 경기 호황에 편승하여 저축은행들은 부동산 관련 대출, 특히 PF대출을 급격히 늘렸고 부동산 경기 불황으로 PF대출은 이제 부메랑이 되어 저축은행을 짓누르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는 PF대출 시장의 연착륙을 위해 2008년 말부터 지금까지 수조 원의 금액을 저축은행의 부실 PF대출채권 매입에 쏟아부었다. 이로 인해 2009년 말에는 PF대출 연체율이 전년도 말에 비해 낮아지는 효과도 있었지만(표 참조) 2010년에는 다시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결국 정부는 2011년 들어 벌써 7개의 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당하는 상황을 막지는 못하였다.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저축은행 감독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표> 저축은행의 PF대출 추이
금융당국은 현재 예금보험기금에 기존의 은행, 보험 등 금융권역별 계정과는 별도로 공동계정으로 약 10조 원을 조성하여 저축은행 부실을 정리하겠다는 방침을 가지고 있다. 이 같은 방안에 대해 은행, 보험업계 등은 기본적으로는 정부의 정책에 협조한다는 입장이지만 사실 다른 금융권역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해결방안이다. 게다가 야당은 공동계정에 대해 분명히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어 실제 도입될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공동계정은 업계의 도덕적 해이를 보다 악화시킬 수 있으며 금융권역별로 다른 보험료율을 적용하여 예금보험기금을 조성하고 있는 현 제도의 기본구조와도 맞지 않다.1) 이러한 한계로 인해 금융당국도 애초보다 한발 물러서 공동계정을 한시적으로 운용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공동계정의 도입이 현재의 부실을 효율적으로 정리하는 데 도움이 될 수도 있지만 유사한 부실의 재발을 막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 미봉책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부실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금융감독에 있어 정부의 소프트웨어적인 능력 제고도 중요하지만 일차적으로는 제도적 개선의 여지가 없는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예금보험은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 문제 내포
예금보험제도는 일정 수준 이상의 금융시스템을 가지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제도이니 만큼 장점도 있지만 그 문제점도 뚜렷하다. 예금보험제도는 ‘인출쇄도(bank run)’를 억제시켜 은행시스템의 안정성을 유지하는 데 효과가 있다. 이번에 무더기로 영업정지가 내려지는 상황에서도 우려와는 달리 저축은행업계 전반에 대한 대규모 인출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예금보험이라는 안전장치가 ‘전염효과(contagion effect)'를 차단시키는데 큰 역할을 한 것이다. 하지만 예금보험은 보험이 태생적으로 가지는 도덕적 해이와 역선택의 문제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시장규율(market discipline)의 효과적인 작동을 막아 시장을 통한 경쟁과 도태의 과정을 저해한다. 이런 이유로 상당수의 나라에서 예금은 부분적으로만 보장된다(우리나라는 예금자당 5천만 원까지 보장). 하지만 부분보장은 은행의 부적절한 행태를 제어하는 데 있어서는 한계를 가진다. 실제로 저축은행에서 거액 유치를 위해 예금보장을 받을 수 있도록 가족 등의 명의로 예금을 분산하도록 권유하는 행태(더 나아가 예금분산 과정을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행태)는 흔히 보는 일이다. 특히 유동성이 여의치 않을수록 더욱 고금리 등을 내세워 예금수신에 적극적으로 나서게 되고 이는 종국에는 예금보험기금의 손실을 더욱 크게 만든다.
이 같은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대표적인 방안 중의 하나가 차등보험료 제도이다. 현재 각 금융기관이 납부하는 보험료는 그 금융기관의 위험도와 상관없이 일정하다. 즉 위험자산을 많이 가지고 있는 은행이나 그렇지 않은 은행이나 동일한 예금보험료를 내는 것이다. 이는 건전한 은행과 그 고객의 부담으로 불건전한 은행과 그 고객을 보호하는 셈이다. 일반적인 보험의 경우 각 개인의 건강, 나이 등 그 위험정도에 따라 보험료가 차등적으로 부과된다. 하지만 현행 예금보험제도에서는 그런 메커니즘이 없는 것이다. 현재 금융권역별로는 보험료가 차등적으로 부과되지만2) 금융권역 내 각각의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보험료는 동일하다. 이번에 무더기로 영업정지를 당한 부산저축은행 계열의 경우에도 전체 대출자산의 60% 정도가 PF대출에 집중되어 있었지만 보험료율은 다른 저축은행과 동일하였던 것이다. 저축은행 전체로 보면 이는 실제 저축은행업계가 안고 있는 리스크 수준보다 부담하는 보험료가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축은행기금이 고갈되어 궁여지책으로 공동계정이라는 편법까지 생각해야 되는 현재의 상황은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다. 예금보험제도 도입 이후 저축은행 건전성에 대한 우려로 인해 저축은행에 대한 보험료는 0.15%, 0.30%, 0.35%로 계속 높아져 왔지만 기금고갈을 막지는 못하였다. 즉 보험료의 절대적 수준이 아니라 각 금융기관이 부담하는 보험료가 해당 기관의 리스크를 반영하는가의 문제이다. 현재 금융권역별로 예금보호한도를 차등화하는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는 상태인데 이 법안 역시 리스크와 보험료를 연동시키지 못하기 때문에 본질적인 한계를 가진다.
차등보험료 제도는 금융기관에 위험관리 유인 제공
차등보험료 제도는 각 금융기관의 위험에 상응한 보험료를 징수함으로써 금융기관에 위험관리 유인을 제공하는 것이 그 목적이다. 미국의 경우 저축대부조합 부실 사태를 겪은 후 1991년 세계 최초로 차등예금보험료 제도를 도입하여 1993년부터 시행하였다.3) 현재 미국,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캐나다 등 32개국이 차등보험료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그 동안 차등보험료 제도 도입을 위한 논의가 계속 되어 왔으며 2009년 2월 개정된 예금자보호법에서 경영 및 재무상황에 따른 부보금융회사별 예금보험료율 차등화를 5년 이내(2014년까지)에 실시하기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필자는 이번 저축은행 부실을 계기로 차등보험료 제도를 앞당겨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부에서는 여건 미비 등을 이유로 들겠지만 이 제도는 이미 많은 나라에서 상당한 기간 동안 시행해 오고 있어 사례도 풍부하고 국내에서의 연구도 축적되어 있다.4) 따라서 이 제도는 법안에서 명기된 시기 이전에라도 시행할 수 있는 여건은 갖추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법안에서 명기된 시기에 즈음하여 어떤 이유로 전체 금융시장이 불안하거나 하면 제도 도입이 연기될 수도 있다. 오히려 금융부문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은 저축은행의 부실을 계기로 전 금융권역에 차등보험료 도입 시기를 앞당기는 것이 부담이 적고 향후 있을지 모를 금융부실을 사전에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가지고 심사숙고만 하는 것보다 준비되는 대로 신속한 실행을 하는 것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일상사에서 볼 수 있다. 차등보험료 제도가 그런 경우라고 생각한다.
이태규 (한국경제연구원 연구위원, tklee@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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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금자보호법 제24조의3에서는 각 금융권역별로 예금보험기금을 구분하여 계리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2) 보험료 부과 기준이 되는 예금 등의 평균잔액에 대해 은행은 0.08%, 투자매매 및 투자중개업은 0.15%, 보험
은 0.15%, 종합금융회사는 0.15%, 상호저축은행은 0.35%의 보험료가 부과되고 있다.
3) 미국은 1991년 FDICIA(Federal Deposit Insurance Corporation Improvement Act)를 제정하면서 위험기반 예
금보험료율(risk-based deposit insurance premiums) 제도를 도입하여 1993년부터 시행하였다. 또한 글로
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최근 2010년 4월에는 대형ㆍ복합금융회사에 대한 예금보험료율 차등화 체계를 새로 도
입하여 예금보험체계를 전면적으로 수정하였다.
4) 2007년 예금보험공사 정책 심포지엄에서는 연구자들은 이 제도를 2009년부터 도입할 것을 권고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