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아기에 형성된 지적ㆍ신체적 발달이 평생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주장은 근대 교육의 아버지 코메니우스에 의해서도 제기되었다. 그 후 많은 과학자들은 유아기 뇌의 성장이 전체 뇌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예컨대 만 5세 이전에 두뇌의 80%가 발달하며 인격 기본 틀의 90%가 형성된다고 한다.1) 따라서 유아기 교육은 평생의 삶의 질과 성공을 결정짓는 초석이 되며, 인생의 첫 교육이 시작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그 중요성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는 5월 초 내년부터 유치원과 어린이집(보육원)에 다니는 만 5세 어린이들이 모두 배울 수 있는 국가가 정한 ‘만 5세 공통과정’을 마련한다고 발표하였다. 또한 만 5세의 자녀를 둔 가구에서 해당 자녀를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 보내는 경우 소득수준에 상관없이 정부가 비용을 지원하게 되며, 지원 금액은 매년 증가하여 2016년에는 유치원비ㆍ보육원비의 전액 수준으로 확대될 예정이라고 한다. 4월에는 불발에 그치긴 하였지만 유아보호를 명목으로 놀이학교 규제 등을 포함하는 유아교육법 개정을 추진하기도 하였다.
사실 만 5세 무상교육 보도가 그렇게 새로운 것은 아니다. 유아교육법 제24조에서 “초등학교 취학 직전 1년의 유아교육은 무상으로 하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순차적으로 실시한다”고 이미 규정하고 있다. 영유아보육법 제35조에서도 “초등학교 취학 직전 1년의 유아와 장애아에 대한 보육은 무상으로 하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순차적으로 실시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정부는 이러한 규정을 다시 한 번 언급하여 발표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핵심은 과연 정부의 이러한 행보가 향후 유아교육의 발전을 위해서 도움이 되느냐하는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정부는 가장 중요한 핵심적인 논의는 피해가고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먹음직스럽게 포장만 해놓은 형국이라고 할 수 있다.
유아교육 체제의 일원화가 우선
우리나라 유아교육의 가장 큰 문제점은 유치원(교육중심)과 어린이집(보육중심) 체제의 이원화이다. 현재 0~5세의 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어린이집(보육원)은 보건복지부에서 관장하고 있으며, 만 3~5세의 유아를 대상으로 하는 유치원은 교육과학기술부에서 관장하고 있다. 따라서 만 3~5세 유아의 경우는 2개 부처에서 중복 관리되고 있는 실정이다.
유아의 경우 대부분 보육과 교육이 혼재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유아교육과 보육을 서로 분리해서 접근하기 힘들다. 선진국의 경우에도 교육과 보육을 일원화하여 체계적으로 유아교육을 관리하고 있는 추세이다.2) 우리나라의 교육과학기술부와 보건복지부 이원화 체제는 재정ㆍ행정적 비효율성을 초래하여 정부예산 낭비를 유발하며, 학부모들의 시설 선택 혼란 등의 문제점도 야기하고 있다. 따라서 이를 일원화하는 작업이 우선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근본적인 해결은 제쳐두고, 그것도 만 5세인 경우에 한하여 ‘만 5세 공통과정’이라는 교육과정만을 일원화하여 이를 어린이집과 보육원에 도입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담당부처 및 유아기관의 일원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한 유치원 교사와 보육교사의 이분화로부터 시작하여, 이들을 양성하고 관리하는 행정적 업무의 이분화, 유아교육기관 시책의 이분화, 정부 지원 금액의 이분화 등 이원화로 인한 폐해가 계속될 것이고 유아정책의 효율성도 계속 저하될 것이다. ‘만 5세 공통과정’의 도입은 오히려 교육ㆍ보육기관 통합의 필요성을 간접적으로 자인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0~2세까지는 보건복지부에서 담당하고, 3~5세는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담당한다든지, 아니면 모든 업무를 한 부처로 이관한다든지 하는 등의 정책적 결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3)
저소득층 중심의 유아교육 지원이 중요
정부는 만 5세의 무상교육을 공언했지만 실질적으로 유아교육의 대부분은 만 3~5세에 이루어진다. 1년이라도 빠른 유아교육이 아이들의 향후 감성 및 지적 성장에 지대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만 3세 및 만 4세의 유아교육도 중요하다. 따라서 이번에 발표된 만 5세의 무상교육은 향후 만 3~4세의 무상교육 논란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만 3~4세의 유아교육ㆍ보육비 논란은 저출산 문제나 복지문제와도 관련이 있지만, 정부의 재정 부담과도 관련이 깊은 문제이다. 그러나 만 5세의 무상교육 발표에 편승하여 심각한 논의 없이 포퓰리즘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미국의 경우 각 주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2004년 기준으로 미국은 만 3세 유아의 20%, 만 4세 유아의 68%만이 무상교육 혜택을 받고 있다.4) 우리나라는 이미 올해부터 소득분위 70% 이하 가정의 경우 만 3세와 4세에 대해서도 정부가 보육료 및 교육비를 지원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만 3세 이상 혹은 만 5세의 유아교육에 대해 전면 무상교육을 확대한다는 생각은 국가재정에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이다.5) 필요한 교육서비스를 시장에서 대가를 지불하고 이용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고소득층 가구들은 시장에서 교육서비스를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 낫다. 시장에 접근할 수 없는 사람들, 즉 대가를 지불할 수 없는 저소득층에 한하여 선택적 복지라는 측면에서 국가가 지원을 해주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현재 소득분위 70% 이하의 가구에게 지원하는 유아교육비의 경우도 유치원이나 보육원의 실비를 모두 지원하는 것은 아니고 정부가 정한 지원 금액에 따라 지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표준교육ㆍ보육비 이외에도 교재비, 준비물 등 추가비용도 상당하다. 따라서 향후 유아교육에 대한 정부의 공교육 예산이 증가하더라도 부유한 가정까지 포함하는 무상교육 확대보다는 저소득층 중심의 실질적 교육ㆍ보육비 지원이 타당하다. 이러한 지원이 진정한 의미에서 교육의 균등한 기회를 실현하는 길이며, 시장의 왜곡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유아교육 규제완화와 다양성 확보가 관건
한편, 정부의 규제와 통제는 유아교육의 발전을 더욱 어렵게 만든다. 최근에 불거진 놀이학교 논란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생각해 볼 수 있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유아를 모집하여 유치원 형태로 운영하는 놀이학교나 영어학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6) 사교육비 절감과 유아보호라는 명목으로 유아교육법 개정을 통해 이를 규제하려고 하였다.7) 이러한 현상은 역으로 생각해 보면 현재 운영되고 있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의 유아교육 서비스가 학부모들을 만족시켜 주지 못하고 있다는 하나의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학부모들은 다양한 유아교육 프로그램을 원하고 그에 상응하는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으나 현행 유치원 교육 프로그램은 학부모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 수 없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발생한다고 볼 수 있다. 이번에 도입된 ‘만 5세 공통과정’ 도입이 오히려 교육과정을 획일적으로 규정하여 유아교육의 다양성을 저해할 수도 있음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교육에 대한 규제보다는 시대와 흐름에 맞게 학부모들의 요구에 부응하여 다양한 유아교육을 제공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필요가 있다.
또한 현재 유아교육을 제공하는 유치원 시설이 부족하여 유치원 이용을 하지 못하는 원아들이 불가피하게 비슷한 형태의 놀이학교로 몰리는 것이라면, 현 유치원 설립 및 운영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여 유치원 시장에 대한 진입이 자유롭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아래의 표를 보면 2010년 기준으로 3~5세 전체 취원 대상아 수의 40% 정도만 유치원에 취원할 수 있다. 유치원에 가고 싶어도 유치원 인원이 한정되어 있는 관계로 유치원에 들어갈 수 없는 유아들의 경우 보육원이나 다른 유아시설들을 이용할 수밖에 없다. 특히 보육원(어린이집)의 경우 보육료가 제한되어 있어 다양하고 질 높은 유아서비스를 제공하기 어렵게 되고, 학부모가 이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면 고가의 놀이학교나 유아 영어학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게 된다. 따라서 유치원에 대한 수요가 있는 한 유치원의 공급이 원활이 이루어질 필요가 있으며, 유치원의 설립 및 운영에 대한 규제도 완화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8)
2010년 연령ㆍ기관ㆍ설립별 취원아 수 및 취원율
요약컨대 문제해결의 본질은 만 5세 유아교육에 공통교육과정을 도입하고, 유아교육의 무상지원을 일률적으로 확대하며, 유아교육기관을 규제하지 않는 것에 있다. 효과적이고 실질적인 유아교육 발전을 위해서 현재 이원화되어 있는 유아교육체제를 일원화해야 하고, 고소득층까지 지원하는 무상교육의 확대가 아니라 저소득층 중심의 다양한 유아교육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다양한 교육서비스를 제약하거나 자유로운 교육서비스 진입을 막는 과도한 규제는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시책이야말로 소득수준 차이에 따른 교육기회 불평등을 해소하고 질 높은 유아교육을 실현하는 밑거름이 될 것이다.
유진성 (한국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 jsyoo@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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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병주(2009),「유아교육 재정의 확충: 교육불평등 해소의 출발점」, 제38회 국회인권포럼 세미나.
2) 유아보육과 교육이 일원화되어 있는 국가로는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노르웨이 등이 있으며, 연령별로 일원
화되어 있는 국가로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이 있다. 미국의 경우 우리나라의 유치원ㆍ보육원과 같이 이
중적인 구조가 아니라 연령에 따라 데이케어센터, 프리스쿨, 킨더가튼 등의 유아기관으로 구분되어 있다. 일
본의 경우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최근에는 현행 유치원제와 보육체제를 폐지하고 가칭
어린이원제도를 신설하여 유치원과 보육원을 통합하여 추진해 나간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3) 이명조(2010),「한국 유아교육의 현황과 과제」,『미래유야교육학회지』Vol.17, No.1, pp.449-481.
4) 김병주(2009),「유아교육 재정의 확충: 교육불평등 해소의 출발점」, 제38회 국회인권포럼 세미나.
5) 만 5세의 유아교육에 대해서만 무상교육으로 전환하더라도 매년 8천억~1조1천억 원 이상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6) 놀이학교나 영어학교의 경우 학부모들에게 인기가 많아 그 규모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며, 브랜드화된
놀이학교 프랜차이즈만 300여 개, 지역의 개별 놀이학교까지 포함하면 700개에 이르고 영어유치원은 전국적
으로 1000여 개로 성장하고 있다.
7) 이러한 규제는 규제개혁심의를 통과하지 못하여 사실상 관련법의 개정이 이루어지지는 않았다.
8) 사립유치원의 경우 보육료가 자율화되어 있다. 하지만 국공립 어린이집에 대한 보육료 한도액은 2009년 기준
28만 원으로 제한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이 공존하고 있는 형태로 3~5세의 유아는 유
치원이나 어린이집을 선택하여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유치원 수가 한정된 관계로 유치원을 선택하고 싶어
도 들어갈 수가 없어서 보육원으로 가는 유아들도 있을 수 있는데, 이럴 경우 보육원의 보육 및 교육서비스의
질이 보육료 제한 등으로 유치원의 교육서비스에 미치지 못한다면 어린이집을 이용하는 유아들의 경우 정당
한 교육을 받을 권리를 침해당한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 이러한 문제로 현재 이원화되어 있는 영유아교
육 체제가 단일화할 필요가 있으며, 유치원과 어린이집을 통합하는 기관으로 통일 후 보육료를 자율화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정부의 지원은 저소득층에 한하여 중점적으로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