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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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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 판매경쟁, 녹색성장을 위한 시장 인프라


전력산업 구조개편이 오랫동안 지체되고 있고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방향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해 왔다. 지난 8월 24일 정부가 발표한 전력산업 발전방안은 한국개발연구원이 수행한 연구과제의 결과에서 상당부분을 정책으로 반영한 것으로 혼돈 속에 정체되어 있던 전력정책의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여러 가지 내용의 정부정책을 담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구조개편의 큰 방향을 명확하게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로 회귀하여 공기업 독점체제를 강화하는 쪽이 아니라 속도는 느리지만 미래의 변화와 개혁을 지향하고 있다. 지난 수년간 논란이 되어 온 발전자회사를 다시 합해서 과거의 독점공기업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는 시대착오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확실하게 선을 긋고 있다.


전력회사의 기능을 조정하고 역할을 할당하는 데에는 비교적 명료하다. 하지만 판매부문에 경쟁을 도입하는 데에는 지나치게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현재와 같이 전력요금이 왜곡된 상태에서는 판매경쟁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으며, 요금체계를 정비한 이후의 중장기적인 과제로 넘겨 버렸다.


한전의 각 기능을 공기업 내에서 이리저리 합병하고, 다시 분할하고, 사업주체를 바꾸는 일은 공기업 종사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최고의 관심사이며 논란의 핵심이 된다. 하지만 소비자의 입장은 다르다. 중요한 문제는 공기업 내에서 그들 사이의 관할 싸움이 아니라 경쟁의 도입여부이다. 소비자를 보호해 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은 정부의 규제가 아니라 공급자들의 경쟁이기 때문이다. 독점구조를 유지한 채로는 아무리 회사 간의 기능조정을 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시장의 효율성을 올리거나 소비자를 보호하지 못하기 마련이다. 전력산업 구조개편은 공급자인 공기업이나 공기업의 종사자들만의 일이 아니다. 누구보다 존중받아야 할 소비자들을 고려하지 않고는 늘 불완전할 수밖에 없다.


판매경쟁은 소비자를 보호하는 수단인 동시에 미래의 새로운 기술이 발아하도록 해주는 시장 인프라이기도 하다. 에너지를 사용하는 방법에 큰 변화가 올 것이다. 더 이상 과거와 같이 저가의 화석에너지를 기초로 전기를 공급하기는 어렵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변화도 불가피하다. 재생에너지와 신에너지는 물론이고,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공급하는 다양한 기술이 등장하고 있다. 전기를 저장하는 2차 전지와 전기자동차, 수요 반응과 스마트그리드와 같은 새로운 방식들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야 한다.


이들 새로운 방식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기술이 개발되어 점차 나아지겠지만 현재까지는 대부분 경제성이 없다. 전 세계의 선진국들도 이 점을 고민하고 있다. 이들은 새로운 기술을 시장에 도입하기 위하여 전력판매와 결합하여 개발하는 방안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현재는 실증사업을 중심으로 다양한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다. 예를 들면 대규모의 가정용 2차 전지나 스마트그리드 투자를 하는 경우 전력판매요금을 다른 방식으로 설계하도록 하고 있다. 통신시장에서 지난 수년 동안 일어난 일들과 비슷한 구조의 새로운 결합상품이 전력소매시장에서도 나타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러한 새 기술이 원활하게 도입되게 하는 시장의 인프라는 판매경쟁이다. 현재와 같이 단일 공기업이 모든 판매를 독점하고 있고 경직적인 전력요금체계를 유지하는 한 새로운 기술과 융ㆍ복합이 일어날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지금까지 통신에서 소비자 중심의 변화가 극적으로 일어난 이유는 기술의 개발과 동시에 판매경쟁에 불이 붙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녹색성장을 국가적 아젠다로 설정하고 있다. 에너지가격이 급등하는 가운데 기후변화에 대응하려면 녹색의 에너지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고, 더 나아가서 이를 통하여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다양한 정치적 구호도 만들고 보조금도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판매경쟁과 같은 시장의 토양을 만들지 않고도 기술이 개발되고 성장동력도 찾아질 것이라고 기대한다면 너무 비현실적이다.


전력시장에 판매경쟁을 도입해야 한다.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렇고 기술발전을 위해서는 더욱 그러하다. 판매경쟁을 장기적인 과제로 넘겨버려도 되는 시간적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다.


손양훈 (인천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yhsonn@incheon.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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