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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RI 컬럼

전문가들이 펼치는 정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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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평가지수를 활용한 기업정책 추진은 신중해야


21세기 들어 정부부문에서 평가가 유행하더니 최근 들어서는 민간 기업에 대해서도 지수를 통해 규율하려는 정책적 노력이 확대되고 있다. 녹색경영 관련 지수에 이어 지난해 하반기부터 대ㆍ중소기업 간 동반성장지수 도입이 추진되더니 올해 들어서는 노사관계공정지수 도입까지 거론되고 있다.


기업은 상품ㆍ주식ㆍ노동 등 다양한 시장에서 매번 평가받는다


기업은 업의 특성상 매순간 다양한 평가시장에 노출되어 있다. 상품 및 서비스시장에서는 소비자들의 선택에 의해, 주식시장에서는 주주와 투자자들에 의해, 금융시장에서는 금융기관들의 융자심사에 의해, 그리고 노동시장에서는 인재들에 의해서 평가받고 있다. 중소협력업체와의 거래관계 또한 시장에서 직간접적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셈이다. 도요타자동차의 리콜 사태는 협력사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데 대한 소비자와 주식시장의 준엄한 평가를 받은 것이다. 시장만큼 기업을 즉각적으로 엄정하게 평가할 수 있는 기재는 아직 없어 보인다.


이러한 시장의 기업평가를 믿지 못하고, 정부가 나서서 대기업을 평가하고 규율하는 것은 규율 당하는 기업 입장에서 보면 이중삼중의 규제로 인식될 수 있다. 시장에서 충분히 검증받지 못하고 급조된 평가지표나 지수는 단명할 수밖에 없다. 대다수의 평가지표나 지수들은 시장에서 자생적으로 생겨나 평가를 원하는 주체들이 평가에 참여하고 이 같은 평가결과를 소비자나 투자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용도로 주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적어도 평가 당사자에게는 평가로 인한 피해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정부가 나서서 강제로 특정기업을 정책 대상으로 삼아 조사, 평가하고 그 결과를 공개하게 되면 이에 노출된 기업들은 주가하락 등 막대한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 정부는 평가지수나 결과에 문제가 있더라도 “아니면 말고 식”의 정책실험으로 중단하거나 추진세력이 물러나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계속기업(Going concern) 입장에서는 타격을 받을 수 있다.


기업은 많은 이해관계자들로 둘러싸여 있다. 이들 가운데 거래 중소기업이나 근로자와 같은 일부 이해관계자만을 정부가 편드는 지표개발이나 정책을 추진해서는 곤란하다. 예컨대 대기업의 초과이익공유제라는 정책수단을 통해 무리하게 동원하게 되면 이는 주가를 하락시켜 주주의 이익을 침해하게 되고 이해관계자 간 갈등을 심화시키며, 일반국민에게는 친서민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하는 정책이 오히려 서민경제를 어렵게 만들 수 있다. 국민의 편에 서서 기업 간 경쟁을 촉진시켜 소비자에게 보다 값싼 양질의 제품이 공급되도록 유도해야 할 정부가 중소기업 편에 서는 것을 일반서민이 납득할 수 있겠는가.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하면 지속가능성도 보장받을 수 없어


최근 동반성장위원회가 발표한 동반성장지수 추진계획은 “측정할 수 없으면 개선도 없다”는 경영공학적 시각에서 보면 대ㆍ중소기업 간 거래 관행을 동반성장지수라는 잣대를 통해 보다 선진화하려는 시도로 나름대로 논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익공유제나 중소기업 적합업종 이양여부 등과 같은 항목들은 개념 정의에서부터 실행단계에서 많은 논란과 문제를 야기할 소지가 많아 평가지표에 포함시키는 것은 곤란하다. 또한 업종, 기업규모, 시장특성, 가격결정 및 수익구조, 경영노하우, 조직운영 패턴 등이 전혀 다른 기업들을 한꺼번에 순위를 매겨 공표하는 것은 공정성 문제 등을 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동반성장을 외치면서 거래 당사자인 중소기업으로 하여금 파트너인 대기업을 평가하게 하는 것도 동반성장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 이밖에 중소기업의 체감지수 응답능력 문제 등 기술적 문제들도 간과하고 있다. 예컨대 동반성장지수 항목들은 대부분 개별 중소기업이 정확히 평가하기 쉽지 않은 정보들이며, 중소기업의 단순한 사업구조와 특성상 결제조건 등 몇몇 항목 이외는 이해관계나 관심이 적을 수밖에 없다. 즉 대다수 평가항목들은 몇몇 전문가 이외는 정확한 평가가 어려워 보인다.


지수 도입은 매우 신중히 해야 시장의 신뢰를 얻고 지속가능성도 보장받을 수 있다. 정권이 바뀌면 사라질 수밖에 없는 지표라면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편이 낫다. 지수 활용을 통한 기업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려면 평가시장에 맡겨 해결하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왜 다른 나라들이 정부 차원의 지수정책을 신중히 하고, 신뢰할 만한 평가시장에 맡겨 해결하려 하는지를 잘 음미해야 한다. “측정 없이는 개선도 없다는 점”은 소중히 여겨야 하지만 모두가 신뢰할 만한 측정과 평가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고 오랜 시일을 요한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병욱 (한국경제연구원 경제교육실장, lbw@ker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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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3월 2일자 중앙일보 비즈칼럼 「기업평가 정부가 아닌 시장이 해야」(이병욱 기고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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