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는 미국, EU와의 FTA를 넘어 한-중 FTA, TPP(환태평양경제파트너쉽) 등 전방위 교역자유화 체제로 급속히 나아가고 있다. 전면 자유화를 추구하는 국제통상 환경 속에서 우리의 식품안전 정책의 올바른 방향은 무엇인가? 국제무역체제는 끊임없이 시장개방과 교역장벽의 철폐를 요구하는데, 국내 이해관계자들은 종종 교역자유화의 위험성을 지적하고 철저한 식품안전을 위한 교역제한 조치를 요구한다. 이처럼 ‘교역자유화’와 ‘식품안전’이라는 두 가지 양보할 수 없는 가치가 서로 충돌하게 되면, 단순히 무역 이해관계자 집단과 소비자 집단 간의 정책논쟁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방과 반개방, 나아가서는 가진자와 못가진자 간의 사회적 대결구도로 논리가 비화되기 쉽다. 개방을 통한 수입식품의 증가가 국내의 농업부문에 경제적 피해를 가하는 것은 피할 수 없고, 더구나 식품안전 문제는 인간의 정서에 호소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이기에, 농민을 중심으로 한 조직적 반개방운동 세력이 이를 손쉽게 정치이슈화 하려든다. 이러한 반개방 운동은 식품 수출국내의 수출산업의 이해관계를 저해하므로 수출국내에서도 급속히 정치이슈화 된다.
이러한 극도의 정치적 환경 하에서 자유무역과 식품안전 간의 균형된 가치판단에 입각하여 최선의 정책방향을 도출해내기는 쉽지 않다. 그 근본적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례가 북미산 광우병 쇠고기 교역논란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30개월령 이상 쇠고기의 교역을 수출입업자 자율교역 제한 형식으로 합의한 바 있으나, 문제가 영구적으로 해결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시적 합의 과정에서 치른 사회적 ? 정치적 비용은 실로 막대하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태로 인한 일본산 수산물에 대한 수입금지 조치도 잠정조치의 범위를 넘어 장기화하게 되면 한-일 양국간의 심각한 통상분쟁으로 발전할 것이다. 유전자변형식품(GMO)에 대한 표시제도와 안전성 검사제도, 중국산 식품의 각종 유해물질 기준치 함유여부 논란 등도 잠재해 있는 이슈인바, 우리가 필요이상으로 과도한 규제를 취하는 경우 국제체제와의 갈등과 마찰이 표면화하게 된다. 특히 미국은 EU를 WTO에 제소하여 “GMO제품의 시장진입을 부당하게 지연시켜서는 안된다”는 판정을 받아낸바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전 세계적 경제위기 속에서 각국의 양자 통상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마당에, 양자적 갈등요인들을 그대로 방치해서는 안 된다. 한마디로 개방화된 국제통상 환경 속에서 식품안전 정책의 방향은 ‘교역자유화’와 ‘식품안전’이라는 두 가치간의 과학적 균형을 정밀하게 이루도록 추진돼야 한다. 이러한 균형은 WTO협정상의 권리와 의무에도 이미 반영되어 있다. 즉, WTO 각 회원국이 식품안전 위험에 대한 보호수준을 설정할 수 있는 권리를 누리는 대신, 국제교역에 대한 제한효과를 최소화시킬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와 상대국 모두 민감한 국내정치 환경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과학적 입증을 통해 교역 위험과 규제 필요성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것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결국 모든 나라가 과학적 기초와 필요성 원칙에 입각하여 식품위생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 나가는 것이 국제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다만, 현재의 과학이 해결하지 못하는 불확실성이 현실화되는 경우에는 적극적으로 사전예방적 정책을 발동한 후, 추가적인 입증을 통해 과학으로 복귀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때는 WTO협정상의 잠정조치의 한계에 대해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국민과의 의사소통과 홍보 속에서 이루어짐으로써 소비자 불안을 비롯한 국내정치적 반발요인을 최소화시켜야 한다. 이러한 과정이 선순환을 이루려면, 제도의 과학ㆍ선진화와 민주화의 달성이 요구된다. 국내의 식품검사ㆍ유통제도를 과학화ㆍ선진화시키고 각 분야의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특히 한-미 쇠고기 파동을 계기로 우리는 선진국형 식품안전성관리시스템을 확립하여야 하며, 그것은 단순히 규제, 감시, 처벌과 같은 통제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식품의 위험을 평가하는 주체와 절차, 그리고 소비자와 위험정보를 교환하고 “수용가능한 위험의 수준”에 대해 합의하는 민주적 절차가 확립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야 식품분야 시장개방으로 인해 손해를 입는 농업, 이익을 얻는 식품가공업, 그리고 경제적 이익에도 불구하고 불안은 증가하는 소비자 집단 간의 종합적 이익의 균형이 달성된 상태에서, 교역상대국과의 통상체제를 장기적으로 안정시킬 수 있게 된다. 그래야 불필요한 통상마찰을 사전에 차단하는 ‘예방 통상외교’도 우리 대외통상 정책의 기조로 자리잡게 될 것이다.
최원목 (이화여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wmchoi@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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