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0일 ‘제2차 저출산 고령화 사회 기본계획안’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한 동안 잊혀진 듯했던 저출산 문제에 다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정부안에 대한 각계의 평가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큰 정부 복지정책을 좋아하는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출산 및 육아에 대한 지원이 미흡하다”는 반응이고, 경제단체들은 “기업의 희생을 강요하는 정책”이라고 비판하며 전문가들은 “문제의 원인진단도, 대책도, 번지수를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평가이다. “돈이 없어 출산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래가 두려워 아이를 안 낳은 것”이라는 한 심리학자의 원인진단1)이나, 아동수당이 저출산의 효과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2) 등이 그 예이다. 사실 제2차 안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실패가 분명한 1차 새로마지 플랜이 근거했던 기본전제를 그대로 따르면서 같은 대책을 새로 포장한 것임을 알 수 있다.3) 저출산의 원인분석이 주로 육아비용과 교육비용에 모아졌는데 이 같은 진단은 국가 간 비교 자료에 비추어보면 설득력이 없다. 저출산 문제로 고민하는 유럽 국가들의 경우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비율이 낮은 나라일수록 오히려 저출산국이고, 이들 저출산국들이 교육열이 높은 나라들이 아니다. 이런 사실은 무시한 채 부실한 원인분석에 근거한 대단히 낭비적인 대책을 내놓은 것이다.
숫자로 본 저출산 원인
합계출산율이 1.56명이던 1990년에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초혼연령은 24.8세였다. 2009년 합계출산율이 1.15명으로 떨어졌고 평균 초혼연령은 28.7세로 높아졌다. 이 두 지표 사이에는 어떤 관련이 있는 것인가? 1990년도 총 출생 65만 명 중 25~29세(5세 계급) 모에 의한 출생이 35만2천 명으로 전체 출산의 54.1%를 차지했다. 그런데 동일한 그룹의 대부분이 2009년에는 결혼을 하지 않았고 그들에 의한 출산도 15만6천 명으로 총 출산에 대한 기여도 3분의 1로 감소했다. 대신 늦게 결혼한 30~34세(5세 계급)에 의한 출산이 2배로 늘었지만 그것은 20~24세(5세 계급)의 출산 감소를 상쇄하기에도 충분치 못한 수준이었다. 즉 지난 20년 동안의 출산 감소는 결혼하지 않은 20대 후반 여성들이 낳을 수도 있었던 아이를 낳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면 된다는 말이다.
<표 1> 모의 연령별 출생
국가 간 비교로 본 저출산 원인
왜 고소득 국가의 여성들은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도 낳지 않게 된 것인가? 이를 피임약의 효과로 설명하는 경제학 서적4)이 있다. 피임약으로 인해 성생활이 자유로워지면서 젊은 남성들의 결혼에 대한 수요가 감소하여 결혼시장에서 젊은 여성들이 불리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낮아진 협상력을 상쇄하기 위해 젊은 여성들이 몸값을 올릴 수 있는 인적자본에 대해 투자를 하다보면 결혼적령기를 놓치게 되고, 또 경제적 자립도가 높아지면 그만큼 결혼의 필요성도 감소하기 때문이다. 그럴듯한 이야기이다. 선진국의 젊은이들이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 일반적 현상의 원인 중 하나의 설명변수가 피임약의 보편화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 설명은 왜 한국의 출산율은 그다지도 급격히 감소하고 있으며, 미국의 합계출산율은 어떻게 대체출산율 수준으로 회복되었는가 하는 물음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는 합계출산율 자료의 국가 간 비교5)를 통해 저출산 원인에 대한 유용한 통찰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2005~2010년 세계 전체 합계출산율은 2.56명이다. 그러나 대륙별로 보면 아프리카 4.61명에서 유럽의 1.5명까지 큰 편차를 보인다. 북미가 예외이긴 하지만 대체적으로 소득이 증가하면서 합계출산율이 감소함을 보여준다.
<표 2> 2005~2010년 대륙별 및 관심지역의 합계출산율
이제 출산율이 가장 낮은 유럽에 초점을 맞추어보자. 유럽의 지역별 출산율 차이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기 때문이다. <표 2>에서 보듯이 북유럽국가들의 출산율은 1.82로 우리가 부러워해야 할 만큼 높은 반면 동유럽과 남유럽 국가들의 출산율은 우리보다는 조금 높지만 북유럽에 비하면 현저하게 낮다. 같은 유럽 국가들 간에 보이는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북ㆍ서유럽과 남ㆍ동유럽 간의 두드러진 차이는 첫째는 소득수준의 차이이다. 북ㆍ서유럽의 소득수준이 남ㆍ동유럽에 비해 현저하게 높다. 둘째는 종교적 차이이다. 북ㆍ서유럽이 프로테스탄트 전통을 가진 지역이라면 남ㆍ동 유럽은 가톨릭이나 동방정교의 전통을 가졌으며 외형적으로는 보다 종교적이라 할 수 있다. 셋째로는 북ㆍ서유럽이 개인주의적이고 사회적 이슈에 보다 개방적이라면, 남ㆍ동유럽은 가족공동체의 가치를 존중하며 사회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인 성향을 보인다는 점이다. 소득수준이 출산율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이기는 하지만 북ㆍ서유럽의 소득이 오히려 높기 때문에 그 차이는 무시해도 좋을 듯하며 종교적 차이가 출산율의 차이에 영향을 미쳤다고 하기도 힘들 것 같다. 그러나 세 번째의 사회문화적 차이는 결혼이나 출산에 의미 있는 영향을 끼칠만한 변수이다. 그것이 어떻게 저출산과 관련되는지를 살펴보자.
가부장 문화와 출산율
가족공동체를 중시하는 가치관에는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내지는 성에 따른 역할분담이라는 전제가 내재되어 있다. 그래서 가족중시 문화권에서는 여성들이 직장을 갖고 돈을 번다고 가사노동이나 육아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다. 여성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의 부담에 가정의 경제적 필요를 충족키 위해 추가적 부담을 안아야 할 따름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들의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경제활동 참여의 기회가 늘어나고 아울러 여성의 자기결정권이 확대되면, 여성의 결혼연령이 늘어나면서 출산율이 현저하게 감소한다. 즉 여성들이 불공정한 게임에 대해 참여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 좋은 예가 이란이다.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 정부가 가족계획제도를 철폐하자 합계출산율은 1984년 7명으로 치솟았으나, 그 후 급격히 감소하여 2006년에는 대체출산율을 하회하는 1.9명을 기록했다. 수도 테헤란의 출산율은 1.5명이다. 22년 사이에 벌어진 엄청난 사회변화이다.6) 동유럽도 이란보다는 덜 극적이지만 유사한 경험을 했다. 1965년 이래 사회주의의 몰락 때까지 대체출산율 수준을 유지해 오던 합계출산율이 1990~1995년에는 1.62명, 1995~2000년에는 1.29명으로 급락했다. 한국, 일본 등 유교권 아시아 국가들의 저출산도 같은 맥락에서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저출산 대책의 올바른 방향
가사와 육아와 같은 가정 안의 일은 여성의 몫이고, 공공영역에 속하는 밖의 일은 남성의 몫이라는 보수적 생각이 남성들의 뇌리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정부가 출산장려금 지급, 보육비 전액지원, 육아수당 인상 등을 골자로 하는 저출산 대책을 내놓아도 출산율은 높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여성의 초혼연령 상승과 저출산 문제를 진정한 양성평등을 추구하는 새로운 형태의 여권신장운동으로 이해하고 그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한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미혼여성이 원하는 결혼 시기는 29.4세이고, 출산 시기는 30.3세로 나타났다. 그리고 기혼여성이 원하는 자녀수는 1.96명이다.7) 이 조사결과가 시사하는 바도 문제는 아이를 아예 낳지 않으려 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을 늦게까지 하지 않거나 혹은 혼기를 놓쳐 못하는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생물학적 한계를 외면한 채 30~40대 여성들이 아이를 낳게 만들 방안을 강구하기보다는 어떻게 양성평등을 실현하여 20대 미혼여성들의 결혼에 대한 거부감을 해소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김우택 (한림대학교 명예교수, wtkim@hallym.ac.kr)
---------------------------------------------------------------------------------------------------
1) 조선일보, 9월 17일자.
2) KERI 칼럼, 9월 6일자.
3) 1차 새로마지 플랜2010에 대한 비판인 필자의 “저출산, 큰 정부를 향한 또 하나의 디딤돌인가?”의 내용이 이
번 정부안에 대해서도 그대로 유효하다.
4) Tim Harford, The Logic of Life. pp.76-79.
5) UN, World Population Prospects: The 2008 Revision.
6) The Economist, October 31st, 2009, p.29.
7) 이경혜, 「여성의 결혼과 출산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과 대책」, 제6차 저출산대책포럼 자료집, 20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