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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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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연장, 임금체계의 개편이 선행되어야


생산성과 임금의 괴리가 클수록 고용은 불안정


지난 3월부터 정년을 60세까지 점차적으로 연장하겠다는 삼성그룹의 발표이후 고용 및 임금체계와 관련된 사회적 논의가 확산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제시하였고 관련 학회들은 임금체계 개편의 쟁점과 과제를 주제로 토론을 벌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논의의 시발은 작년에 이루어진 국회의 법률개정이다. 이전에 권고사항에 불과하던 정년 60세가 2016년부터 법적 강제사항이 된 것이다.

근로자의 생산성에 따라 급여가 정해지면 기업이 근로자의 정년을 강제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윤을 극대화하는 기업은 근로자의 생산성이 임금과 같아지는 수준까지 고용하고자 한다. 생산성이 급여보다 큰 근로자를 그만두게 하는 것은 기업이 이윤 극대화를 포기하는 것이다. 따라서 생산성이나 급여수준과 무관하게 단지 나이만을 기준으로 정년을 강제하는 것은 불합리한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생산성의 정확한 측정이 쉽지 않다는데 있다. 기업의 이윤은 다양한 요인에 의하여 결정된다. 이러한 모든 요인을 객관적인 지표로 측정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생산성을 일부 요인만으로 측정하는 것은 적지 않은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 지표에서 제외된 활동은 소극적으로 이루어져 오히려 이윤이 감소할 수 있다. 개별 부서의 생산성에 따라 급여를 지급하다보면 부서간의 경쟁으로 협동이 깨지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근로자는 생산성의 평가 결과를 잘 수용하지 않는다. 근로자들은 자신의 성과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 미국 기업의 일부 관리직에 대한 조사에 따르면 근로자의 83%는 자신의 성과가 상위 10%에 속하며 47%는 상위 5%에 속한다고 여기고 있다. 그래서 생산성에 따른 급여는 다수의 근로자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평가자가 근로자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생산성에 따른 급여는 오히려 갈등을 유발하여 기업의 이윤에 부정적 영향을 주게 된다.


연공서열적 급여체계는 강제퇴직을 초래할 수밖에


이러한 이유로 기업은 어떤 방식으로 급여체계를 정할지 항상 고민한다. 60년대 이후 지금까지 우리 기업은 연공서열적 급여체계를 대부분 유지하고 있다. 이것은 근로자 간의 생산성 차이가 크지 않고 기업이 성장하는 시기에는 나름대로 효율적으로 기능하였다. 입사 초기에 낮은 임금을 지급하고 기업이 성장하면 점차 높은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기업의 자본축적을 원활하게 하여 기업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지금도 일부 IT 업계에서는 창업 초기에 아주 낮은 임금을 받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연공서열적 급여체계를 유지하게 되면 강제퇴직인 정년제가 불가피하게 된다. 임금을 생산성에 따라 지급하면 나이가 많더라도 생산성이 높은 근로자를 계속 고용하는 것이 기업에 이익이다. 하지만 근속년수에 따라 급여가 증가하게 되면 나이가 들수록 생산성과 급여의 괴리가 커질 수 있다. 따라서 초기의 낮은 임금을 보상할 수 있는 연령을 지나면 강제퇴직이 불가피하게 된다. 특히 기업의 성장이 어렵게 되면 높은 급여를 받는 고령자에 대한 강제퇴직에 대한 압력이 커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IMF 외환위기 때 40대에 퇴직하게 된 근로자가 많았다.


이처럼 정년은 임금체계가 생산성을 어느 정도 반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임금이 생산성에 따라 탄력적으로 달라질 수 있다면 정년은 별 의미를 갖지 못한다. 그리고 임금이 생산성과 괴리가 크면 고용의 안정성은 낮아진다. 우리 기업도 그동안 생산성을 반영하기 위해 직무급, 능률급, 연봉제, 임금피크제 등 많은 급여체계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시도는 때에 따라 실패하기도 하고 다른 급여 지급형태와 결합하여 유지되기도 하였다.


사실 기업 스스로도 어떤 방식으로 생산성을 반영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급여체계인지 사전에 알 수 없다. 산업별 기업별 경제여건이 다르기 때문에 일부 기업에서 성공적이었던 급여체계가 다른 기업에서 성공을 거둘지 확신할 수 없다. 그래서 한 사회의 급여체계는 경제여건의 변화에 대응한 개별 기업의 치열한 경쟁을 통해 진화하게 된다.


생산성을 반영하는 임금체계 수립이 우선되어야


급여체계가 시장에서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정년을 60세까지로 의무화한 것은 순서가 잘못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급여체계가 생산성을 반영하도록 하면 정년의 연장을 의무화하지 않더라도 기업 스스로 정년을 연장하거나 정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임금체계가 생산성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 것을 막고 있는 다양한 장애 요인들을 제거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임금이 탄력적으로 조정될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이를 무시하고 법률이 잘못 개입하면 자칫 혼란이 야기된다. 그리고 법률이 원래 의도하였던 고령자의 고용안정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현재의 정년제도에서도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퇴직하는 근로자가 적지 않다. 이런 상태에서 정년만 연장되면 고령자일수록 급여와 생산성의 격차가 더욱 커지고 따라서 이들에 대한 유무형의 퇴직 압력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고 있는 대기업이나 공기업 근로자, 공무원에게만 정년 연장의 혜택이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당사자도 잘 알 수 없어 시장의 진화에 맡길 수밖에 없는 임금체계나 정년 등을 법률로 강제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것이 혹 지적 오만이나 무지의 소산이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정기화 (전남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ckh8349@chonnam.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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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부필자 기고는 KERI 칼럼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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